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결산-증권] 밸류업 목표로 힘차게 출발…계엄·탄핵 쇼크에 '용두사미'
부동산PF 여진 털고 대형사 '1조 클럽' 복귀…금투세 폐지 확정 정치 불확실성에 떠난 외국인…美·가상자산 이동 투자자 '급증'
[뉴스웍스=박성민 기자] 올 한 해 주식시장은 '용두사미'라는 사자성어로 대변된다.
기업 밸류업이라는 거창한 목표를 가지고 힘차게 출발했으나, 연말 계엄과 탄핵 정국이라는 거대한 폭풍우 속에 흐지부지 마무리됐다.
3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코스피는 2399.49포인트에 문을 닫았다. 2024년 개장일(2655.28p) 종가와 비교할 때 9.63% 하락한 수치다.
이슈별로 보면 대형 증권사들은 지난해 발목을 잡았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충당금 부담을 덜어내며 1조 클럽 복귀를 예약해 뒀다. 투자자들은 그간 소망해 오던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 소식을 접했다.
그러나 외국인 투자자들은 하반기부터 국내 주식시장을 떠나가는 추세를 보였다. 특히 계엄과 탄핵 정국이 장기화될 조짐을 보인 뒤로는 급격하게 자금을 빼는 모습이었다. 국내 증시가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자 미국 주식이나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에 투자하는 개미들 역시 크게 늘었다.
◆대형 증권사, PF 여진 털고 '1조 클럽' 복귀 예약
국내 대형 증권사들은 지난해 부진을 털어내고 올 한해 우수한 성적을 냈다.
한국투자증권은 올해 3분기까지 1조1578억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하며 가장 먼저 '1조클럽'에 복귀했다.
이밖에 삼성증권(9949억원)과 키움증권(9180억원), 미래에셋증권(9145억원) 등도 3분기까지 지난해보다 대폭 개선된 성적표를 받아들이며 연간 영업이익 1조클럽 복귀를 예약해 뒀다.
다만 신한투자증권은 올해 3분기까지 2951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신한투자증권의 실적이 부진했던 건 1300억원대 대규모 금융사고 여파가 컸다.
지난 8월 5일 '블랙먼데이' 당시 신한투자증권 LP는 대규모 손실이 발생하자, 이를 만회하기 위해 계속해서 매매에 나서다가 추가적인 손실을 입었다.
또한 중·소형 증권사의 경우에도 부동산 PF 여진으로 인한 충당금 부담 속에 부진한 실적을 이어갔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실패…밸류업 효과 '미미'
올해 상반기 주식시장의 가장 큰 이슈를 꼽으라면 단연 '밸류업 프로그램'이다.
2024년 1월 2일 윤석열 대통령은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사상 처음으로 한국거래소를 찾았다. 윤 대통령은 "대한민국에는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세계적 기업이 많지만, 주식시장은 매우 저평가돼 있다"며 "임기 중 자본시장 규제 혁파를 통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정부와 금융당국은 기업 가치 제고 계획을 내놓는 기업을 대상으로 각종 혜택을 부여함과 동시에 '코리아 밸류업 지수'를 신설하는 등 적극적인 참여를 독려했다.
그러나 시장의 반응은 예상보다 미지근했다. 거래소가 발표한 밸류업 프로그램은 구체성 부족과 강제성이 결여돼있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또한 밸류업 지수 포함 종목도 논란이 됐다. 주주환원과 관련해 논란이 된 두산밥캣, 고려아연 등이 대거 포함된 반면 밸류업 우등생으로 꼽힌 금융주들이 빠졌기 때문이다.
거래소는 12월 20일 특별 편입 실시를 통해 금융주와 통신주를 지수에 포함시켰다. 그러나 종목 편출(퇴출)에 관해서는 내년 6월 정기 변경 때 실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결국 올해 코리아 밸류업 지수는 최종적으로 948.90p에 마감하며 기준치인 1000포인트에 미치지 못했다.
◆금투세 4년 만에 폐지…가상자산 과세도 2년 유예
개인투자자들의 가장 큰 관심사였던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는 결국 폐기 절차를 밟게 됐다.
