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와 결단력으로 '푸른 뱀의 해' 이끈다…새해 도약할 뱀띠 CEO는
[뉴스웍스=정민서 기자] 다사다난했던 2024년 갑진년(甲辰年)이 지나고, 내일이면 2025년 '을사년(乙巳年)'이 밝는다. 60간지 42번째인 2025년 을사년은 청색을 뜻하는 '을'과 뱀을 의미하는 '사'가 만나 '푸른 뱀의 해'로 불린다.
뱀띠는 전통적으로 지혜와 결단력을 상징하며, 신중하고 내면의 에너지가 강한 해로 여겨진다. 경기 침체 및 정국 혼란으로 재계와 금융계가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이를 지혜롭고 신중하게 헤쳐나갈 뱀띠 경영진의 행보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환갑을 맞는 1965년생을 비롯해 경영일선에 있는 1953년생, 젊은 1977년생과 1989년생까지 다양한 연령대에 뱀띠 최고경영자(CEO)가 포진해 있다.
31일 재계에 따르면, 올해 매출 1000대 상장사 중 대표이사급 CEO는 1380명으로, 이 중 뱀띠 경영자는 110명(8%)이다. 연도별로는 1965년생이 80명으로 가장 많고, 이어 1977년생(16명), 1953년 (11명) 등이다.
◆'경영 일선' 구자열 LS 의장…'반도체 1위'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
재계와 반도체 업계에서는 뱀띠 CEO로 구자열 LS 이사회 의장과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이사 사장을 꼽을 수 있다.
1953년생 뱀띠인 구자열 LS 의장은 현재는 LS그룹 회장에서 물러나고, 이사회 의장으로 그룹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그는 경영에는 참여하지 않고 있지만, 그룹의 ESG경영 및 주주가치 극대화 방안 등 기업가치 제고를 주도하고 있다.
특히 구자열 LS 의장은 2009년부터 지난해 1월까지 4차례에 걸쳐 대한자전거연맹 회장을 역임했는데, 재계에서도 구 의장의 '자전거 경영 철학'은 매우 유명하다. 구 의장은 회장 시절 서울 논현동 자택에서 용산 LS타워까지 자전거로 출퇴근했을 정도로 '소문난 자전거광'이다. 그는 자전거 사랑을 경영에도 접목했다. 구 의장은 "경영도 자전거처럼 페달을 밟지 않으면 넘어지고 오르막이 닥치면 힘이 들지만, 이겨내면 반드시 내리막이란 보상이 있다"는 점을 강조해 왔다.
1965년생 뱀띠인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은 올해 SK하이닉스를 '반도체 1위 회사'로 키워놓은 장본인이다.
SK하이닉스는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앞세워 인공지능(AI) 패러다임에 제대로 올라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해 HBM3에 이어 올해는 HBM3E까지 엔비디아에 거의 독점에 가까운 수준으로 HBM을 공급하고 있다.
곽 사장은 HBM3 매출 비중이 지난해 한 자릿수에 그쳤지만, 올해 공급량을 크게 늘렸다. 3분기 전체 매출 비중에서 30%를 차지했고, 4분기에는 HBM 비중이 40%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곽 사장은 내년에 내놓을 HBM4에 대해서도 글로벌 1위에 대한 자신감을 피력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에 HBM4 납품 일정을 6개월 당겨 HBM4 시장에서 승부를 걸고 있다. 직접 제작이 불가한 베이스다이를 위해 파운드리 시장의 최강자인 TSMC와 파트너십을 맺었으며, 이를 통해 더 높은 경쟁력을 확보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곽 사장은 2019년부터 SK하이닉스 제조·기술담당 부사장을 맡아 D램과 낸드플래시 수율을 끌어 올리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곽 사장은 반도체 연구원 출신으로 '기술 주도형'으로 회사를 이끈 것이 지금의 SK하이닉스를 있게 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車·중공업 이끄는 '65년생'…박지원 두산에너빌리티 회장 등
중공업 산업 중심에 서 있는 박지원 두산에너빌리티 회장도 1965년생이다. 원전 기기 제작 국산화와 가스터빈, 해상풍력발전기 독자 모델 확보에 앞장선 인물로 평가받는다.
박용곤 두산 명예회장의 차남인 박 회장은 연세대 경영학과와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뒤 두산중공업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재직하다 회장에 올랐다. 두산그룹의 부회장이기도 한 그는 형인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의 뒤를 이어 그룹을 이끌 다음 회장 후보로 꼽힌다.
