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산업 DNA 바꿔야 생존 가능…'K-SAF' 활성화, 선택 아닌 필수"

[뉴스웍스가 만난 사람] 김재훈 성균관대 기계공학부 교수…"게을리하면 50년 전 수입국 돌아갈 수도"

2024-05-31     정민서 기자
김재훈 성균관대 기계공학부 교수. (사진=정민서 기자)

[뉴스웍스=정민서 기자] '지속가능항공유(SAF)'는 석탄이나 석유 대신 폐식용유·동식물성 기름 등 바이오 연료로 생산한 친환경 항공유다. 기존 항공유보다 탄소 배출을 80%가량 줄일 수 있는 SAF는 시장 규모가 나날이 성장 중이다.

미국·유럽·일본 등 주요국에서는 SAF 사용 의무화와 함께 자국 정유사가 자국 내 설비투자 비용을 지원하고 생산 세액공제를 적용하는 등 과감한 지원을 통해 입지 굳히기에 나섰다.

국내 정유사들은 전 세계적으로 강화되는 탈탄소 기조에 따라 친환경 연료를 중시하는 시장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SAF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항공유 수출 세계 1위 국가인 만큼 이런 시장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해야 하지만, 현실은 걸음마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올해 초 석유사업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며 정유사들이 SAF를 직접 생산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그러나 아직 사업이 시작 단계에 머물러있는 데다, 구체적인 제도 논의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뉴스웍스는 김재훈 성균관대학교 기계공학부 교수를 만나 국내 SAF 산업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K-SAF 활성화를 위해 속히 해결해야 할 업계 및 정부의 과제에 관해 물었다.

-SAF는 미래 항공 연료 시장에 어떤 중요성을 가지고 있나.

"가격 측면만 본다면 SAF는 기존 항공유보다 4~5배 비싸기 때문에 '이걸 정말 해야 하나?', '이 가격 상승분을 누가 부담하지?'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세계적으로 항공 분야의 탄소 감축을 목표로 하고, 그게 인류 전체의 공통적인 숙제가 됐기에 당위성은 충분한 상황이다.

일부에서는 전기나 수소 에너지를 사용하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전기와 수소를 비행기에 사용하기에는 너무 무겁다. 또 에너지 밀도가 낮아 안전성에도 문제가 있다. 장거리 비행기의 경우 전체 무게의 40%가 항공유가 차지한다.

현재 전체 항공 분야 이산화탄소 발생량의 70% 이상이 장거리 비행에서 배출된다. SAF를 활용하지 않고서는 항공 분야의 탄소 감축이 거의 불가능하다. SAF는 유일한 대안이다.

미국이나 유럽, 일본은 SAF의 생산과 활용에 대한 로드맵이 있다. 미국은 강력한 인센티브 제도, 유럽은 의무화 제도, 일본은 의무화 제도와 함께 보조금 지급과 법인세 감면 등 지원책을 제시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직 아무것도 없다.

우리도 결국 '의무화+인센티브' 제도로 가야 되는데 결국 핵심은 국민 수용성이다. 정부에서 얼마나 정부에서 설득이 가능할 것인지, 설득이 안 된다면 세금을 늘릴 수밖에 없는데 이런 것들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이뤄진 적이 없다.

또 다른 경제적 측면에서 보면 우리 석유화학 산업을 보면 정유업체, 석유화학업체, 정밀화학업체 등 전체적인 밸류체인(가치사슬)을 다 갖고 있다. 만약 윗단이 무너지면 아랫단이 중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그런 리스크를 방지하려면 SAF가 더욱 필요하다."

-국내 정유사들이 직면한 도전 과제는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기술의 부재다. 국내 정유사들은 전 세계 10위 안에 들어가는 정유 능력을 갖췄지만, 사용되는 기술은 사실상 외국 기술이다. 국내 정유산업은 1970년대 공장을 들여오며 시작됐다. 뜯어보면 순수하게 우리가 만든 건 거의 없다.

정유 제품의 질과 가격 측면에서는 박수쳐 줄만 하다. 하지만 50여 년 동안 미래 사업에 대해 얼마나 고민하고 준비했는지는 의문이다. 바이오 연료의 중요성은 30여 년 전부터 제시됐다. 20여 년 전부터 바이오 항공유를 꾸준히 개발해 온 세계 메이저급 정유사들을 보면 알 수 있다.

물론 국내 정유사들이 바이오연료 연구를 안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오랜 기간 기술 투자와 인력 양성 등을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배터리나 반도체 업계와 비교하면 아쉬운 게 사실이다.

여기서 국내 정유산업의 DNA를 볼 필요가 있다. 직접 개발한 기술을 상업화하는 DNA 말이다. 50년 전에는 우리가 가진 게 없어 기술 기반 마련 자체가 어려우니 용납할 수밖에 없었다. 50년이 지난 지금도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외국 기술을 이용해 생산한 SAF가 정말 'K-SAF'가 될 수 있는 건지 의문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연구개발이 필요한가.

"SAF 만드는 11개의 기술 중 국내 정유사의 다운스트림을 그대로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이 있다. 그중 코프로세싱(공동처리)은 정유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라고 생각한다.

