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가장 '로컬' 한 것이 가장 '글로벌'하다

2025-02-03     차해미 기자
신은혜 500글로벌 수석심사역.

최근 한국무역협회의 초청으로 호남 지역 기업들과 교류할 기회가 있었다.

실리콘밸리에 본사를 둔 글로벌 벤처캐피털에서 투자하는 나로서는, 평소 많이 접하는 첨단 기술기업들과는 사뭇 다른 분야에 속한 기업들이었다. 하지만 이 경험을 통해 우리나라가 고민하는 지역 기업들의 지역적 강점과 이를 글로벌 무대에서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가능성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호남 지역은 모빌리티 산업단지, 농수산업, 석유화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독자적인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다. 이 지역 기업들은 오랜 시간 동안 축적된 노하우와 지역적 특색을 바탕으로 성장해 왔으며, 이는 글로벌 시장에서도 충분히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강점으로 보였다.

인공지능(AI)이나 첨단기술 기반의 기업 육성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인프라가 없는 상태에서 새로이 첨단기업을 육성하려는 시도보다는, 이미 구축된 인프라와 노하우, 이미 형성된 가치사슬을 활용하면서 새로운 관점과 기술을 더하는 방식이 더 현실적이고, 효과적이라고 본다.

이미 쌓아둔 기반을 활용하는 것은 경제적으로도 효율적이며, 글로벌 무대에서 우리의 강점을 더욱 빛나게 하는 전략이다.

먼저, 광주광역시는 현대자동차 공장과 산업단지를 중심으로 국내 자동차 산업의 허브로 자리 잡고 있다. 여기에 글로벌 수준의 프로토콜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지역 정부의 체계적 기술개발 지원이 더해진다면, 글로벌 자동차 산업 내에서 입지가 강화될 것이다.

새만금과 신안 앞바다를 중심으로 진행 중인 해상풍력과 태양광 신재생에너지 산업 역시 호남 지역이 가진 중요한 자산이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기후 기술 분야에서 이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다면, 글로벌 진출의 마중물이 될 것이다. 특히 글로벌 앵글을 가진 스타트업이나 연구실들과의 협업을 통해 실증사업을 추진한다면 더욱 큰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다.

농수산업도 호남 지역의 중요한 강점이다. 예를 들어, 나주시의 김 제조 기업인 해농은 K-푸드 열풍 속에서 이미 해외 시장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이 기회를 포착한 사모펀드들도 관련 기업들에 관심을 두고 있다. 김 가공업이나 양식업 역시 벤처 마인드 셋을 적용해 기술 혁신과 원가 절감 등의 전략을 도입한다면 글로벌 시장에서 더 큰 성장을 이룰 가능성이 높다.

고흥 유자와 같은 식품도 일본과 유럽 시장에서 이미 많은 관심을 받고 있고, 미국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고흥 유자의 품질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글로벌 인지도 확보 전략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더 강렬한 이미지를 심어준다면 시장 확대는 더욱 탄력을 받을 것이다.

이 외에도 다도해의 자연환경을 활용한 관광산업, 친환경 제초제 제조업, 해상풍력 클러스터 기반의 기업들처럼 호남의 지역적 특색을 활용한 기업들도 높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 기업이 공통으로 직면한 과제는 명확했다. 어디를, 어떻게 새롭게 포장하고 어떤 점을 보완해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로드맵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미 훌륭한 재료를 갖추고 있지만, 이를 어떻게 조합해 글로벌 시장에서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할지에 대한 고민이 부족한 사례를 많이 접했다.

향토기업으로서 지역 내에서 탄탄한 입지를 다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글로벌 시장에서의 기회가 확대되고 있는 지금, 지역 기업들도 지역 내 인프라와 클러스터를 적극 활용해 글로벌 무대로 도약할 준비를 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지역적 강점에 글로벌한 ‘트위스트’를 더하는 것이다. 지역적으로 잘하는 것을 더욱 잘하고, 남들이 가지지 못한 특성을 살려 글로벌 시장에서 차별화된 이미지를 구축하는 것이 핵심이다.

미국에서 '없어서 못 판다'고 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는 '오이시(Oishii)'라는 스마트팜 스타트업이 있다.

일본에서 태어난 오이시의 창업자 히로키 코가는 루비 토마토와 오마카세 베리 같은 일본 품종에 선진 스마트팜 기술을 가미해 미국 현지에서 주목받은 상품으로 브랜딩하고 이를 위한 혁신적 생산 시스템을 만들었다. 작년에는 시리즈B 펀딩에서 약 2000억원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이는 일본 특유의 품종과 지역적 강점을 글로벌 관점에서 어떻게 포지셔닝할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우리에게도 이런 저력이 충분히 있다. 다만, 글로벌 수준의 창업가 정신과 방법론에 대한 인식이나 접근 기회가 부족한 것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한국무역협회와 같은 플랫폼이 이런 과정에서 지역 기업에 마중물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한다. 호남 기업들이 가진 강점과 잠재력이 세계 무대에서 더욱 빛날 수 있도록, 이제는 지역 자산을 글로컬리제이션 전략으로 연결할 때다.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이 말이 호남 기업에 현실로 다가오기를 바란다.

[신은혜 500글로벌 수석심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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