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보니] "고립·은둔 청년 위한 따뜻한 한 끼"…씨즈, 설 맞이 '두-더잡' 행사
이은애 대표 "은톨이 자립 지원…느린 속도·예민함 강점 될 수 있어"
[뉴스웍스=진은영 기자] 아직은 사람이 어려운 '은톨이(은둔형 외톨이)'들을 위한 따뜻한 식사 자리가 마련됐다.
사단법인 씨즈는 23일 씨즈 두더집에서 설 명절을 맞아 고립·은둔 청년들과 함께 '2025년 두-더잡(Do the Job) 설날맞이 떡국·전' 행사를 진행했다.
이날 기자가 직접 찾은 두더집은 고립·은둔 청년들을 위한 쉼터로 서울 은평구에 위치한 2층 주택이었다. 일반 가정집과 다를 바 없는 분위기였지만, 문을 열자마자 기름에 구워지고 있는 맛있는 전 냄새가 코를 찔렀다.
씨즈는 고립은둔청년을 위한 온라인 플랫폼 '두더지 땅굴'과 오프라인 공간 '두더집'을 운영한다. 지난 2022년부터 명절에 혼자 시간을 보내는 청년들을 위해 한 끼 식사를 제공하고 있다.
청년들에게 '외할머니'로 불린다는 이은애 사단법인 씨즈 대표는 "명절에 갈 곳 없는 고립·은둔 청년들을 위해 자리를 마련했다"며 "평소에도 주 2회씩 식사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사람에게 경계심을 갖고 있는 고립·은둔 청년들에게 두더집은 '안전한 장소'로 여겨진다"며 "이들은 이곳에서 자신들의 아픈 이야기를 꺼냄과 동시에 일상 회복으로의 첫걸음을 뗀다"고 두더집을 소개했다.
이날 행사에 참여한 청년들은 떡국·갈비찜·잡채·각종 전·나물 등 다양한 설 음식을 만들었다.
지난해 3월부터 두더집을 방문해 왔다는 조강언 씨는 "이번 행사로 설 명절을 두더집 식구들과 함께 할 수 있어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조 씨는 본인을 활동형 외톨이라고 소개했다. 활동형 외톨이는 은둔형 외톨이보다 바깥 활동에 부담은 없지만, 사람들과 어울리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태어날 때부터 자폐 성향이 강해 학창 시절 따돌림을 당했다는 조 씨는 대학에서도 사람들과 어울리기가 쉽지 않아 자퇴를 결정했다.
그는 "씨즈 두더집에서 사람들을 만나 처음으로 집에 사람을 초대했다"며 "이곳을 더 일찍 접했다면 좋았겠다"고 전했다. 이어 "두더집 프로그램 중 하나인 '제주 리트윗'을 통해 참가자들과 청귤 따기 아르바이트를 했다"며 "첫 아르바이트에서 받은 급여를 부모님께 전달할 수 있어 기뻤다"고 소감을 전했다.
참가자들은 거실에 모여 앉아 식사를 한 뒤 준비한 다과와 함께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참가자 박 씨는 "어머니가 씨즈를 처음 소개해 주셨다"며 "집밥 모임·텃밭 모임·동아리·대화모임 등 여러 활동을 통해 집에서만 시간을 보냈던 이전과 달리 삶이 다채로워졌다"고 말했다.
2023년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고립·은둔 청년(54만명) 중 82.2%가 성인으로서 자립 이행을 위한 일 경험을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2022년 서울시가 조사한 '고립·은둔 청년 실태조사'에서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고립·은둔 청년 중 90%는 일이 주어져도 할 수 없거나 일을 구해보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구직을 하지 않는 이유로는 '일할 욕구를 느끼지 못해서', '인간관계에 대한 부담감' 등의 답변이 주를 이뤘다.
씨즈는 4년간 400명 이상의 고립·은둔 청년과 가족을 지원 중인 단체로 '두-더잡 일경험 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사업은 고립·은둔 청년들(19~39세)에게 4개월가량 일하는 경험을 지원함으로써 은둔 청년이 자립생활에 대한 의지를 다지도록 돕는다.
이 대표는 "사람을 두려워하지만 사람이 그리운 친구들"이라며 "3년 만에 밖에 나온 친구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전에 두더집을 방문하던 청년이 취업해 공기청정기를 선물하기도 했다"며 "두더집을 통해 사회로 한 발짝 나가는 친구들을 보며 뿌듯함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그는 "고립·은둔 청년들의 느린 속도와 예민함이 강점이 될 일자리 수요가 분명 존재한다"며 "청년들의 자립적 삶의 이행에 많은 사회적 관심과 응원을 부탁한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