박 회장은 사명을 두산중공업에서 두산에너빌리티로 변경, 기존 중공업 중심에서 에너지 중심으로 사업 구조를 고도화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그는 기존 사업에서 우수한 수주 성과를 토대로 4대 성장 사업(가스터빈·수소·신재생에너지·차세대 원전) 육성에 공을 들이고 있다. 원전 사업이 정권에 따라 부침을 겪으며 국내 신규 원전 건설이 불확실해지자 영국·인도·사우디아라비아 등 해외 원전 시장 진출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호세 무뇨스 현대차 글로벌 최고운영책임자(COO)와 김윤구 현대오토에버 사장도 1965년생 뱀띠다.
지난달 현대차 신임 대표이사 사장으로 임명된 무뇨스 사장은 외국인이 국내 주요 대기업 핵심 계열사 CEO로 선임된 첫 사례다.
그룹 내에서 대표적인 미국 영업통으로 평가받는 그는 현대차 주력 판매 차종을 가솔린 세단 중심에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전기차(EV), 하이브리드카(HEV)로 성공적인 전환을 통해 2018년 68만대였던 현대차의 미국 판매량을 지난해 87만대로 끌어올리며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다.
무뇨스 사장은 2019년 현대차 글로벌 최고운영책임자(GCOO) 및 미주권역 담당으로 합류한 이후 북미 시장에서 딜러 경쟁력을 강화하고 수익성을 중시하는 경영 활동을 통해 연이은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2022년 미주 권역을 비롯한 유럽, 인도, 아중동 등 해외 권역의 글로벌 사업을 총괄하는 최고운영책임자(COO)로 임명됐으며, 현대차 사내이사의 역할도 함께 수행하게 됐다.
업계에서는 무뇨스 사장이 세계 시장에서 현대차의 성장세를 지속적으로 이끌어갈 적임자로 평가하고 있다. 이번 외국인 CEO 선임은 현대차그룹이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김윤구 현대오토에버 사장은 지난해 현대차그룹 연말 인사에서 현대오토에버 대표이사로 내정됐다. 김 사장은 연세대학교에서 사회학을 전공했고, 현대건설 인사실장, 현대차 인사기획팀장, 현대차 인사실장과 감사실장을 거치며 다양한 분야에서 경력을 쌓았다.
그는 정보기술(IT) 비즈니스를 포함한 그룹 전반의 사업에 대한 이해도를 바탕으로 인재 등용 전략에 정통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신사업 발굴과 저명한 리더급 전문가 영입에서 뛰어난 성과를 보이며 현대오토에버의 경쟁력을 한층 강화했다.
현대오토에버는 올해 소프트웨어(SW), 전사적 자원관리(ERP), 보안 업계에서 저명한 리더급 전문가를 대거 영입했다. 이러한 성과는 김 사장의 추진력과 전략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유통 업계 뱀띠 CEO는?…77년생·89년생 젊은 리더 포진
유통 업계에서 푸른 뱀띠에 속하는 인물은 이선정 CJ올리브영 대표와 임세령 대상홀딩스 부회장,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부사장 등이 꼽힌다.
이선정 CJ올리브영 대표는 1977년생으로 2022년부터 회사를 이끌고 있다. CJ그룹 내 최연소 대표이사라는 타이틀을 달았고, 대표 부임 이후부터 올리브영의 고속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올리브영은 2022년 연결 기준 매출 2조7809억원에 지난해는 3조8682억원, 올해는 5조원까지 바라보고 있다. 영업이익 역시 2022년 2713억원, 지난해 4606억원으로 수익성 증가가 두드러진다.
이 대표는 상품기획자(MD) 출신답게 고객의 세밀한 요구까지 놓치지 않는다는 평가다. 300개 이상의 중소 뷰티 브랜드를 발굴하면서 올리브영 입지 강화와 K-뷰티 성장에 기여했다.
이 대표는 내년 올리브영의 글로벌화를 본격화할 방침이다. 서울 성수동에 선보인 초대형 매장 '올리브영N 성수'를 K-뷰티 본거지로 만들겠다는 청사진이며, 미국과 일본 등 주요국에도 현지 매장 개설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관련 업계에서는 올리브영이 내년 중 IPO(기업공개)를 재추진하면 자본시장을 달굴 초대형 호재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1977년생인 임세령 대상홀딩스 부회장도 유통 업계의 주목받는 인물이다. 그는 2021년부터 대상과 대상홀딩스의 부회장을 맡고 있으며, 대상의 'K-푸드' 체질 전환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임 부회장은 김치 브랜드 '종가'를 앞세워 김치 세계화의 선봉장으로 나서고 있다. 올해 1~11월까지 김치의 미국 수출량은 1만1548톤을 기록해 지난해 1만660톤을 앞질렀다. 대상 종가가 차지하는 대미 김치 수출액은 70% 이상이다.
