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HBM 대중 수출 통제에…"한국 영향 적을 것 vs 큰 파장, 피해 불가피"
[뉴스웍스=채윤정 기자] 미국 정부가 인공지능(AI) 개발에 필수적인 핵심 부품인 고대역폭메모리(HBM)를 대중 수출 통제 대상에 추가해 우려가 일고 있는 가운데, 이번 수출 통제가 미치는 영향에 대해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정부는 이번 수출 통제가 미치는 영향이 적을 것으로 보는 반면, 전문가들은 '국내 업체에 악영향이 우려된다'는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반도체 양사는 이번 수출 통제 대상 추가에 대해 '크게 우려할 바는 없다'는 게 기본 입장이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경우, HBM 매출 중 30%가 중국에서 일어나는 만큼, '피해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분석이 일각에서 나온다.
로이터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은 2일(현지시간) 수출 통제 대상 품목에 특정 HBM 제품을 추가한다고 관보를 통해 밝혔다. HBM 수출 통제는 이달 31일부터 적용된다.
HBM은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쌓아 올려 만든 고성능 메모리로 AI 가속기를 가동하는 데 꼭 필요하다. HBM은 AI 가속기를 동작시키기 위해 핵심적인 부품으로, SK하이닉스가 이 시장을 선두하고 있으며 삼성전자와 미국 마이크론이 그 뒤를 추격하고 있다.
미국의 HBM 대중 수출 통제 대상 추가와 관련해 산업통상자원부는 "삼성전자가 일부 사양이 낮은 HBM을 중국에 수출하고 있지만 매출 비중이 작고, SK하이닉스는 대부분의 HBM을 미국 기업인 엔비디아에 공급하고 있다"며 "한국 기업에 미치는 영향은 전반적으로 작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산업부는 또 수출 통제 품목 수출에 대한 허가 신청 시 기존에 VEU(검증된 최종 사용자) 승인을 받은 중국 내 우리 기업은 이번 조치와 관계 없이 수출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미국의 추가적인 HBM 대중 수출 통제는 자국의 국가 안보 관점에서 볼 때 첨단 수준의 장비로 한정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범용 장비가 모두 포함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이번 대중 수출 통제로 추가 장비에 대한 수출이 통제되면서 국내 기업이 일부 영향을 받을 수 있지만, 개별 회사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고 보고 있다.
산업부는 4일 반도체 장비 업체들과 간담회를 진행해 이번 조치의 상세 내용을 공유할 계획이다. 또 한국반도체산업협회(KSIA) 및 무역안보관리원(KOSTI)에 수출통제 상담창구도 운영하기로 했다. 또한 이번 조치의 영향을 계속 점검하면서 기업의 수출 애로를 최소화할 지원 방안을 적극 모색할 방침이다. 특히 중국 수출 기업에는 수출 통제 제도와 관련된 설명회를 개최하고 가이드라인을 배포하는 등 지원에 나서기로 했다.
국내 업체들은 우리 정부와 마찬가지로 미국의 HBM 대중 수출 통제 대상 추가에 대한 영향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SK하이닉스는 이미 6~7년 전, 트럼프 1기 때부터 미국이 중국의 반도체 산업을 제재하는 기조는 계속 유지돼 왔고, 바이든 정부에서도 중국에 대한 제재안을 지속적으로 발표해온 만큼, 이번 제재안이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봤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중국에 공급하고 있는 HBM의 물량은 아주 적다"며 "산자부에서 밝힌 바와 같이 이번 제재안이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SK하이닉스는 대중 수출 물량이 적은 만큼 이 물량을 포기해도 매출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전자는 중국에 공급하는 HBM 물량이 SK하이닉스에 비해 더 큰 만큼 추가적인 검토에 나선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산업부에서 발표한 바와 같이 큰 영향은 없을 것으로 본다"며 "이번 수출 통제 대상 추가로 인한 영향에 대해 더욱 면밀히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반면, 이런 설명과 달리 일부 전문가들은 국내 반도체 업계에 미치는 파급력이 상당히 클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종환 상명대학교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미국 정부의 HBM 대중 수출 통제 대상 추가가 미치는 영향은 크다"며 "HBM이 HBM3E나 HBM4 등 5세대, 6세대로 확대되면서 앞으로 중국에 대한 수출을 더욱 늘려야 하는 상황이다. 특히 반도체 시장에서 AI 반도체가 대세가 되는 상황에서, HBM 수출 확대에 큰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반도체 업체들이 미국 정부와 협의를 해봐야겠지만, HBM2 등 범용 제품은 집중 규제에서 풀어주고 HBM3나 HBM4 등 신제품에 대해서만 규제를 하는 방안을 요구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바이든 정부는 중국과 전면적으로 공급망 분리 등 '디커플링'은 하지 않는 대신 미국 안보에 도전이 된다고 판단하는 반도체·인공지능(AI)·양자컴퓨팅 등 특정 분야에 대해 담장을 높게 세우는 '디리스킹(위험 축소)'을 표방해오고 있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해 10월 강화된 대중 반도체 수출 통제 조치를 발표한 바 있다. 이 조치는 AI 칩 규제 강화, 중국 기업 13곳 제재 대상 추가, 제재 우회 차단 등으로 구성돼 있다. 미 정부는 당시에 AI 반도체에 대한 ‘성능 밀도’ 기준을 추가하고, 내부 통신 속도 기준을 제외했다.
미국 정부는 또 2022년 8월에는 중국군이 AI 구현 등에 쓰이는 그래픽처리장치(GPU) 등 반도체 제품을 군사용으로 전용할 위험이 있다며 엔비디아와 AMD에 관련 반도체의 중국 수출을 금지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엔비디아의 'A100' 및 업그레이드된 버전인 'H100'의 중국 수출에 제동이 걸리기도 했다.
바이든 정부의 반도체 수출 통제 등 대중국에 대한 강경한 정책이 트럼프 2기에서도 유지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한편, 미국 정부의 이번 수출 통제안에는 일본과 네덜란드가 빠졌는데, 이는 이들 국가가 미국과 비슷한 수준의 수출 통제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분석된다. 따라서 우리 정부의 대미 협상력이 절실한 상황으로 관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