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울산공장 '질식 사망사고'…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받나
[뉴스웍스=정현준 기자] 최근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 발생한 연구원 3명 질식 사망 사고에 대해 노동 당국이 사실관계 파악에 착수했다. 이번 사고는 중대재해처벌법의 적용 여부 및 대상을 놓고 업계 안팎의 이목을 끌고 있다.
21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사고 직후 관할 노동청인 부산지방노동청 근로감독관들이 현장에 출동해 해당 작업과 동일한 작업에 대해 중지 명령을 내렸다. 현재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발생한 질식 사고와 관련해 중대재해처벌법 및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여부에 대한 조사가 진행 중이다.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도 사고 원인과 책임을 철저히 규명하기 위해 신속하고 면밀한 조사를 지시했다.
노동부 관계자는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이며, 정확한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비공개로 수사가 진행되는 점을 양해해 주시길 바란다"며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보통 안전 책임자는 공장장급이고, 중대재해처벌법에서는 대표이사가 책임자로 규정된다. 최종 확정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밝혔다.
사고는 지난 19일 오후 3시경 울산 북구 양정동 현대차 울산4공장 전동화 품질사업부의 차량 성능 테스트 공간(체임버)에서 발생했다. 이 사고로 현대차 남양연구소 소속 책임연구원 2명과 협력업체 소속 연구원 1명이 질식사한 채 발견됐다. 업계에서는 연구원들이 밀폐된 체임버에서 차량 주행 테스트를 하던 중 배기가스가 외부로 배출되지 않아 질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다음 날인 20일 울산경찰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고용노동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등과 함께 사고 현장인 울산공장 전동화 품질사업부 차량 성능 테스트 공간(체임버)에서 합동 감식을 진행했다.
이동석 현대차 대표는 이번 사고와 관련해 담화문에서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사고가 발생한 것에 대해 대표이사 CSO로서 말로 표현하기 힘든 참담함과 비통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다”며 “안타까운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대책 마련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유가족분들께 진심으로 깊은 애도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회사는 유가족들에게 가능한 모든 지원과 조치를 다 하겠다”고 약속했다. 또한 “이번 사고를 계기로 현장 안전 확보의 중요성을 다시금 깊이 인식하고 있다”며 “관계기관의 현장 조사와 원인 규명 과정에 성실히 협조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현대차 노조와 울산 지역 정치권에서는 철저한 진상 조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차지부는 이날 성명을 통해 “다양한 기후 조건과 주행 환경을 인위적으로 조성해 차량 성능과 내구성을 테스트하는 복합 환경 체임버는 밀폐된 공간과 유해 가스 발생 등으로 인해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가 많다”며 “노동 환경의 개선과 책임 소재 규명이 시급하다”고 촉구했다.
더불어민주당 울산시당은 같은 날 입장문에서 “10월 이후 울산에서는 대기업 중대재해 사고가 연이어 발생했다”며 “사망자와 중상자가 나온 대부분의 사고가 안전 보호장치 등으로 충분히 방지할 수 있었던 사고로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대차 울산공장에서는 불과 열흘 전에도 노동자 추락 사망사고가 발생했다”며 “이번 사고 역시 밀폐된 실험 공간이라는 장소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현대차의 노동 환경 안전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진보당 울산시당도 “현대차에서 올해만 중대재해로 인한 사망사고가 두 번째 발생했다”며 “이번 사고가 발생한 공간은 다양한 기후 조건과 주행 환경을 인위적으로 조성해 차량 성능과 내구성을 테스트하는 곳으로, 이러한 밀폐된 공간은 노동자들의 생명을 위협했다”고 주장했다.
현대차 울산공장은 상시근로자가 50명이 넘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 사업장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사업장에서 발생한 중대 재해로 사망자가 발생하거나 다수가 중상을 입을 경우, 사업주 또는 경영 책임자에게 형사 처벌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2022년 1월 시행 후에는 상시근로자 수 50명 이상 기업에만 적용하다가 올해 1월 27일부터 상시근로자 수 5명 이상의 모든 기업으로 적용 범위를 확대했다. 이를 위반해 사망자가 발생한 경우로 드러나면 사업주 또는 경영 책임자에게 1년 이상 징역이나 10억원 이하 벌금이 부과된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현대차에서 발생한 사고를 살펴본 결과, 이번 사고는 세 번째 사망사고로 파악됐다.
2022년 3월 전북 완주군 현대차 전주공장에서 작업 중이던 40대 노동자가 대형트럭 조립설비의 마무리 공정에서 문제가 발생해 이를 점검하고 수리를 진행하던 도중 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사를 맡았던 광주지방노동청은 2023년 9월 무혐의 판단으로 해당 사건을 전주지방검찰청으로 송치했고, 전주지검은 해당 사고에 대해 현대차가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이행했다고 판단해 무혐의 처분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7월에는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30대 후반 노동자가 엔진 가공설비 정비 작업 중 갑자기 내려온 가공설비 상부 로더에 충격을 받아 숨졌다. 이에 대해 노동부 관계자는 “해당 사건은 현재까지 조사 중”이라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사고와 관련해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의 취지가 다르며, 이에 따라 법적 처벌 가능성과 대상이 달라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은 공장장이나 사망자의 직속 상급자가 주로 처벌 대상이 되지만, 중대재해처벌법은 대표이사를 겨낭한 법으로 관리 체계와 운영 실태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핵심이다. 사고 원인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현재로서는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이동현 법무법인 신진 대표변호사는 “산업안전보건법은 사고 발생 시 직접적인 책임을 묻는 법이고, 중대재해처벌법은 평소의 안전보건 조치를 제대로 이행했는지를 확인하는 법”이라며 “사망 사고에 대해 산업안전보건법 적용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만, 중대재해처벌법은 안전관리 체계와 그 체계를 어떻게 운영했는지에 따라 적용이 되지 않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서 추정하는 환풍시설 오작동으로 인한 질식사와 관련해선 “산업안전보건법은 현장에서 매일 이뤄지는 관리 책임을 규정하고 있다. 환풍시설을 점검하지 않아 사고가 발생했다면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볼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회사가 주기적으로 점검하고 이상 발생 시 대표이사에게 보고, 예산을 집행해 수리하는 체계를 갖추고 이를 제대로 운영했다면 환풍시설이 작동하지 않았더라도 대표이사는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결국 중대재해처벌법은 체계와 운영 실태를 중점적으로 보기 때문에 이를 충족했을 경우 대표이사는 처벌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한편, 정부도 산업 현장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했다고 해서 모든 대표이사가 처벌받는 것은 아니라고 명확히 밝히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올해 1월 보도참고자료를 통해 “사업주와 경영 책임자가 중대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안전보건 관리체계를 구축하고, 안전 및 보건을 확보하기 위한 제반 의무를 이행했다면 처벌받지 않는다”며 “사업주 또는 경영 책임자의 중대재해처벌법상 의무 위반과 종사자의 사망 사이에 고의 및 예견 가능성, 인과관계 여부 등을 수사를 통해 확인하고 이것이 명확한 때에만 처벌받게 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