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제철 철근공장 '셧다운'… 철강업계 '3중고' 직면
관세 대응도 힘든데 저가 철강재 유입 및 수요산업 위축까지 절대적인 외부 변수, 자체 대응으로는 한계
[뉴스웍스=안광석 기자] 국내 주요 철강사들이 글로벌 철강 관세 위협 및 철강재 수요 둔화, 중국산 저가 철강재 유입 등 ‘3중고’에 신음하고 있다.
철강사들은 외부 변수에 수익성이 크게 좌지우지되는 산업 구조상 뚜렷한 대응책이 없는 만큼 피해 최소화에 사활을 걸고 있다.
27일 철강업계에 따르면 현대제철은 창사 이래 최초로 인천공장 내 철근 생산라인을 한 달간 가동 중지키로 했다. 현대제철 측은 "단순한 정기 보수가 아닌 시황 악화로 인한 감산 조치"라며 "당장의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시장 정상화를 위한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이번 현대제철의 조치는 철강사들이 직면한 복합 위기 대응 차원으로 여겨진다.
우선 자동차 및 건설업계 등 수요산업군의 분위기가 좋지 않다. 전기자동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으로 고부가가치 자동차 강판 수요가 줄었고, 후판·철근·형강 등도 건설 불황에 수익성 악화를 겪고 있다.
국내 유통 철근 가격은 이달 기준으로 톤당 67만6000원(SD400·10㎜ 기준)이다. 지난해보다 10만원가량 낮아진 수치다. 이에 동국제강 등 타 제강사들도 일시적으로 철근 출하를 중지하는 초강수까지 두는 상황이다.
국내 수요가 낮아지는 상황에서 값싼 해외 저가 철강재들까지 유입되고 있다.
철강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기준 열연강판 수입량은 343만톤이다. 이 가운데 중국산과 일본산이 각각 153만톤, 177만톤으로 전체 수입량의 96.2%를 차지한다. 통상 중국산·일본산 열연강판은 국산 제품보다 10∼20% 낮은 가격으로 국내에 유통된다.
철강업계 한 관계자는 “미국 수출길이 막혔기 때문에 중국은 앞으로 넘쳐나는 자국 생산물량을 소진하기 위한 해외 시장에 ‘밀어내기’ 물량을 늘릴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부터 시작된 관세도 철강 업계에 큰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현대제철은 미국 철강 관세 대응 차원에서 현지 제철소 건립을 위해 총 8조5000억원의 비용을 책정해야 했다.
이런 상황에 유럽연합(EU)까지 오는 4월 1일부터 철강산업 보호를 위한 ‘세이프가드’(수입제한조치)를 발동한다. 세이프가드는 국가별로 지정된 쿼터(할당량)는 무관세로 수입하되, 초과 물량에 대해서는 25% 관세를 부과하는 제도다.
이에 따라 한국 철강사들은 EU에 무관세로 수출할 수 있는 물량이 최대 14% 줄어들게 된다. 기존처럼 특정 분기 내 할당된 쿼터를 수출하지 못하면 그 다음 분기에 미소진 물량만큼 무관세로 추가 수출할 수 있는 우회 시스템도 오는 7월부터 폐지된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지난 2024년 EU(영국 포함)에 수출된 철강은 422만2994톤으로 전체 철강 수출량 2835만411톤의 14.89% 비중을 차지한다. 이는 미국(280만톤)보다도 큰 비중이다.
이처럼 잇따르는 악재 속에서 국내 철강사들이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은 제한적이다.
철강사들이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관세 문제의 경우 고부가가치 제품군을 강화하고, 원가 혁신과 판로 다변화를 꾀하는 등 원론적인 방법으로 피해를 최소화할 수밖에 없다. 저가 철강재 위협도 덤핑 방지나 원산지 증명 의무화 등 정부 차원의 강력한 국산 철강재 보호 정책이 필요하다.
남은 것은 극한의 구조조정 등 허리띠를 졸라매는 방법 뿐이다. 현대제철은 최근 비상경영 체제를 선언하고, 임원 급여 20% 삭감 및 전 직원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까지 받고 있다.
복수의 철강업계 관계자는 “중국산 저가 철강재는 정부 차원에서 막는다 해도 제3국 경유 등 꼼수로 들어오는 경우가 많고, 품목에 따라서는 과거와 달리 국산 철강재 품질과 별로 차이가 없어 자금 사정이 어려운 중소 수요업체들에는 인기가 높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관세 문제에 전기차 캐즘 및 건설 불황으로 수요사들과 철강재 가격 협상도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