대상은 현지 김치 생산 인프라가 확대되고 있다. 2022년 미국 LA에 3000여 평 규모의 대규모 김치공장을 가동했고, 미국 식품기업 '럭키푸드'를 인수하며 북미 시장을 정조준했다. 여기에 베트남 제2공장에서도 종가 김치 생산라인을 확대했고, 내년에는 폴란드에 김치공장 가동이 예정됐다.
한화그룹 3남인 김동선 한화호텔앤드리조트 미래비전총괄 부사장도 1989년생 뱀띠다. 김 부사장은 최근 국내 단체급식 업계 2위 사업자인 아워홈 인수를 추진할 정도로 광폭 행보를 이어가면서 관련 업계의 '이슈메이커'로 활약하고 있다.
김 부사장은 한화그룹 유통 사업의 수장으로 등판한 뒤, 미국 수제버거 '파이브가이즈'를 국내에 들여오고 '푸드테크'를 신성장동력으로 내세우는 등 유통 사업의 골격을 새롭게 짜고 있다. 기존 백화점과 리조트로 확장성이 부족했던 한화 유통 사업을 외식업과 식품제조업, 단체급식, 로봇으로 빠르게 재편하고 있다. 내년 아워홈 인수가 성사되면 푸드테크와 단체급식의 시너지 창출이 기대되는 등 김 부사장의 경영 능력을 입증하는 원년이 될 전망이다.
◆뱀띠 CEO, 2금융권 대거 포진…비은행 경쟁력 강화 책임
금융권에도 뱀띠 CEO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다만, 은행보다 증권·카드·캐피탈·저축은행 등 비은행 계열사에 대거 포진해 있다.
은행의 경우 최근 세대교체가 이뤄지면서 기존 1965년생인 조병규 우리은행장, 이석용 농협은행장은 자리에서 물러났다. 방성빈 부산은행장은 아직 그룹 계열사 인사 발표가 나오지 않았지만, 연임 가능성은 높은 것으로 전해진다.
증권사 중에선 박종문 삼성증권 대표, 이홍구 KB증권 대표, 한두희 한화투자증권 대표, 이석기 교보증권 대표가 1965년생 뱀띠다.
올해 3월 취임한 박종문 삼성증권 대표는 자산관리 부문에서 괄목할 성장을 이끌며 실적 개선에 견인차 역할을 했다. 이홍구 KB증권 역시 경영 능력을 인정받아 1년 연임이 이미 결정됐다.
성영수 하나은행 부행장은 이번에 하나카드 대표로 영전했다. 성 신임 대표는 1965년생으로 고려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하나은행에서 경기영업본부장, 외환사업단장, CIB그룹장을 거쳐 기업그룹장을 맡았다. 영업 능력 면에서 부족함이 없지만 전임 대표인 이호성 사장이 은행장으로 옮기면서 어깨가 더 무거워졌다. 트래블로그 흥행을 이어가야 하는 책임감과 함께 녹록지 않은 카드 업계 상황을 지혜롭게 헤쳐 나가야 하는 부담감 모두를 짊어졌다.
기동호 우리금융캐피탈 대표 역시 임무가 막중하다. 우리은행에서 여의도기업영업본부장, IB그룹 부행장, 기업투자금융부문장을 역임하며 기업금융 영업 능력은 이미 검증됐다. 다만, 전임 회장의 친인척 부당대출 사고에 따른 기업 신뢰도 제고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다.
신한금융도 1965년생인 전필환 부행장을 신한캐피탈 대표로 발탁했다. 전필환 대표는 일본 법인인 SBJ은행 부사장을 지냈다. 2021년 신한은행으로 돌아와 디지털전략을 책임지며 성과를 보였다.
농협금융도 계열사 세대교체를 실시하면서 1965년, 1966년생이 주류로 등장했다. 이 중 1965년생 대표는 송춘수 농협손보 대표, 김장섭 NH저축은행 대표, 길정섭 NH아문디자산운용 대표 등이다.
송춘수 대표는 경남 합천 출신으로 마산중앙고와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1990년 농협중앙회 입사했다. 김장섭 NH저축은행 대표는 경기 여주 출신으로 청주 신흥고와 서울대 농업교육학과를 졸업, 1991년 농협중앙회에 들어왔다.
길정섭 대표는 연세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외대 대학원에서 국제금융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90년 농협중앙회에 입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