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목, '국가범죄 시효폐지·AI교과서·방송법' 재의 요구
"거부권 행사 송구하나 국회가 위헌성 요소 보완해달라는 취지" "국회·정부 국정협의회 조속 가동되면 추가 재정투입 함께 논의"
[뉴스웍스=허운연 기자]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작년 말 국회를 통과한 '반인권적 국가범죄의 시효 등에 관한 특례법' 제정안과 '초·중등교육법' 개정안, '방송법' 개정안에 대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최 권한대행은 21일 국무회의를 주재해 "3개 법률안에 대해 불가피하게 재의요구권을 행사하기로 했지만, 이는 국회에서 통과된 법률안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반인권적 국가범죄의 시효 등에 관한 특례법 제정안은 위헌성이 있는 요소를 국회에서 보완해 달라는 요청이고, 초·중등교육법과 방송법 개정안은 국회가 정부와 함께 보다 더 바람직한 대안과 해결책을 다시 한번 논의해보자는 취지"라고 밝혔다.
이어 "지난주에 이어 오늘 국무회의에서도 재의요구권을 행사하게 돼 국회와 국민에게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오직 국가와 국민을 위한 정부의 충정을 이해해 주고, 국회의 대승적 협조를 다시 한번 요청한다"고 당부했다.
이날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 중 '반인권적 국가범죄의 시효 등에 관한 특례법' 제정안에 대해 최 권한대행은 "국가폭력, 사법방해 등 반인권적 국가범죄에 대해 민사상 소멸시효와 형사상 공소시효를 전면 배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며 "기본 취지에는 깊이 공감하나 법이 그대로 시행되면 헌법상 기본원칙인 '과잉금지 원칙'에 반하고, 민생범죄 대응에 공백이 생길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특히 "살인·고문·강간 등 강력범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 배제 등 특별한 취급을 해야 마땅하나 공무원의 직권남용 등에 대해 동일한 취급을 하는 것은 적법하게 직무를 수행한 공무원, 나아가 공무원 유족까지 무기한으로 민사소송과 형사고소 및 고발에 노출될 우려가 있다"며 "민생수사 현장에서 적법하게 업무를 수행한 공무원이 평생 억울한 소송과 고소, 고발에 노출된다면 수사부서 기피 현상이 더욱 심화되고, 국가의 범죄 대응 역량이 약해지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선량한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법원과 수사기관은 물론 관련 단체와 학계에서도 제정안이 포함하고 있는 위헌적 요소와 수사 활동 위축 등을 우려하고 있는 만큼 법안의 취지를 달성하면서도 적법하게 직무를 수행한 공무원의 기본권 침해를 방지할 수 있는 방향으로 국회에서 다시 한번 논의해 달라"고 요청했다.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에 대해서는 "교과용 도서의 정의와 범위를 법률로 규정하면서 '지능정보화 기본법' 제2조 제4호의 지능정보기술 즉,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클라우드, 초연결지능정보통신기반 기술 등과 그 결합 및 활용 기술을 활용한 전자책을 교과서로 채택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배제하는 단서조항을 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당초 국회에서 이 법을 개정한 취지는 AI 디지털교과서를 도입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나, 개정안이 이대로 시행되면 AI 디지털교과서 사용 문제를 넘어 학생의 교육과 미래에 매우 심각한 문제가 우려된다"며 "무엇보다 인공지능기술은 물론 앞으로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클라우드, 유비쿼터스 등 디지털 기술에 기반한 맞춤형 학습을 할 수 있는 교과서 사용 기회 자체를 박탈당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또 "심화되는 '디지털 시대'를 맞아 학생의 디지털 역량 강화와 미래 준비, 나아가 국가 경쟁력에 치명적인 타격을 초래할 수 있고, 디지털 기반 교육혁신이라는 세계적 추세에도 역행하게 된다"며 "시도 교육청과 학교의 재정 여건에 따라 일부 학생만 다양한 디지털 교육자료를 활용할 수 있게 돼 '균등한 교육 기회 제공'이라는 헌법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최 권한대행은 "교육 현장의 우려를 고려해 불가피하게 재의를 요구하는 것으로, 국회 등의 문제 제기에도 불구하고 AI 디지털교과서를 강행 추진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라며 "정부는 국회와 교육 현장의 우려에 귀 기울여 디지털 과몰입 방지를 위한 대응책을 차질 없이 추진하고, AI 디지털교과서가 현장에 제대로 안착될 수 있도록 도입 과목과 그 시기도 조정하며, 보완책을 지속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방송법' 개정안에 대해서는 "한국전력이 TV 수신료와 전기요금을 결합해 징수하도록 강제하는 내용"이라며 "수신료를 효과적으로 징수하고 안정적인 재원을 마련해 공영방송의 공적 책무를 실현하고자 하는 입법 취지는 정부도 이해하지만, 재의를 요구하는 것은 공영방송의 재원 마련을 저해하고자 하는 의도가 아니다"라고 언급했다.
특히 "수신료 분리 징수 제도는 작년 7월부터 시행돼 이미 1500만 가구에서 분리 납부를 하고 있고, 국민의 수신료 과오납이 점차 줄어들고 있는데 다시 수신료 결합징수를 강제하면 국민의 선택권을 저해하고 소중한 재산권을 침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공영방송의 안정적인 재원 확보 문제는 수신료 징수방식을 통해서가 아니라 다른 방법을 통해 풀어나갈 수 있다"며 "정부는 공영방송이 그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재정 지원 방안을 적극 검토하겠다. 방송법 시행령을 개정해 국민이 분리 징수와 통합 징수 중 선택할 수 있는 방안도 강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새벽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한 가운데 미국 신정부의 통상정책 등의 전환이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와 산업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이에 최 권한대행은 '국회·정부 국정협의회'의 조속한 가동을 요청하며 "소상공인 부담 완화와 중소기업 투자 부담 경감을 위한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 등 산적한 민생 법안의 처리가 시급하다. 통상환경 변화에 대응하고 우리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지원하기 위해 근로시간 특례 등을 인정한 '반도체특별법' 제정안과 '전력망특별법', '해상풍력특별법' 제정안 등의 입법은 우리 기업이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어려운 민생 지원과 산업경쟁력 강화를 위해 추가적인 재정투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정치권뿐만 아니라 지자체, 경제계 등 일선 현장에서 제기된다"며 "국회·정부 국정협의회가 조속히 가동되면 '국민의 소중한 세금을 가장 효과적으로 써야 한다'는 재정의 기본원칙 아래 국회와 정부가 함께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