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보니] 찬바람 가득한 '홈플런'…김수현 '손가락'만 남았다
[뉴스웍스=강석호 기자] 26일 오후 서울 잠실에 소재한 홈플러스 매장을 찾으니 한산함을 넘어 적막감까지 감돌고 있었다. 예년같으면 할인행사로 인해 적지 않은 고객들이 몰렸겠지만, 매대는 팔리지 않은 상품으로 빼곡했다.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밟고 있는 홈플러스는 이달 내내 대규모 할인행사인 '홈플런'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기업 파산 가능성까지 언급되는 상황에서 고객들의 신뢰는 이미 바닥에 떨어진 상황이다. 할인상품들은 마치 재고떨이용이라는 의심까지 받는 처지다.
잠실점에 근무 중인 홈플러스 직원 A씨는 착잡한 심정을 토로했다. 그는 "보통 홈플런 행사가 진행될 때는 밤낮없이 많은 고객이 찾았다"며 "상품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닌데도 언론에서 기업회생과 관련한 부정적 보도를 쏟아낸 뒤로 손님이 뚝 끊긴 상황"이라고 고개를 저었다.
이날 행사는 '앵콜! 홈플런 이즈 백'이란 명칭으로 지난 13일부터 26일까지 2주간 진행된 홈플런의 마지막 날 할인행사였다. 홈플러스는 지난 4일 회생법원으로부터 기업회생절차 승인을 받은 이후부터 상거래채권 등 납품대금 지급을 위해 현금 확보에 총력전을 펴고 있다.
홈플러스의 판매 어려움은 데이터로도 확인할 수 있다. 대체 데이터 플랫폼 한경에이셀에 따르면, 홈플러스의 이달 셋째 주(16~22일) 카드 결제 추정액은 전년 동기보다 13.8% 줄어든 약 152억원으로 집계된다. 앞서 3월 첫째 주 카드 결제액이 약 354억원, 둘째 주는 167억원을 기록하는 등 매출 하락이 두드러진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매장에서 장사를 하는 테넌트(소상공인)들이다. 기업 회생 신청 이후 테넌트의 손실이 계속되고 있지만, 여전히 본사의 구체적 해결 방안은 나오지 않고 있다.
지하 2층에서 핫바를 판매하던 B씨는 "홈플러스 각 지점을 돌아다니며 핫바를 팔고 있지만, 손님이 이렇게 없었던 적은 처음인 것 같다"고 착잡한 심정을 전했다. 그는 "최소 계약기간이 이틀이지만, 2주 계약을 맺는 바람에 바람에 손실이 커질 것 같다"고 자신의 선택을 크게 후회하는 눈치였다.
당일 소진돼야 하는 신선식품 코너에도 휑한 분위기였다. 해산물 냉장고에 크게 적힌 10~40% 할인 팻말과 가득 쌓인 생선들이 차가운 냉기를 뿜고 있었다.
해당 코너를 지나니 냉장·냉동 식품이 진열된 곳에는 직원들만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상품 수량을 확인하고 있던 한 직원은 "특가 행사 기간에는 평일 낮 시간대라도 1+1 상품을 중심으로 소진 속도가 빠르지만, 기업회생 이후 물량이 안 빠지고 있어 (물건을) 채워 넣는 횟수가 크게 줄었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계산대에서 근무하는 계산원은 단 두 명뿐이었다. 한 계산원은 홈플러스 상품권으로 결제하려는 고객에게 상품권 후면에 기재된 제휴사는 이용할 수 없다고 설명해주는 모습이었다.
각종 생활용품과 완구를 판매하는 지하 1층도 차분했다. 반려동물용품이 진열된 공간에는 정리되지 않은 세탁 세제와 섬유유연제 상자들이 어수선한 분위기를 대변했다. 매장 1층에 마련된 푸드코트도 상황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푸드코트에는 단 한 명의 손님도 없었고, 의류 판매 업장도 활기를 잃었다.
특히 스포츠웨어를 판매하는 한 업장의 점주는 '마지막 총정리 80~50% 세일'이라는 현수막을 내걸고 체념에 빠진 표정이었다. 이 점주는 최근 손님이 줄었냐는 질문에 "손님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라며 답변을 애써 피하는 모습이었다.
홈플러스 모델이었던 배우 김수현은 한 달 만에 완전히 사라졌다. 홈플러스는 지난달 28일부터 김수현을 광고 모델로 발탁하고 할인행사를 홍보하고 있었다. 이후 김수현은 사생활 논란이 불거지면서 홈플러스를 비롯한 모든 광고모델에서 하차한 상태다. 할인행사를 김수현 전신 스티커가 자취를 감추고, 그의 손가락 부분만 남아있는 웃지 못할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홈플러스는 4월에도 할인행사를 이어갈 계획이다. 현금 확보와 함께 협력사 이탈과 판매 물품 부족까지 악순환을 방지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분명한 건 단순 할인행사만으로는 이 난관을 뚫기가 쉽지 않아졌다. 홈플러스의 대주주 MBK파트너스가 실질적인 해법을 제시하지 않는다면, 결국 연명을 거듭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김병주 MBK 회장의 사재출연은 과연 언제 어떤 방식으로 이뤄질 것인지 궁금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