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부터 부실 한국지엠…'철수설' 자체보다 그 이유 주목해야
중장기 내수 강화 전략 부재 및 불투명한 본사 방침 철수설만 부인했을 뿐 근본적 우려 해소되지 못해
[뉴스웍스=안광석 기자] 한국지엠이 수십년간 따라다니던 '한국 철수설'을 어느 정도 불식했으나, 취약한 내수 기반 및 불투명한 제네럴모터스(GM) 본사 방침 등 기본 불안 요소를 여전히 안고 있어 주목된다. 특히 미국 수출 의존도가 80%가 넘는 사업 구조 역시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자동차 25% 관세 영향이 두드러질 오는 5월 이후부터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한국지엠 측은 철수설은 강력히 부인했으나, 이같은 불안 요소들에 대한 자세한 대답을 피하고 있어 추후 논란 재발생 여지가 있다.
21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헥터 비자레알 한국지엠 사장은 최근 더 뉴 에스컬레이드 출시 행사장에서 "한국은 제너럴모터스(GM)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핵심 시장"이라고 강조했다.
구스타보 콜로시 한국지엠 영업·서비스·마케팅 부문 부사장도 "앞으로 계속 새로운 제품을 출시하게 될 것이고, 이미 수립한 한국에서의 전략을 지속적으로 실행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경영진은 "추측성 소문에 대응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며 수십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나온 한국 철수설도 부인했다. 현 한국지엠 경영진이 철수설에 대해 공식석상에서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여기에 한국지엠은 최근 트레일블레이저 및 뷰익 앙코르 GX 등 신차 2만1000대 생산물량을 부평공장에 추가로 배정한다고 노동조합에 통보했다. 미국 수출 의존도가 절대적인 한국지엠인 만큼, 미국발 자동차 25% 관세 위협으로 철수설이 짙어지는 상황에서 노조의 불안감을 불식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다만 ▲한국 시장이 GM 본사에 어떤 의미로 중요한지 ▲앞으로 출시한다는 새로운 제품이 무엇인지 ▲이미 수립했다는 한국에서의 전략이 무엇인지 등은 여전히 수수께끼다.
현재 한국지엠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국내 전략차종이 적은 상황에서 신차 계획까지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한국지엠의 가장 대중적 브랜드인 쉐보레의 국내 판매 모델은 단 3종(트레일 블레이저·트랙스 크로스오버·콜로라도)에 불과하다. 한국지엠 국내 공장인 부평과 창원에서는 트레일 블레이저와 트랙스 크로스오버 2종만 생산한다. 최근 출시된 에스컬레이드가 잘 팔린다고는 하지만, 서민들에게는 가격 부담이 있는 캐딜락 브랜드 의전용 차량이다. 게다가 전량 미국에서 수입하기에 국내 생산이나 판매량은 한계가 있다.
한국지엠은 지난 2024년 기준 총 49만4072대를 생산했는데 이중 84.8%인 41만8782대를 미국으로 수출했다. 내수는 2만4824대에 불과하다.
한 자동차 딜러는 "기본적으로 소개할 수 있는 한국지엠 모델이 너무 적고 경쟁업체 신차 비교 견본이 없다 보니 한국지엠 모델이 중고 시장에만 있고 이미 철수한 걸로 알고 있는 고객도 있더라"며 "20여년 전부터 나온 한국지엠 철수설이 결과적으로 내수 기반이 조금도 강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쉽게 사그라들 것으로 보이느냐"고 반문했다.
그동안 자동차 시장에서 입증된 내수 활성화 해답은 신차 출시이지만, 한국지엠이 내놓은 계획이란 "조만간 출시할 것"이라는 막연한 경영진 장담 외에는 전혀 없다.
글로벌 대세는 전기자동차(EV)인 만큼 글로벌 자동차 브랜드라면 어느 사업장을 가도 있는 관련 생산라인과 모델이 한국지엠엔 없고 추후 생산계획도 없다. 3년 전부터 나온다던 전기차 신차 이쿼녹스 소식은 아직도 나오지 않고 있다. 이쿼녹스는 고사하고 기존 국내 생산 중인 트레일 블레이저와 트랙스 크로스오버 후속 모델조차 나올지 의문이다.
자동차 업계 한 관계자는 "전기차가 수요 정체기를 맞았다고는 해도 말 그대로 일시적인 현상인 반면, 내연기관 자동차 규제는 앞으로 계속 늘어날 전망"이라고 말했다. 이 상태로 가면 한국지엠은 정부 규제나 우회 비용 증가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을 시사한 것이다.
내수 라인업 부족과 신차 부재에 대한 결과는 이미 실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지엠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지엠 매출은 14조3771억원으로 2013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고, 영업이익률은 9.4%다. 언뜻 보면 견실하지만, 타 국내 완성차 업체들과는 달리 수출 비중이 93%로 포트폴리오가 한쪽에 몰려 있다.
지난해 한국지엠의 국내 매출액은 전년보다 28.7% 줄어든 9618억원이다. 한국지엠이 연간 단위로 실적을 공시한 2003년 이후 최초로 1조원이 못 되는 수치이기도 하다. 업계에 따르면 올해 1분기 한국지엠 국내 판매량은 2711대로 전년 동기 대비 44.5% 감소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25% 관세 피해가 반영되기 시작할 오는 5월부터는 그나마 한국지엠의 장기인 수출 판매량도 장담할 수 없다.
한국지엠이 불리할 때마다 꺼내 드는 카드인 '본사 방침'도 고질적 불안 요소다.
헥터 비자레알 사장은 GM 본사에 한국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한국 시장의 잠재력이나 시장가치를 높게 평가한 것인지, 그냥 소재가 한국으로 돼 있는 단순 생산기지로서 중요한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트레일 블레이저나 트랙스 등 한국에서 생산되는 소형 SUV 모델들의 미국 판매 물량은 GM 본사의 미국 전체 판매량의 10%를 훌쩍 넘는다. 한국 시장이 중요하다는 발언 자체는 거짓말은 아닌 셈이다. 하지만 현재까지 보인 한국지엠의 내수 전략은 본사의 생산기지로서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 아닌지 의심하게 만든다.
GM 본사는 지난 2018년 군산공장을 폐쇄하기 전에도 한국 시장의 중요성을 끊임없이 강조했다. 이에 따라 한국지엠도 당시 폐쇄설은 근거 없다고 일축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군산공장 폐쇄는 현실화됐고, GM 본사는 한국에서 철수를 안 하는 대신 KDB산업은행 등 한국지엠 주채권은행으로부터 8100억원을 지원받고 오는 2027년까지 남은 사업장들을 유지키로 약속했다.
즉, 계약기간은 2년 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다. 수십년간 한국의 노조문화 등을 불편하게 생각해 철수카드를 계속 만지작거려온 GM 본사가 관세문제까지 불거진 상황에서 남은 계약기간 동안 반전을 보여줄 지는 미지수다.
이와 관련 폴 제이콥슨 GM 최고재무책임자(CFO)도 최근 "관세 부과가 장기화하면 공장 이전을 검토할 수밖에 없다"고 발언했다. 어느 쪽이든 현재로서는 한국이 GM에 중요한 시장인 점은 맞지만, 내후년 한국 사업장 유지를 연장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는 셈이다.
추후 신차 출시나 내수 및 미국 관세 대응 전략과 관련해 한국지엠의 입장은 일관돼 있다. 한국지엠 관계자는 "이같은 불안 요소들이 표면화 된 것은 아니다"라면서 "본사 방침상 추후 계획 등은 공개할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