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정부에 묻는다…"갈데 없는 소아응급환자 어쩔 셈이냐"

김주형 대한소아청소년병원협회 부회장·전주다솔아동병원장

2024-11-14     김다혜 기자
김주형 대한소아청소년병원협회 부회장.

"10개 소아청소년병원(아동병원) 중 9개 소아청소년병원이 사실상 소아응급실 역할을 하고 있다."

대한소아청소년병원협회가 지난해 6월 전국 회원병원을 대상으로 조사한 소아청소년병원 소아응급실화 실태를 조사한 결과다.

전국의 소아청소년병원은 소아응급실이 없다. 그럼에도 소아의료체계의 붕괴로 인해 사실상 소아응급실 역할을 하고있는 것이다. 아마도 올해는 소아청소년병원의 소아응급실화는 더욱 심해졌을 것이다. 상황이 더욱 악화됐기 때문이다.

소아청소년병원이 소아응급환자를 보게 될 경우 여러 가지 문제점이 노정(路程)돼 있다. 많은 부담감 속에서 소아청소년병원은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에게 주어진 사명을 다하기 위해 부담을 안은 채 소아응급환자를 진료하고 있는 것이다.

응급 환자 이송이 안 될 경우 그 환자에게 여러 명의 의사와 간호사가 진료해야 하는 부담감과 함께 법적 책임 문제까지 감당해야 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음은 물론, 소아응급환자가 구급차에 의해 내원했을 경우 일반 진료를 할 수 없어 일반 환자들이 장시간 대기 중 상당수가 불만을 터트리고 돌아가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소아청소년병원이 소아응급 실태를 적나라하게 발표한 지 1년여 간이 넘어가지만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않고 있다.

몰라서 그런 건지,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건지. 소아청소년병원의 소아응급실화에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정부를 보면 답답하고 한심하다. 이제는 아예 소아청소년의 건강을 포기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응급실이 없는 그래서 응급시설조차 없는 소아청소년병원이 어쩔 수 없이 사명감 하나만으로 소아응급환자를 보고 있는데도 정부가 손을 놓고 있는 현실이 개탄스럽다. 소아청소년병원이 소아응급환자를 보기 위해서는 법적, 제도적, 정책적 대책이 마련돼야 최상의 환경에서 최상의 진료와 진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의료 사각지대가 아닐 수 없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전진숙 국회의원은 응급의료기관의 소아응급환자 진료 현황 조사를 발표하면서 소아응급진료가 가능한 응급의료기관이 10곳 중 1곳도 안 된다는 분석을 내놨다. 410개 응급의료기관 중 54개소(13.2%)는 24시간 내내 소아 응급환자 진료가 불가능해 환자를 아예 수용할 수 없다고 한다. 열악한 근무 환경으로 응급실 내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있는 응급의료기관도 턱없이 부족하다고 한다.

소아청소년병원이 소아응급실이 돼 버린 것이다. 대학병원의 소아청소년 전문의의 이탈과 전공의의 수 대폭 감소 등으로 앞으로가 더욱 걱정된다. 안일한 생각을 할 때가 아닌데 소아응급환자 대책은 안일 그 자체다.

언제까지 소아청소년병원이 사명감 하나만으로 소아응급환자를 진료해야 하는지. 정부가 답을 해 줬으면 좋겠다. 소아청소년병원도 임계점에 도달했다. 사명감의 한계점이 온 것이다. 소아청소년병원도 병원을 경영해야 하는 입장인데 소아응급환자 진료로 인해 일반 환자 진료에 차질이 빚어지고 직원들의 볼멘소리가 높아져만 가고 있다.

소아응급환자를 진료하다 보면 일반 진료 환자를 보지 못해 경영의 어려움이 발생하고 법적 리스크 우려까지 있어 소아응급환자 진료 불가를 선언할 날이 머지않은 듯하다. 더 이상 버티지 못하게 될 상황이다.

종합병원의 소아응급환자 진료가 불가능해 소아청소년병원이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데 이마저도 한계점에 온 것을 정부 당국은 인식하고 소아청소년병원과 조속히 대책 협의와 논의를 시작해 주기를 바란다. 소아청소년병원마저 결국 견디지 못해 소아응급환자를 포기하는 최악의 경우는 상상하기조차 싫지만 이대로는 곧 현실이 될 것 같다.

정부의 실천이 늦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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