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원 빵, 300cc 맥주…위기의 자영업자들 "싸게라도 팔아야 살죠"
[뉴스웍스=강석호 기자] "물가가 너무 올라서 아예 외식 자체를 안 하는 사람이 많아요. 그럼 어떻게 하겠어요. 우리는 생존이 걸렸으니 뭐라도 해봐야죠."
9일 기자가 찾은 경기도 화성시의 한 삼겹살집에서는 소주를 5000원에 무제한 제공하고 있었다. 이곳 주인은 가게를 찾는 손님들이 갈수록 줄다 보니 술값을 덜어주면서 고기라도 더 팔아야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고 했다.
인근의 1900원짜리 300cc 생맥주를 파는 모 선술집.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 가게 주인은 "처음 가게를 차렸을 때는 손님들이 북적였는데, 요즘엔 사람들이 술도 잘 안 먹고 비슷한 술집이 근처에 계속 생겨나 어렵다"며 "얼마 전부터 500cc 생맥주 가격을 내려 손님을 끌어모으는 중"이라고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통계자료에서도 이러한 상황을 대변하는 수치가 나온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2025년 3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외식용 소주 가격은 전년 동월 대비 1.3% 하락했다. 2024년 9월(-0.6%) 이후 7개월 연속 하락세다.
외식 물가가 전반적으로 상승하는 중에 이례적인 흐름이다. 주류 제품이 고객 모객용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외식용 맥주 가격도 전년 동월 대비 0.7% 하락하며 지난해 12월부터 4개월 연속 마이너스 추세다. 일반 음식점에서 판매되는 주류 가격이 이처럼 장기간 하락세를 보인 것은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같은 시기 외식용 기타 음료와 막걸리 가격은 각각 1.3%, 2.5% 상승해 대조를 이뤘다.
'가격 역주행' 전략은 비단 주류 제품에만 적용되지 않고 있다.
서울 동대문구의 한 동네 빵집은 최근 '1000원 빵'을 앞세워 박리다매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다. 매일 일정 수량 한정으로 단팥빵, 야채빵 등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제품을 1000원에 판매하고 있다. 제과점 빵 하나가 평균 2000원 이상이기에 출근 시간대와 점심 시간대면 줄 서는 손님들도 북적북적하다.
서울 지하철 역사의 한 빵집도 1000원 빵을 판매하고 있었다. 점주는 "쌀가루와 밀가루를 적절히 섞어 마진을 최대한 적게 보는 방식의 박리다매"라며 "우선 싸게라도 판매해야 손님이 오지 않겠냐"라고 말했다.
일부 전문가는 이런 역주행 마케팅이 분위기 전환용으로 효과를 볼 수 있지만,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진단이다. 한때 외식 프랜차이즈 시장을 휩쓸었던 저가 맥주 프랜차이즈는 지금은 몇몇 브랜드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단순히 싸다는 특징 외에 차별점을 찾지 못해 반짝 인기로 끝이 났다.
정세은 충남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외식자영업자들의 가성비 마케팅은 생존을 위한 고육지책이지만, 소비자에게는 새로운 선택지를 제공하면서 시장 분위기를 일부 환기시키는 역할도 한다"며 "전체적으로 보면 경기 불황과 함께 인구 감소와 1인 가구의 증가 등 구조적 변화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싸게 판다고 해서 현재의 어려움을 근본적으로 해소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최근 한국은행이 발행한 '금융 안정 상황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취약 자영업자 차주(다중채무자 중 저소득 혹은 저신용인 차주)는 42만7000명으로, 전체 자영업 차주(311만5000명) 중 13.7%를 차지했다. 취약 자영업자 대출은 125조4000억원으로 1년 만에 9조6000억원 증가했다. 연체율은 11.16%로 두 자릿수를 이어갔다.
자영업자 평균 소득은 지난해 말 4157만원으로 코로나 사태 이전 수준(2019년말 4242만원)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연체 자영업자의 평균 소득은 2020년말 3983만원에서 지난해 말 3736만원으로 감소했고, 같은 기간 평균 대출은 2억500만원에서 2억2900만원으로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