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조 규모 차기 구축함 사업…한화-HD현대 갈등에 더 미궁 속으로
또 미뤄진 KDDX 사업자 선정…절차 이면은
[뉴스웍스=안광석 기자] 1년 반 넘게 표류 중인 8조원 규모 대형 국책사업인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자 선정이 더욱 깊은 미궁 속에 빠졌다.
국내 방산 쌍두마차인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은 주요 사업자로만 선정되면 한참 떠오르는 글로벌 군함 시장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는 만큼, 서로 양보의 기색이 없다.
가장 곤란한 것은 발주처인 방위사업청이다. 3자 간 ‘원팀’까지 선언했는데 어떤 결정을 내려도 반발을 피할 수 없다. 사업자 선정 시기도 혼란스러운 정치권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국가 안보 시급한데…방사청 속앓이
방사청은 KDDX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 사업 방식을 오는 27일 사업분과위원회를 통해 윤곽을 잡고, 4월 2일 방위사업추진위원회에서 최종 확정키로 했다. 지난 17일 사업분과위원회에서 결론을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해당 사업의 경우 '개념설계→기본설계→상세설계 및 초도함 건조→후속함 건조'의 과정을 거친다. 정부가 KDDX 사업을 시작한 때가 지난 2011년이다. 기본설계 단계 수주를 끝내는 것만 해도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 간 소송전으로 8년이라는 시간을 낭비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양사 간 대형 사업 수주를 위한 신경전은 지속됐고, 정부의 중재 끝에 겨우 상세설계 단계를 확정할 순간 또다시 미뤄진 것이다.
KDDX는 좀 더 먼 거리를 항해할 수 있는 데다, 북한 등의 탄도탄 감지 능력과 스텔스 기능이 강화된다. 무엇보다 100% 국내 기술이 적용되기 때문에 다 건조되면 미국과 일본 같은 해군 강국 반열로 들어설 수 있다는 점에서 과거 이지스급 구축함 사업과 차별성을 지닌다.
즉, 사업적 측면을 제외하더라도 날로 고조되는 글로벌 지정학적 위기에 대응키 위해 조금이라도 늦춰서는 안 될 사업이다. 정부나 방사청이 수년간 “국내 방산업체들이 하나가 되도 모자랄 판”이라며 거듭 중재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방산업계 한 관계자는 “다음 달 초 방추위에서 상세설계 사업자가 최종 확정될지도 현재로서는 불투명하다”며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 간 입장차도 그렇지만, 신정부가 들어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국방정책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황에서 방사청도 부담이 있지 않겠느냐”고 분위기를 전했다.
◆HD현대와 한화…40여 년 쌓인 이유 있는 갈등
방산업계에서는 유력한 사업 후보인 HD현대중공업이나 한화오션의 오랜 신경전을 두고 '그럴 만하다'라는 반응이 나온다.
KDDX가 사상 최초로 국내 기술로 건조된다는 점에서 중장기적으로 사업 규모인 8조원을 거뜬히 뛰어넘는 가치를 지닌다. 결과적으로 양사가 이번 KDDX 프로젝트 총 6척을 사이좋게 나눠 건조한다 해도 선도함을 어느 쪽이 건조하느냐에 따라 시장 지위는 크게 달라진다.
어느 국가를 막론하고 방산 사업은 보수적인 수주 업종에서도 선두 주자다. 즉, 최초로 KDDX 메인 사업자가 된다는 것은 적어도 국내에서 군함에 관련에서는 기술력 보증수표로 받아들여 진다. 국가로부터 지속적인 후속 수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의미다.
더욱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조선·방산업의 한국 역할론을 강조하는 상황에서 이런 지위는 글로벌 수주 확대로 직결될 가능성이 크다.
다른 의미로 한화그룹의 경우 방산업을 주력으로 삼고 있고 관련 계열사도 많다. 국내 기술이 동원되는 KDDX 주요 사업자가 되면 기존에 구축함을 건조할 때처럼 기술과 부품을 제공받아 온 해외 기업에 로열티를 지불할 일이 없어진다. 그룹 10년 먹거리가 확보된다는 뜻이다.
뿐만 아니라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이 방산업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펼친 것은 1980년대부터이니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그동안 수주실적으로 따지면 HD현대중공업은 구축함과 호위함이 포함된 수상함에서, 한화오션은 전신인 대우조선해양 시절부터 잠수함 등 수중함 부문에서 강점을 보여왔다. 기술력과 노하우는 양사가 모두 세계 정상급이다.
때문에 양사는 지난 40여 년간 방산 수주 과정에서 무수한 소송전을 치르는 등 앙금이 쌓인 상태다.
또 다른 조선업계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발주처 그림대로 양사가 원팀으로서의 역할 분담은 쉽지 않다”며 “일부서 주장하는 공동설계의 경우 부품과 시스템별 기술적 호환도가 중요한 군함 특성상 맞지 않기에 메인과 서브를 확실히 구분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