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김여정 맨' 박태성 北총리 등판…장기적 비전 '글쎄'
북한 내각 총리 교체와 2025년 경제정책 전망
북한 정권의 경제총사령관 내각 총리가 교체됐다. '핫바지 총리', '예스맨 총리'로 불리던 김덕훈이 물러나고, '강직맨', '김여정 맨'으로 분류됐던 박태성 전 노동당 과학교육비서가 총리 자리에 올랐다.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은 북한이 지난달 23~27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11차 전원회의를 열고 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과 후보위원을 보선하는 동시에 내각총리와 내각 일부 간부들을 임명했다고 지난달 29일 보도했다. 1955년생인 박태성은 지난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러시아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북러 정상회담을 가질 당시 이 자리에 배석한 김 위원장 최측근 중 한 명이다.
북한에서 내각 총리는 노동당 총비서이며 국무위원장인 김정은 다음으로 호칭되는 행정수반이다. 당, 국가직 다음으로 서열 2위인 셈이다. 일찍이 서부전선 민경부대에서 근무하고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한 박태성은 강성산 이후 최고 실세총리로 주목되고 있다. 반면, 2020년 8월 평양종합병원 건설 미완공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난 김재룡의 뒤를 이어 총리에 임명된 김덕훈은 4년 4개월 만에 물러나게 됐다. 하지만 당 비서와 경제부장으로 자리를 옮기며 정치적 입지는 간신히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김덕훈에 대해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김덕훈 전 내각총리는 2020년 노동당 제7기 제16차 전원회의에서 노동당 부위원장에서 내각 총리로 임명된다. 1961년생인 그는 2003년 최고인민회의 제11기 대의원으로 임명되면서 중앙정치무대에 모습을 드러내는 바, 이후 자강도 인민위원회 위원장, 내각 부총리, 당 중앙위원회 위원, 당 정치국 상무위원 등을 거치고 내각 총리에 임명된다. 총리 시절 그는 한때 장성택이 맡았던 국가체육지도위원회 위원장도 겸직했었다. 그러나 김덕훈은 완전 핫바지 총리로 유명하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앞에서 꼿꼿자세로 일관하면서 아부와 아첨의 롤모델 노릇을 일삼다가 이번에 짤리게 됐다.
북한은 이번에 박태성을 총리로 임명하면서 국방성 부상인 김정관 대장을 내각 부총리에 임명했는 바, 그는 그동안 군대의 건설과 공사를 총지휘해온 베테랑 경제통이란 점에서 박태성이 특채한 것으로 보인다. 또 자원개발상에 권성환, 상업상에 김영식을 각각 임명했다. 아울러 최선희 외무상과 리영길 인민군 총참모장, 노광철 국방상을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으로 새로 승진시켰다. 군부를 등한시 하던 김정은이 러시아에서 외화와 무기기술이 좀 들어오자 군부를 우대하기 시작한 것이다.
박태성은 김정은 체제 들어 '신(新)실세'로 부상한 인물이다. 김정은 체제가 공식 출범한 2012년 8월 김정은 부부를 수행하면서 북한 매체에 처음으로 등장했다. 이후 김정은의 현지 시찰을 자주 수행하는 당 부부장 '5인방'에 속하면서 김정은 체제의 새로운 실세로 주목받았다. 박태성은 2014~2017년 평안남도 당위원회 책임비서(도 지사)를 맡았고, 2019년 4월부터는 최고인민회의 의장으로 활동했다.
이어 2021년 1월 8기 1차 전원회의에서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 당 중앙위 선전선동부장 자리에 올랐다. 이때 박태성의 권력 공식 서열은 김정은을 포함해 6위였다. 승승장구하던 박태성은 당 선전선동부장에 임명된 지 두 달 만에 돌연 공식 석상에서 모습을 감췄다. 2021년 2월 12일 김정일 생일 79주년 사진 전람회 개막식에 참석한 것을 끝으로 북한 매체 보도에서 이름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 이에 일각에서는 박태성이 처형됐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다 2022년 당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보선된 인물 가운데 박태성의 이름이 뒤늦게 확인됐다. 박태성이 1년간의 공백기를 가진 것은 업무상 과오로 인해 좌천됐거나, 혁명화 과정(김일성고급당학교 재교육)을 거쳤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건강 이상설도 나왔다. 그가 당 중앙위 위원으로 선출된 건 이전에 맡았던 정치국 위원이나 당 비서 직책에서 해임됐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박태성은 노동당 과학교육비서 겸 국가우주과학기술위원장 자리를 맡으면서 화려하게 복귀했고, 이번에 경제총사령관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현재 북한 경제정책의 핵심은 '지방발전 20×10정책'으로 북한은 지난해 연초부터 갑자기 '지방발전 20×10정책'을 강조하고 나섰다. 북한에서는 '지방발전 20×10정책'을 '지방발전 20승(乘)10 정책'이라고 말한다. 내용인 즉 10년 동안 매년 20개 군(郡)에 첨단 지방산업기지를 10개씩 건설한다는 내용이다.
표준 모델은 강원도 김화군의 지방공장이다. 이유인 즉 평양과 지방의 경제력 격차가 너무 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이유다. 2021년부터 시작된 '국가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하다 보니 지방경제의 낙후성이 더 심각하게 부각됐을 수 있다. 그런데 평양과 지방간의 격차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며, 김정은 위원장이 모르고 있던 것도 아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제 와서 '지방발전 20×10정책'을 들고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북한 경제에서 지방경제는 1962년부터 핵심을 이루고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이 1964년 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할 때 졸업논문도 '군(郡)의 역할에 대한 연구'였다. 그러나 오늘 자금과 자원이 고갈된 북한의 경제구조에서 박태성이 다시 그 지방경제를 살려낼 비법은 없다. 다만 러시아 전쟁에서 들어오는 외화와 밀가루 등을 자산으로 지방에 몇 십개의 공장을 일으켜 세울 수는 있지만 장기적으로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2025년 북한 경제정책은 혁신적인 성과보다 작은 몸부림으로 그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저돌적인 박태성 총리가 과연 얼마나 리더십을 발휘할지, 또 미련하게 밀어붙이다 수용소 행을 자초하는 건 아닌지 새해 벽두부터 평양 정치판이 불안해 보인다.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