다만 코프로세싱이 담당할 수 있는 SAF의 양이 10% 미만이다. 나머지 90%는 다른 데서 와야 한다는 것이다. 이건 국내 정유사들이 아직 상용화가 안 된 기술을 직접 개발할 건지, 아니면 다른 타 기업이 기술 개발해 만든 공장을 또 턴키(일괄수주)로 들여올 건지에 대해 디시전 메이킹(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해외 주요국은 SAF 시장 선점을 위해 과감한 지원에 나섰다고 들었다.

"미국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 통해 자국에서 SAF를 생산한 정유사에 갤런당 최대 1.75달러의 세액공제를 제공하는 강력한 인센티브 정책을 펴고 있다. 석유로 항공유를 만들어 판매하는 것보다 바이오매스를 활용해 항공유를 만들어 판매하는 것이 더 이득이 되도록 만든 것이다.

유럽은 SAF를 포함한 재생에너지를 40%까지 확대하는 의무화 정책을 발표했다. SAF 최소 사용량의 경우 내년 2%에서 시작해 5년 간격으로 늘려 2050년에는 SAF 의무 혼합을 70%를 목표로 하고 있다. 유럽은 'EU 배출권 거래제도(ETS)'를 통해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탄소상쇄·감축제도(CORSIA) 구현을 보장하고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일본은 오는 2030년까지 항공유 사용량의 10%를 SAF로 의무화하는 계획을 세웠다. 의무화 정책과 함께 SAF 생산·판매 기업에 10년간 법인세를 최대 40% 줄이는 지원책도 내놨다. 자국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일본 내에서 생산된 SAF는 10년간 ℓ당 30엔(약 270원)의 세액 공제도 제공한다.

결국 국내 정유사가 경쟁하기 위해선 정부의 정책적 뒷받침 없인 불가능에 가깝다. 우리도 의무화와 인센티브 정책 등 다양한 대응 전략이 필요하다. 또한 이를 위한 많은 논의와 국민 수용성 제고가 필요하다."

-업계 차원에서 필요한 노력과 전략이 있다면.

"앞서 말했듯 기술, 인력, DNA가 전무한 상태다. 기술 개발과 새로운 돌파구 마련에 대한 DNA가 없어 기술이 부재하고, 관련 분야에 대한 인력도 없는 상태다. 그래서 업계 차원에서 필요한 노력을 원론적으로 말하자면 ▲차세대 기술에 대한 투자 ▲인력 양성 ▲기반 기술 확보 ▲원재료 확보에 대한 투자 등이 있을 것이다. 아울러 중소기업하고 상생에 대한 노력도 필요하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현재 준비 중인 바이오연료 예타(예비 타당성 조사) 사업이다. 예산 규모는 정부 2400억원, 민간 600억원 비율로 모두 3000억원 정도다. 원료만 잘 확보한다면 턴키로 들여온 공장에서 SAF를 생산하는 것과 생산을 위한 K-SAF 인증체계 마련이 골자다.

또 한국은 바이오매스 자원이 부족해 수입에 의존해야 하기에 목질계 바이오매스로 합성가스를 만들거나 이산화탄소를 전환해 항공유를 만드는 공정에 대한 내용도 포함했다. 아울러 정유산업의 미래를 위해 필수적인 인력 양성에 대한 내용도 포함해 6월 초 중으로 제출할 예정이다."

-K-SAF 성장을 위해 필요한 정부 지원 방안을 제언해 달라.

"SAF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세 단계가 있다. ▲공급을 어떻게 활성화할 것인가 ▲수요를 어떻게 창출할 것인가 ▲수용성을 어떻게 제고할 것인가다.

공급 인프라 확대를 위해선 세제 혜택과 법인세 감면, 시설에 대한 감가상각 확대가 필요하다. SAF 공장 하나를 짓는데 2조원가량이 든다. 정유사들이 2조원를 투자해 SAF를 열심히 만들더라도 기존 항공유보다 4~5배 비싸기 때문에 이윤이 안 남는 상황이 반복될 것이다. 이에 대한 감가상각에 대한 세제 혜택을 누가 책임질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또 SAF를 시장에 비싼 가격에 내놨을 때 인천공항 같은 항공업계가 이를 구매하려면 정부에 손을 벌릴 수밖에 없다. 정부 지원은 결국 세금에서 나오는 만큼, 국민 수용성 제고가 필요하다. 국민을 얼마나 기술적으로 잘 설득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액션 플랜이 나와야 하는데 아직 없는 상태다.

결국 SAF는 하루 이틀 만에 끝날 일이 아니다. 이게 정유·화학업계의 밸류체인을 다 바뀌어야 하는 굉장히 중요한 사안이다. 일본은 자국 산업 내 SAF의 위치가 반도체, 철강과 비슷하다. SAF가 무너지면 정유·화학사업이 무너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은 주요 정책에 반도체, 이차전지, 수소는 있지만 SAF는 없다.

SAF를 보면 어느 하나 쉬운 얘기가 없다. 여러 이해관계가 엮여 있어 누구 하나가 나서 정책을 만든다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다. 이런 것들을 잘 이해하고 지원 방안을 마련하고 국민들에게 공론화 등을 해 줄 전문가 집단을 만들어야 한다. 특히 항공산업의 경우 국토부, 산업부, 환경부, 기재부 등 연관 부처가 많아 SAF 관련 통합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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