금투세 시행을 밀어붙이던 야당은 폐지를 요구하는 민심 속에 결국 백기를 들었다. 국회는 12월 본회의 마지막 날 금투세 폐지와 가상자산 유예 등의 내용을 담은 소득세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금투세란 국내외 주식·채권·펀드·파생상품 등 금융투자와 관련해 발생한 양도차익에 대해 합산 과세하는 제도로, 지난 2020년 법 개정 이후 유예 기간을 거쳐 내년 1월 시행을 앞두고 있었다.
그러나 국민의힘과 개인 투자자들은 금투세 시행이 한국 주식시장의 성장을 가로막는 주된 요인이라며 전면 폐지를 지속적으로 주장해 왔고, 결국 폐지로 가닥이 잡혔다.
한편 가상자산에 대한 과세 여부도 뒤로 밀렸다. 이 세금은 가상자산을 양도·대여 시 발생하는 소득이 연 250만원을 초과할 경우 지방세를 포함해 22%를 부과하는 것이다. 그러나 국회에서 2년 유예를 결정하면서 도입 시기는 2027년 1월로 미뤄졌다.
◆정치 리스크에 짐 싸는 외국인…계엄 후 3.5조 매도
지난 3일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4일부터 올해 마지막 거래일인 전날까지 한 달 동안 외국인은 코스피에서 3조5867억원을 순매도했다. 이달 초 비상계엄 조치 사태 이후 커진 국내의 정치적 리스크가 투자 심리 악화에 기름을 끼얹은 셈이다.
외국인 이탈의 원인은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이 15년 만에 사상 최고치를 웃도는 등 강달러 현상이 지속되고, 국내 정치적 혼란까지 겹치며 투자심리가 급속도로 냉각됐기 때문이다.
지난 28일 주간 거래에서 원·달러 환율은 장 중 1486원까지 치솟으며 2009년 금융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현재 국내 정치는 윤석열 대통령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이 차례로 탄핵당하면서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경제부총리가 국정임무를 수행하는 사상 초유의 정국을 맞고 있다.
하반기 들어 외국인은 국내 증시에서 매달 순매도를 이어갔다. 코스피에서 외국인은 8월(2조8682억원)을 시작으로 ▲9월(7조9213억원) ▲10월(4조7001억원) ▲11월(4조3039억원)에 이어 12월까지 5개월 연속 '팔자'를 기록했다.
박상현 iM증권 연구원은 "당장 달러·원 환율이 안정되기 위해서는 외국인이 바라보는 국내 정치 불확실성 리스크 완화가 선제돼야 할 것"이라면서도 "역으로 탄핵정국 불확실성이 확산된다면, 예상보다 조기에 1500원 수준에 도달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코인 불장'에 몰려가는 개미들…가상자산으로 자금 이동
국내 증시가 2400~2500선 박스권에 갇히자, 국내 투자자들의 자금은 고스란히 미국 주식과 가상자산으로 옮겨겼다.
특히 미국 대선 전부터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 가능성을 반영해 온 비트코인 가격은 사상 최초로 10만달러를 돌파하는 등 투자자들에게 각광을 받았다.
트럼프 당선 전후로 비트코인의 시가총액은 2600조원을 웃돌면서 코스피와 코스닥의 시가총액을 합한 금액을 역전하기도 했다.
국내 가상자산 투자자 수는 미 대선을 전후로 급격히 늘어나 1500만명을 넘어섰다. 지난달 기준 국내 5대 거래소(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고팍스)에서 계정을 보유한 투자자 수는 1559만명에 달했다.
비트코인 가격이 급등한 데에는 여러 호재가 작용했다. 먼저 친(親)가상자산 대통령을 자처한 트럼프는 대선 승리 시 가상화폐 시장에 대한 관련 규제 완화를 약속했다.
또한 트럼프가 친암호화폐 인사로 분류되는 폴 앳킨스 전 SEC 위원을 차기 SEC 위원장으로 지명한 점도 투자자들의 기대를 키웠다. 아울러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옵션거래가 가능해진 점도 가격 상승을 부추겼다.
비트코인이 랠리하자 나머지 알트코인들도 동반 상승세를 탔다. 시가총액 2위 이더리움을 비롯해 테더, 리플, 솔라나, 도지코인 등이 함께 올랐다. 특히 리플의 경우 이달 초 국내 가상자산거래소인 빗썸과 업비트에서의 하루 거래대금이 10조원에 육박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