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쪽 된 사도광산 추도식…日참석자 두고 양국 눈높이 '너무 달랐다'
韓정부, 중량급 인사 참석해 달라…日 답은 '아이돌 출신의 극우 정치신인' 내년 한일 수교 60주년…윤석열 정부 대일 외교 정책 영향 줄수도
[뉴스웍스=허운연 기자] 우리 정부의 불참 선언에 '사도광산 추도식'이 반쪽짜리 행사로 치러졌다. 이번 건으로 일제 강점기 강제노역에 대한 양국의 시각이 극명하게 표출되면서, '먼저 믿으면 돌아온다'라는 대일 외교를 줄곧 견지해 온 우리 정부로서는 진정성 없는 일본의 행보에 낭패를 본 것으로 해석된다.
일본 사도광산 추도식 실행위원회는 24일 오후 1시 사도섬 서쪽에 있는 사도시 아이카와개발종합센터에서 자국 인사만 참석한 가운데 '사도광산 추도식'을 개최했다.
전날 우리 외교부는 사도광산 추도식에 불참한다고 일본 측에 통보했다. 불참 배경에 대해서는 "추도식에 대한 양국 외교당국 간 이견 조정에 필요한 시간이 충분치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외교부 관계자는 물론, 강제노역 피해자 가족과 취재진 등이 추도식 참석을 위해 이미 일본에 도착한 상황에서 불참을 긴급 결정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상황이다. 이들은 현지에서 별도의 추도식을 열고 박물관 등을 시찰하는 것으로 일정을 바꿨지만, 애초 방일 목적은 크게 퇴색하게 됐다.
갑작스러운 불참은 일본 정부가 추도식에 참석하는 일본 중앙정부 대표로 야스쿠니 신사 참배 경력이 있는 극우 성향의 이쿠이나 아키코(生稻晃子) 외무성 정무관을 보내기로 한 것이 결정적 이유가 됐다.
그간 우리 정부는 일본 측에 총무성 정무관급(차관급) 이상의 인사 참석을 지속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참석하는 당국자의 급에 따라 행사의 무게감이 달라지는 만큼, 이는 일본 정부가 강제노역 노동자 건을 대하는 태도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틀 전인 22일 일본 정부는 추도식이 정부 행사가 아닌 민간 행사라며 총무성 인사가 아닌, 외무성 아키코 정무관이 참석한다고 알려왔다. 아키코 정무관은 지난 2022년 당선된 참의원 초선으로, 80년대 인기를 끈 '오냥코클럽', '우시로가미히카레타이' 등에서 활동한 아이돌 출신의 신인 정치인이다. 일본 현지에서도 이색 경력의 참의원 당선자로 한동안 화제가 됐다.
문제는 그가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의원 당선 후 참배한 것이 알려지면서, 일본 정부의 추도식 참석 인사로 적절하냐는 논란이 불거진 것이다. 또한 그는 참의원 선거 전 현지 매체의 인터뷰에서 위안부, 강제노동과 관련된 질문에 대해 "한국 정부가 더 양보해야 한다"라고 언급한 적도 있다.
결국 일본의 노림수가 담겼는지 여부를 떠나, 역사적 성향부터 정치적 중량감까지 우리 정부의 기대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던 셈이다.
그간 사도광산 추도식을 앞두고 한일 양국이 보인 온도 차는 컸다.
이번 추도식은 지난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사도광산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때 일본이 매년 열기로 우리 측과 약속한 조치다. 대신 우리 정부는 사도광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반대하지 않고 협력했지만, 등재 후 일본 정부의 태도는 급변했다.
추도식 공식 명칭부터 누구를 위한 추도식인지 불분명한 '사도광산 추도식'으로 정해졌다. 또한 일본 측 추도사에 조선인 노동자를 기리는 표현이 어느 정도 수위로 담길지 등을 두고 갈등을 빚었다. 개최 시기도 여러 이유를 들며 당초 7~8월에서 11월로 늦춰졌다.
일본이 우리 정부에 약속한 추도식이었지만, 숙소·항공편 등 소요 예산도 전부 우리 정부가 부담하는 것으로 정해졌다.
이보다 앞서 사도광산에 설치하기로 한 조선인 노동자 관련 전시물 설치는 접근성이 나쁜 아이카와 향토박물관에 마련됐다. 이마저 전시물에 '강제 연행'이나 '강제 동원' 등의 표현이 빠져 논란을 빚었다.
이런 일본의 태도 변화에 결국 우리 정부로서는 실익이 없다고 판단해 참석을 포기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대일 저자세 외교'라는 비판 속에도 뚝심 있게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밀어붙였던 윤석열 정부의 행동 변화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특히 내년 수교 60주년을 맞는 한일 관계에도 적잖은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일본 현지 매체들은 한국 정부가 여론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을 나타내고 있다.
이날 아사히는 "일본 측은 성심성의껏 대응했다. (한국의 추도식 불참은) 심히 유감스럽다"고 외무성 관계자의 발언을 인용해 보도했다. 교도통신 역시 "한국이 국내 여론에 과잉 반응하고 있다"는 외무성 관계자의 말을 기사에 실었다.
산케이는 "일본과의 협력을 중시했던 윤석열 정부가 역사 문제를 둘러싼 한국 내 여론에 발목을 잡혔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