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결산-자동차/철강] 글로벌 車 합종연횡…철강업계는 '삼중고' 신음

2024-12-26     정현준 기자
메리 바라(왼쪽) GM 회장 겸 CEO와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협약서에 서명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현대차그룹)

[뉴스웍스=정현준 기자] 2024년 완성차 업계는 국내외에서 그 어느 업계보다 큰 지각변동을 겪었다.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서 중국 완성차 업체들의 공세에 맞서 주요 완성차 업체들이 경쟁 관계에서 협력과 통합을 강화하는 '합종연횡'이 활발히 진행됐다. 국내에서는 기아가 현대차그룹에 인수된 이후 현대차의 독주를 막아내고 25년 만에 최다 판매 차를 배출하며 새로운 역사를 썼다.    

장기 불황에 시달리고 있는 철강 업계는 올해 노사 갈등과 계엄·탄핵 정국에 따른 고환율 '삼중고'에 시달렸다. 또한 지난 9월부터 본격화된 고려아연과 MBK파트너스·영풍 간의 경영권 분쟁이 장기화하고 있다. 내년 1월 말 열릴 임시주주총회에서 양측은 신규 이사 선임 등 안건을 두고 표 대결을 벌일 가운데, 이 결과에 따라 분쟁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다. 

◆중국 전기차 공세…글로벌 車 '합종연횡' 통한 생존 모색

올해 글로벌 자동차 업계의 가장 큰 화두는 '합종연횡'이었다. 저가 전기차를 앞세운 중국 완성차 업체의 공세에 대응하기 위해,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합병과 협력을 통한 생존 전략을 모색했다. 

폭스바겐그룹은 지난 9월 전기차 수요 감소와 중국 업체들의 저가 공세 속에서 87년 역사상 처음으로 독일 내 공장 폐쇄를 검토했다고 밝혔다. 비용 절감을 통해 실적 부진을 타개하려는 계획이었지만, 임금 삭감과 공장 폐쇄, 정리해고 모두 노조의 강한 반대에 부딪혔다. 결국 지난 21일(현지시간) 외신에 따르면, 폭스바겐 노사는 공장 폐쇄 대신 2030년까지 인력을 3만5000명 이상 감축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기업들은 다른 기업과의 협력 강화에 나서기도 했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9월 제너럴모터스(GM)와 포괄적 협력 계약을 맺었다. 이를 통해 양사는 승용·상용차 분야를 비롯한 내연기관 엔진 개발, 친환경 에너지 분야 기술 교류, 전기·수소차 기술 공동 개발에 나서기로 했다. 

도요타는 BMW와 수소연료전지차 분야 협력을 강화했고, 폭스바겐은 중국 전기차 업체 샤오펑과 중국 내수용 전기차 모델 공동 개발에 착수했다. 

협력을 넘어 기업 간 합병을 택한 곳도 있었다. 지난 23일 일본 2·3위 완성차 업체인 혼다와 닛산자동차가 합병을 발표했다. 닛산이 최대 주주로 있는 미쓰비시자동차까지 합류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3사가 통합되면 현대차그룹을 뛰어넘는 세계 3위 완성차그룹이 탄생할 전망이다. 

이 같은 결정은 중국 등 세계 시장에서의 판매 급감, 전기차 전환 지연에 대한 위기감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전동화 전환 속도가 더딘 혼다와 닛산이 단순 경영 통합만으로는 충분한 시너지를 내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조수홍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현재 완전한 레거시(기존) 완성차 업체는 현대차그룹, 토요타, GM 등 3곳만 남았다. 전기차 업체 테슬라와 BYD를 더해도 총 5개 사가 최상위 그룹을 이뤄 경합을 벌일 것"이라며 "이들 3개 업체 간의 협업 확대가 향후 경쟁 구도 재편에서 매우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기아가 지난 9월 출시한 '더 2025 쏘렌토' 그래비티 트림. (사진제공=기아)

◆하이브리드·RV 훈풍 속 쏘렌토 베스트셀링카…기아 첫 왕좌 

올해 고금리 기조와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 등으로 내수 판매가 줄어든 가운데, 하이브리드와 레저용 차량(RV)의 인기는 꾸준히 늘었다. 그 결과 기아의 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SUV) '쏘렌토'가 국내에서 올해 가장 많이 판매된 차량이 됐다.

올해 1~11월 국내 완성차 누적 판매 1위는 8만5710대를 판매한 기아 쏘렌토가 차지했다. 이어 2위 카니발은 7만5513대, 3위 현대차 싼타페는 7만912대를 각각 판매해 상위 톱3 중 기아 차량이 1·2위를 차지했다. 

12월 실적이 아직 반영되지 않았지만, 쏘렌토는 카니발·싼타페와의 판매량 격차가 이미 1만대 이상 벌어져 있어 올해 연간 최다 판매 모델 등극이 사실상 확정됐다.

쏘렌토가 올해 최다 판매 차로 유력해지면서, 기아는 1999년 현대차그룹 인수 이후 처음으로 연간 판매 1위 모델을 배출하게 됐다. 이로써 25년간 이어진 현대차의 베스트셀링카 독주 체제는 깨질 전망이다.

포스코 포항제철소 1선재공장이 지난달 19일 마지막 선재 제품을 생산하고 가동을 중단하면서 직원들이 공장을 배경으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포스코)

◆中 공세·노사갈등·고환율 '삼중고'…철강업계, 공장 폐쇄·AD 제소 대응

올해 철강업계는 업황 부진이 장기화하는 데다, 중국산 저가 철강재·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 관련 노조 파업 위기·고환율까지 겹치며 '삼중고'에 직면했다. 

