"고립은둔 청년 지원 선순환 생태계 조성해야"

민관 역할 분담 통해 장시간 지속적인 지원체계 마련 성과 위주 사업 아닌 다양성 인정된 실질적 도움 필요

2024-04-12     백종훈 기자
지난 11일 서울 중구 뉴스웍스 본사에서 열린 '고립은둔청년 지원 자문위원회 회의' 참석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백종훈 기자)

[뉴스웍스=백종훈 기자] "고립·운둔 청년들이 스스로 나올 수 있는 유인책이 되는 선순환 생태계를 조성해야 합니다. 성과 위주 사업이 아닌 이들과 소통을 통해 기다려줄 수 있는 시간, 사례의 다양성, 전문 상담, 그리고 일자리 창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11일 서울인쇄정보빌딩에서 열린 '고립은둔청년 지원 자문위원회 회의'에서는 법·제도를 통한 지원에 앞서 이들을 도와줄 수 있는 현장의 다양한 목소리가 오갔다.

이날 회의에는 은둔형외톨이 전문기관 '천개의 별' 윤철경 소장과 청년 고립 은둔 온라인플랫폼 두더지땅굴을 운영하는 '씨즈' 이은애 이사장, 광주광역시 은둔외톨이지원센터 백희정 사무국장, 고립 은둔 청년 인문학교실 '지식순환협동조합' 박두헌 사무국장, 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 한희선 팀장이 참석했다.

◆가장 먼저 공감대 형성…복지 아닌 교류의 대상

윤철경 '천개의 별' 소장. (사진=백종훈 기자)

윤철경 소장은 "사회 복지적 관점은 고립 은둔 공감대가 부족한 제3자가, 고립 은둔자 의지와는 관계없이 이들을 앞으로 무작정 밀어내는 격"이라며 "고립 은둔자에게 힘을 실어줘서 그 사람이 스스로 자리 잡아 천천히 일어서게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부연했다. 

이어 "그렇기에 돈보다는 될수록 많은 시간과 인내심을 투입해야 고립은둔 해결의 확률을 높일 수 있는 것"이라며 "이를 통해 고립 은둔자의 닫힌 마음부터 열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에 따르면 고립 은둔자의 경우 대체로 인간관계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이에 따라 자기혐오나 자기부정 성향이 강해 타인과의 접촉을 주저한다.

이은애 '씨즈' 이사장. (사진=백종훈 기자)

이은애 이사장도 윤 소장의 주장과 그 궤를 같이했다. 고립 은둔 해결을 위한 첫걸음으로 고립 은둔자들로부터 공감대를 먼저 끌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이사장은 "한국 사회에서 복지의 대상이 된다는 건 당사자로 하여금 사회 하위계층으로 들어가는 느낌을 준다"며 "폐쇄적 인간관계를 지닌 고립 은둔자 입장에서 사회 복지적 관점에 대한 거부감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면서도 "고립 은둔과 비슷한 경험을 지닌 자가 고립 은둔자의 자활을 돕기 위해 접근했을 때 오히려 고립 은둔자의 자활 수용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오히려 다양한 지식을 지닌 전문가들보다는 비슷한 경험을 지닌 사람들과의 교류에 나서고 싶어 하는 욕구가 그들로부터 나오고 있다"고 부연했다.

이 이사장은 "이런 고립 은둔자 욕구에 착안해, 온라인과 오프라인에 각각 공간을 만들어 이들이 서로 소통하고 상담도 해줄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한 상태"라며 "최근 들어 상담을 신청하는 고립 은둔자 수가 늘어 1200명 가까이 문의가 들어왔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식으로 타켓팅을 해서 고립 은둔의 문제를 최대한 많이 알리고 해결하고자 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며 "히키코모리를 관리하는 일본 내 기관에서도 이와 같은 사례를 관심 있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고립 은둔 용어부터 지원 범위 다양

백희정 광주광역시 은둔외톨이지원센터 사무국장. (사진=백종훈 기자)

아울러 고립 은둔자에 대한 정의부터 명확히 세울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현재 고립 은둔자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불분명해 이들을 국가적 차원에서 지원할 때 차질이 발생할 수 있어서다.

