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제철 노조, 정의선 자택 앞 1인 시위…'양재동 가이드라인' 불만

2025-01-17     정현준 기자
17일 현대제철 노조가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위치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자택 앞. (사진=정현준 기자)

[뉴스웍스=정현준 기자] 현대제철 노동조합이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자택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며 성과급 지급을 요구하고 나섰다. 지난해 현대트랜시스 노조가 같은 방식의 시위를 통해 성과급을 확보한 전례가 있어 현대제철 노조의 요구가 관철될지 주목된다.

17일 전국금속노동조합 충남지부 현대제철지회 조합원들은 지난 10일부터 이날까지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위치한 정의선 회장의 자택 앞에서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노조는 '그룹사 갈라치기 현대 자본 규탄'이라는 문구가 적힌 팻말을 든 채 매일 오전 5시 30분부터 8시까지 출근 시간에 맞춰 시위를 진행 중이다. 

시위는 당분간 지속될 예정이다. 포항지부 현대IMC지회와 당진하이스코지회 등 현대제철 5개 지회는 오는 21일 오전 7시부터 24시간 파업에 돌입한다. 22일에는 충남지부 현대제철지회가 파업을 진행한다. 충남지부 지회장은 지난 14일부터 단식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 달 11일에는 현대차그룹 양재동 본사에서 대규모 총파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현대제철 노사는 지난해 9월 상견례 이후 단체교섭을 이어오고 있지만, 성과급 지급을 두고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사측은 기본급 10만원 인상안을 제시하며, 2024년과 2025년 성과급을 올해 단체교섭에서 통합 논의하자는 입장이다. 그러나 노조는 "사실상 올해 성과급을 지급하지 않겠다는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노조 관계자는 "현대차그룹 내 다른 계열사들은 기본급과 성과급을 노사 교섭을 통해 조율하고 대부분 합의했지만, 현대제철만 2024년 성과급 제시안을 내놓지 않고 2025년으로 미루려 한다"며 "이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기 위해 교섭과 투쟁을 병행하고 있다. 쟁의를 통해 조합원들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은 '쇳물부터 완성차까지'라는 슬로건으로 완성차 개발·생산·판매에 필요한 모든 공정을 그룹 내 수직계열화하고 있다. 수직계열화 체계에서 그룹 전체 이익이 현대차와 기아에 몰리고 있다며 형평성 문제가 지속 불거지는 상황이다. 지난해 현대트랜시스와 현대위아 등 그룹 부품 계열사 노조는 이러한 불만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노조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의 성과급 지급 기준인 이른바 ‘양재동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현대차·기아가 1순위, 현대모비스가 2순위, 그리고 현대제철·현대로템이 그 뒤를 따르는 구조"라며 "일부 계열사의 경우 인원 대비 영업이익을 기준으로 삼을 때 현대차나 기아보다 더 많은 성과급을 받을 자격이 있지만, 그룹 가이드라인에 따라 불리한 성과급을 받아왔다"고 지적했다.

노조는 현대차그룹 계열사 간 성과급 차별을 줄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노조 관계자는 "계열사 간 이윤 차이가 있더라도 성과급 격차를 최소화해야 한다"며 "사측이 먼저 지급안을 제시하면, 이를 바탕으로 조합원들과 논의해 적정한 수준을 조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전경. (사진제공=현대제철)

특히 철강 업황 부진을 이유로 사측이 성과급 지급에 난색을 표한 것에 대해 노조는 "회사의 위기를 노동자들에게 전가해서는 안 된다"며 "경영 위기는 임원들이 책임지고 해결해야 할 문제다. 회사는 글로벌 경기 상황을 고려해 사업 방향을 제시하고, 노동자들에게 비전을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현대제철 노조의 시위 방식은 지난해 현대트랜시스 노조가 정의선 회장 자택 앞에서 진행한 시위와 흡사하다. 당시 현대트랜시스 노조는 임금 및 단체협상(임단협) 과정에서 사측과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하자, 2023년 10월부터 11월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정 회장 자택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였다. 양재동 현대차그룹 사옥 앞에서 1000여 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집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트랜시스 노조는 기본급 15만9800원 인상과 전년도 매출액의 2%에 해당하는 성과급 지급을 요구했다. 이는 당시 현대트랜시스의 연간 영업이익(1169억원)의 2배에 달하는 수준이었다. 이에 사측은 9만6000원 인상(정기승급 포함)과 경영성과급 및 격려금 400%+1200만원을 제시했으나, 노조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며 거절했다. 노조가 강경 투쟁을 지속하자 노사는 지난 8일 2023년보다 150만원 많은 성과급 400%+1320만원 지급을 포함한 잠정 합의안을 도출했고 최종 타결에 성공했다.

현대제철의 지난해 연결기준 영업이익은 7983억원으로, 영업이익률은 3.1%다. 같은 기간 현대트랜시스의 영업이익은 1170억원, 영업이익률은 1.0%다. 즉, 현대제철이 현대트랜시스보다 실적이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성과급 지급에서 상대적으로 불리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현대차(영업이익률 9.3%)와 기아(11.6%)가 그룹 내에서 가장 높은 영업이익률을 기록한 가운데, 현대제철의 영업이익률은 현대모비스(3.9%), 현대로템(5.9%)보다 낮지만, 현대위아(2.7%), 현대케피코(2.7%)보다는 높은 수준이다. 업계 일각에서는 현대제철 노조가 지난해 현대트랜시스 사례를 참고해 같은 방식의 투쟁 전략을 택한 만큼, 이번 시위를 통해 사측이 성과급 지급안을 재검토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시각이다.

한편, 현재 현대차그룹 계열사 중 2024년 임단협이 마무리되지 않은 곳은 현대제철과 현대위아 두 곳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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