국내 철강사 '빅3'인 포스코·현대제철·동국제강은 3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큰 폭으로 감소했다. 포스코의 3분기 연결 기준 영업이익은 4772억원으로 37.6% 감소했다. 현대제철은 77.5% 줄어든 515억원, 동국제강도 79.6% 줄어든 215억원에 그쳤다.

이에 주요 철강사들은 생산량 감축으로 대응했다. 포스코는 포항제철소 1제강공장과 1선재공장을 연이어 폐쇄했고, 현대제철은 포항 제2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동국제강은 지난 6월 야간 생산 체제로 전환하며 선제적 감산에 나섰다. 

임단협 협상도 난항을 겪었다. 포스코는 지난달 노조에 기본급 10만원 인상과 일시금 600만원 지급 등 다양한 복지 안을 제안했으나, 노조가 기본급 8.3% 인상과 복지사업 기금을 요구하며 교섭 결렬됐다. 이후 노조는 이달 초 파업 출정식을 진행한 가운데, 지난 17일 노사는 2024년 임단협 잠정 합의안을 도출했다. 

현대제철은 지난 9월부터 단체교섭을 이어오고 있지만 아직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노조는 지난달 조합원 투표에서 90% 이상 찬성으로 파업을 결의하고 총파업 출정식을 진행한 상태다. 

아울러 현대제철은 이달 산업통상자원부 무역위원회에 중국산 후판에 이어 수입 열연강판에 대해서도 '반덤핑(AD)' 제소를 추진했다. 정부는 제출된 증거를 검토해 두 달 이내에 조사 개시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한편, 철강업계가 마주한 위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다음 달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을 앞둔 트럼프 당선자는 10~20%의 보편 관세를 공약했으며, 당선 이후 캐나다·멕시코 수입품에 25% 관세를 예고한 상태다. 관세가 10%만 적용돼도 국내 철강사들의 매출과 영업이익이 큰 폭으로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또한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시작된 철강 쿼터제의 축소 가능성도 제기돼, 업계의 부담은 더욱 가중될 전망이다.

지난달 13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정현준 기자)

◆고려아연-MBK·영풍 경영권 분쟁…내년 1월 임시주총 표 대결

2024년 철강업계 최대 이슈는 비철금속 제련 분야 세계 1위 고려아연과 MBK파트너스·영풍 간 경영권 분쟁이었다. 갈등이 깊어지면서 75년간 이어졌던 고려아연과 영풍의 공동경영 체제가 사실상 붕괴했고, 다툼은 해를 넘겨 장기화할 전망이다.

특히 이들의 경영권 분쟁에 막대한 자본력을 갖춘 MBK파트너스가 참전하며 양측 모두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평가가 나왔다. 내년 1월 23일로 예정된 임시 주주총회에서는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과 MBK·영풍 간 치열한 표 대결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고려아연은 영풍그룹의 주력 계열사로, 고(故) 장병희 명예회장과 최윤범 회장의 할아버지인 고(故) 최기호 명예회장이 공동 창업했다. 이후 고려아연은 최씨 일가가, 영풍그룹 및 전자 계열사는 장씨 일가가 맡아 경영해 왔으나, 2022년부터 고려아연 지분 매입 경쟁이 벌어졌고 올해 3월 주총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표 대결까지 이뤄졌다.

분쟁이 본격화한 계기는 지난 9월 MBK가 영풍과 손잡고 고려아연 지분 확보에 나서면서다. 영풍은 “최 회장의 전횡을 막겠다”는 명분으로 MBK에 1대 주주 자리를 내줬고, 이후 양측은 경쟁적으로 공개매수에 나서는 동시에 보도자료 등을 통해 여론전을 펼치며 주총 표 대결에 대비해 지분 확대에 집중해 왔다.

고려아연은 12월 23일 임시 이사회를 열고, 내달 23일 열리는 임시 주주총회 안건을 확정했다. 고려아연 경영진이 앞서 기자회견에서 약속한 ▲사외이사의 이사회 의장 선임 및 소수 주주 보호 규정 신설 ▲분기 배당 도입 ▲발행주식 액면분할 ▲이사 수 상한 설정 등이 추진된다. 아울러 주주인 유미개발이 제안한 집중투표제 도입도 검토할 계획이다.

이에 대해 MBK·영풍 측은 "표 대결 판세에서 불리한 최윤범 회장이 주주 간 분쟁 상황을 지속시키고, 자신의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집중투표제를 악용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집중투표제는 이사 선임 시 선임할 이사 수만큼의 의결권을 주주에게 주는 제도로, 주로 소수 주주 보호를 위해 활용된다. 그러나 임시 주총에서 이 제도가 도입되면 최 회장 측 지분 의결권이 최 회장이 추천한 이사들에게 집중될 가능성이 커, MBK·영풍 측이 이사회 과반을 확보하지 못할 수 있다.

한편, 최근 MBK·영풍 측은 장내 매수를 통해 고려아연 지분 1.36%를 추가 확보, 지분율을 40.97%로 끌어올렸다. 자사주를 제외한 의결권주식 기준으로는 46.7%에 이른다. 반면 최 회장 측 지분율은 17.50%로, 우호 지분까지 합치면 약 34% 수준이며, 의결권 기준으로는 39~40%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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