백희정 광주광역시 은둔형외톨이지원센터 사무국장은 "고립 은둔과 관련해 아직 용어정리가 완벽하지 않아 지자체마다 고립 은둔 지원 범위가 다르다"며 "지자체별 상황에 맞게 해석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동시에 혼란스럽기도 해서 고립 은둔과 관련해 사회적 합의가 먼저 이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백 국장은 "고립 은둔에 대한 용어 정리도 시급하나 무엇보다 연령별 고립 은둔자 지원에 대한 그림을 그리는 것도 중요하다"며 "지자체 연령에 의한 고립 은둔자 지원 현황을 살펴보면 가장 많이 의뢰되는 대상을 주로 20~30대 청년층"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고립 은둔의 문제는 주로 20~30대에 분포해 있지만 10대와 40대에도 많다"며 "그럼에도 문제의 초점을 청년에게만 한정하게 되면서 상대적으로 다른 연령대에 배분될 예산이 줄어들게 된다"고 덧붙였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3 고립·은둔 청년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고립 은둔 청년은 전체 청년인구의 5%에 달하는 54만명으로 추정된다.

백 국장은 "고립 은둔의 문제는 청년의 문제라고 하는데 이제는 청소년, 장년, 노년의 문제이기도 하다"며 "고립 은둔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사각지대에 놓이게 되는 사람들이 많아질 수 있다"고 우려하면서 "개념적 정의를 바탕으로 현실적 지원 방안 마련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두헌 '지식순환협동조합' 사무국장. (사진=백종훈 기자)

이에 덧붙여, 박두헌 지식순환협동조합 사무국장은 "청년들에게 부담이 되지 않도록 지식순환협동조합이라는 이름으로 단체를 운영하고 있다"며 "처음 대안교육을 시작으로 현재 존재클럽 커뮤니티 등 다양한 정보교류의 장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공공·민간역할 구분, 성과 위주보다 실질적인 도움 필요

정부와 지자체가 공공의 영역으로 거점 센터 중심의 지원기관을 운영하는 데 대한 세밀한 관심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부 지자체에서 하나의 센터를 만들어 몇 년간 운영하지만 그럴 경우 민간 단체의 영역이 퇴행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서울의 경우 25개 구에 분산해 운영하지만 고립 은둔 분포가 많은 지역에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공공 전담 체계와 함께 민간이 공동으로 협력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

백희정 국장은 "공공의 성격으로 접근할 경우 비용과 성과, 업적 중심으로 바라보게 되는데 이들이 빨리 극복할 수 있도록 성과를 내는 것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윤철경 소장은 "고립 은둔을 청년 복지 차원에서 접근하면 안 된다"며 "사회복지사가 아닌 당사자와 부모, 전문가가 함께 장기간 프로그램으로 구현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고립 은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인간에 대한 이해를 통한 인문학적 성찰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고립 은둔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이를 지원할 수 있는 생태계가 갖춰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은애 이사장은 "고립 은둔이 발생하지 않도록 문화를 만들고 이들을 지원할 수 있는 전문가를 양성하며, 또 이들이 사회에서 일할 수 있는 지원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윤철경 소장은 "고립 은둔이 어떠한 양상으로 변화했는지 생애주기에 따라 살펴보고, 민과 관의 역할을 재정립하면서 자원의 쏠림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제도에 대한 의존이 아닌 자기 본인에 대한 노력이 존중되고 사회의 다양성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고립 은둔자 본인에 대한 이해부터 시작해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마지막으로 일자리를 찾는 3단계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윤철경 소장이 운영하는 '천개의 별'에서는 고립 은둔 청년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본인이 잘할 수 있는 SNS소통과 영상 촬영, 인터넷 관리 등의 직업을 찾기도 했다. 또 이은애 이사장이 운영하는 두더지 땅굴의 경우 웹툰 작가나 소식지 작성 등 본인의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아 직업에 대한 이해를 높인 사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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