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 톺아보기] IFRS17 도입 1년…생보 실적 앞지른 손보

2024-05-22     백종훈 기자
(출처=픽사베이)

[뉴스웍스=백종훈 기자] 새 국제회계 기준인 IFRS17이 보험 업계에 도입된 지 1년이 지난 가운데, 이번 1분기에도 손해보험 업계가 생명보험 업계의 성적표를 앞질렀다. 

지난해 기준으로 손보사들은 8조2626억원, 생보사들은 5조952억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렸다. 수입보험료는 손보사 125조2017억원, 생보사 112조4075억원을 기록했다. 

IFRS17 도입으로 새 수익성 지표인 보험계약마진(CSM) 확보에 유리한 '보장성 보험' 취급이 중요해진 게 변곡점으로 작용했다. 통상 손보사는 자동차보험, 실손의료보험 등 보장성 보험 중심의 포트폴리오를 구성한다. 

게다가 저출생, 고령화 등으로 종신보험 인기가 시들하면서 생보사 성장동력이 이전보다 약해진 게 영향이 컸다. 더군다나 IFRS17 에서는 생보사가 다루는 저축보험이 고객에게 돌려줘야 하는 부채로 잡히는데, 이에 따라 생보사들이 저축보험을 적극적으로 유치할 요인이 사라진 것도 한몫했다. 

때문에 생보사들은 생손보사 모두 참여할 수 있는 '제3보험'과 같은 보장성 보험 시장에 최근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제3보험에는 건강보험, 암보험, 간병보험, 어린이보험, 상해보험, 질병보험 등이 있다.

업계 일각에서는 이처럼 보장성 보험 시장이 생손보사 간 격전지로 부상하면서 보험 신계약 모집 목적의 과당경쟁이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IFRS17은 이전 국제회계 기준과 비교했을 때 보험 신계약 확보 시 초기에 높은 수익성을 내는 특징이 있어서다. 그리고 이 과당경쟁이 맹목적 행위로 변질될 경우 보험상품의 본질적 가치까지 훼손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손보 빅5, 올 1분기에 작년比 27% 더 벌어…생보 빅5는 24% 감소

22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화재·DB손해보험·메리츠화재·현대해상·KB손해보험 등 상위 5개 손보사의 당기순이익 합산액은 올해 1분기 기준으로 2조5277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작년 동기 1조9921억원보다 26.8% 늘어난 액수다.

삼성화재의 순익은 작년 1분기 5792억원에서 올해 1분기 6839억원으로 18.1% 증가했다. 같은 기간 DB손보는 4473억원에서 5834억원으로 30.4% 늘었고 메리츠화재는 3965억원에서 4909억원으로 23.8% 늘었다.

현대해상은 3153억원에서 4773억원으로 51.4%, KB손보는 2548억원에서 2922억원으로 15.1% 증가했다.

반면 삼성생명·한화생명·교보생명·KB·신한라이프 등 상위 5개 생보사의 당기순이익 합산액은 올 1분기에 1조5413억원에 그쳤다. 이는 지난해 1분기기 1조8995억원 대비 약 24% 감소한 수치다.

삼성생명의 올해 1분기 순익은 전년 동기 7391억원 대비 10.3% 감소한 6633억원에 머물렀다. 같은 기간 교보생명은 4786억원에서 2933억원으로 38.7% 감소했으며 한화생명은 4635억원에서 3683억원으로 36.5% 쪼그라 들었다. 

KB라이프는 전년 1231억원 대비 16.7% 줄어든 1034억원 달성에 그쳤다. 다만 신한라이프는 올 1분기에 전년 동기 1338억원 대비 15.2% 증가한 1542억원의 순익을 달성했다. 

이처럼 생손보사 실적 희비가 갈린 데에는 IFRS17 영향이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손보 업계는 실적 상승의 주된 요인으로 ▲장기보험의 보험계약마진(CSM) 상각액 증가 ▲안정적인 예실차 관리를 통한 보험 손익 개선 등을 꼽았다.

CSM은 IFRS17 수익성 지표로 보험서비스 제공으로 미래에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이익을 현재 가치로 환산한 값이다. 

미래에 예상되는 이익을 계약 시점에 우선 부채로 인식한 후 보험계약 기간에 상각해 이익으로 다시 인식하는 구조다. 그래서 암보험이나 간병보험 등 수수료가 높고 납입기간이 긴 장기보험은 CSM 산정에 유리하다. 

생보 업계는 실적 하락의 이유를 'IFRS17 도입에 따른 IBNR(미보고 발생 손해액) 준비금 적립 기준 변경'에서 찾았다. 이 기준 변경으로 1분기에 쌓아야 할 자본금이 늘어나서다. 또 고금리 장기화, 종신보험 및 저축보험 판매 부진 등도 영향을 미쳤다고 봤다.

IBNR은 사고가 발생했음에도 고객이 보험금 청구를 아직 하지 않은 경우까지 추정한 보험금을 뜻한다. 이게 커질수록 곳간에 쌓아야 할 돈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동안 생보사들은 IBNR을 보험금이 실제로 지급되는 시점을 기준으로 계산했지만 올해부터는 손보사들과 동일하게 사고가 발생한 시점으로 앞당겨서 계산해야 한다. 실제로 삼성생명과 한화생명은 각각 780억원, 840억원을 IBNR 적립금으로 보험 손익에 반영했다.

2024년 1분기 생손보사 당기순이익 현황. (출처=각사)

◆제 살길 찾기 어려운 생보사…보장성 보험 사활로 생손보 경쟁 격화

금융감독원은 생보사들이 올해 초부터 130%대 환급률을 내세워 단기납 종신보험 출시 경쟁을 벌이자, 과당경쟁의 방지를 위한 자율 시정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난 3월 생명보험협회에 전달했다. 단기납 종신보험 환급률과 관련해 금융당국이 생보 업계에 자율 시정을 권고한 것이다.

게다가 금감원은 이달 초 '신뢰 회복과 혁신을 위한 보험개혁회의'를 출범을 통해 회계 신뢰성 제고에도 나섰다. 보험사들이 자의적인 계리적 가정을 통해 보장한도나 환급률을 올리고 사업비를 늘려 보험료를 자의로 할인해서라도 CSM을 확보하는 구조를 만들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IFRS17 하에서 CSM 규모는 계리적 가정에 기초한 추정과 평가로 산출한다. 

금감원 관계자는 지난해 보험 업계 실적과 관련해 "작년 보험사 당기순이익은 보험 손익 등 실적개선 영향과 회계제도 변경 효과 등으로 전년 대비 증가했다"면서 "금리·환율 변동과 관련한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가운데 공정가치 측정 금융자산의 증가 등으로 향후 손익·자본의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어 보험사는 재무 건전성을 선제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처럼 IFRS17 도입에 따른 IBNR 준비금 적립 기준 변경 효과, 고금리 장기화 등에 금융당국의 압박까지 더해지면서 생보사들이 자연스레 제3보험 시장으로 흘러갔다는 분석이다. 보험연구원이 작년 하반기 각 보험사 CEO 4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생보 CEO들은 향후 1~2년간의 주력 상품으로 종신보험(38.0%)과 함께 건강보험(35.7%)을 꼽았다. 

삼성생명은 주보험에서 사망을 보장하고 입원과 간병을 특약으로 보장하는 건강보험을 판매하고 있다. 저축보험의 비중이 높았던 교보생명은 최근 '교보마이플랜건강보험' 출시를 시작으로 보장성 상품 비중 확대에 나서고 있다. 한화생명은 지난 1월 '더 H 건강보험'을 시장에 선보이면서 제3보험 시장 확대전에 참전했다.

제3보험 시장이 손보사 중심으로 이미 구조화한 상황에서 이와 같이 생보사들이 적극적으로 뛰어들며 제3보험 시장 쟁탈을 놓고 생손보사 간 경쟁이 벌어진 것이다. 다만 이와 같은 경쟁이 과당경쟁, 더 나아가 맹목적 행위로 변질될 경우 보험상품의 질적 가치까지 훼손될 위험이 있다는 우려가 있다.

한승엽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는 "IFRS17은 이전과 비교해 신계약 확보 시 초기에 높은 수익성을 내는 특징이 있는데 그 결과 보험사 입장에서는 신계약 확보로 높은 수익성과 재무 건전성을 갖고자 하는 유인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보험사 간 신계약 유치경쟁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그에 따르면 IFRS17로 들어서며 신계약비는 보험계약과 관련한 미래현금흐름에 포함되면서 보험기간 전체에 걸쳐 이익으로 처리되는데 이에 따라 손익 변동은 안정적인 그래프를 그리게 된다. 그러나 신계약비 손익은 이전과는 달리 전체 보험기간 중 계약 초기에 높은 비중으로 몰려 인식된다. 

때문에 계약 초기에 인식된 만큼 미래에 인식할 이익의 규모는 줄어든다. 따라서 보험사 입장에서는 이익의 규모가 줄어드는 미래 시점에 신계약 규모를 다시 늘릴 필요성이 생긴다. 신계약 규모를 늘리지 않으면 보험사 입장에서 손실부담계약 전환 가능성이 증가해 향후 재무구조가 악화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한 교수는 "장기적 관점에서, 보험사들이 IFRS17 속에서 이익을 늘리기 위해 신계약 모집을 위한 양적 과당경쟁에 빠질 수 있는 것"이라며 "이 과당경쟁이 맹목적 행위로 변질될 경우 보험상품의 질적 가치까지 훼손될 위험이 있다"고 우려했다.

한국은행도 작년 6월 보고서를 통해 IFRS17 시행을 계기로 보장성 보험 출시 쏠림현상이 생겨날 것으로 예측한 바 있다. 한은은 보장성 보험 출시 쏠림현상이 심화할 경우 "보험사들은 현금 유동성 저하 위기에 놓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생보사들의 저축보험 신계약 누적 건수는 지난해 기준으로 32만2600건을 기록했다. 이는 2022년도 저축보험 신계약 건수인 75만6000건에 비해 절반 아래로 감소한 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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