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정유·화학…생존 위한 처절한 '각자도생'
SK이노, 정유·화학·배터리 '흔들'…5월 위기대응책 마련 "현금 마련부터"…LG화학·롯데케미칼 보유자산 매각 러시
[뉴스웍스=안광석 기자] 정유·석유화학 업체들이 중국발 공급 과잉 및 수요 부진, 미국발 관세전쟁 등 악재가 이어지자 생존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석유화학은 정부 주도의 구조조정 작업이 진행 중이지만, 자율에 맡기는 분위기인 만큼, 업체별 특성에 맞게 '각자도생'에 나서는 모습이다.
29일 재계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은 이르면 5월 7일 전사 차원의 위기 극복 대책을 내부 공유할 예정이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구조조정이나 조직개편 등 비상경영체제 돌입에 준하는 내용이 아니다. 정유·화학·배터리 모든 부문이 상황이 좋지 않은 만큼 동기부여 차원의 메시지를 공유하는 정도로 받아들이고 있다"면서 "어떤 내용이 나올 지는 확정된 바 없다"고 말했다.
유가 하락 지속에 따른 정제마진 축소가 결정적이다. 국내 정유사의 수익성 지표 기준이 되는 싱가포르 복합 정제마진은 1분기 평균 배럴당 3달러 수준이다. 통상 손익분기점인 4.5달러에서 한참 못 미친다. 석유화학제품군 수요도 미국발 관세 전쟁에 따른 글로벌 경기 침체 여파로 둔화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의 신성장동력인 배터리 부문 계열사 SK온도 전기자동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 및 주력 제품인 파우치형 배터리 글로벌 수요 감소로 맥을 못 추고 있다. SK온은 지난해 7월 비상경영을 선언하고 전 임원 연봉 동결 등 비용 절감에 나선 상태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의 1분기 영업이익 증권사 평균 전망치(컨센서스)는 860억원이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85% 줄어든 실적이다. 그나마 영업이익은 지난 2024년 적자를 이어오다가 4분기 들어서야 흑자로 전환하기는 했지만, 당기순이익은 적자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불황에 시달리는 것은 에쓰오일(S-OIL) 및 HD현대오일뱅크 등 다른 정유사들도 마찬가지다. 특히 에쓰오일은 올해 1분기 영업이익 적자로 전환했고, 정제마진 반등 여력이 높지 않은 만큼 2분기도 적자가 예상되는 상황이다. 비상장사인 HD현대오일뱅크도 지난해 영업이익이 전년보다 58.2% 줄어든 2580억원에 그쳤다.
다만 양사는 저유가에 따른 수요 회복 등의 모멘텀이 생길 때까지 어떻게 해서든 버틴다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에쓰오일 측은 "'샤힌 프로젝트'가 본격 가동하는 오는 2027년 중반부터는 공급과잉이 점차 해소되고, 이에 따라 석유화학 마진도 좋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샤힌 프로젝트는 에쓰오일이 2026년까지 9조2580억원을 들여 울산 온산국가산업단지 내에 스팀 크래커(기초유분 생산설비)를 비롯한 대단위 석유화학 생산설비를 구축하는 프로젝트다.
HD현대오일뱅크는 안정적 현금 흐름을 유지 차원에서 이달 내 2500억원 규모의 30년 만기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할 예정이다. 신종자본증권은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에서 자본으로 인정되기에 기업의 자본 확충 수단 중 하나로 이용된다. HD현대오일뱅크는 지난 2024년 10월에도 2500억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한 바 있다.
정부 주도의 구조조정이 사실상 물 건너간 석화 업계도 자구책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LG화학은 재무구조 안정화 차원에서 비핵심자산 매각을 추진 중이다. 특히 바닷물을 산업용수로 정화하는 역삼투막(RO 멤브레인) 필터를 만드는 워터설루션 사업부와 에스테틱 사업부 매각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구광모 LG그룹 회장도 시황이 좋지 않은 만큼 지난 3월 '선택과 집중' 및 '사업별 우선순위'를 강조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LG화학 관계자는 "현 시점에서는 아무 것도 결정된 바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1조8256억원이라는 대규모 적자를 낸 롯데케미칼은 그룹까지 나서 경영정상화에 여념이 없다. 그럼에도 글로벌 석유화학제품 공급과잉 및 중국 시장 수요 감소로 운신의 폭이 적은 상황이다.
현재 롯데케미칼은 해외 생산 경쟁력을 높일 목적으로 인도네시아 찔레곤시에 대규모 석유화학단지를 조성하는 ‘라인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이 프로젝트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도 지대한 관심을 갖고 현장을 방문 중이다.
LG화학처럼 파키스탄 자회사 LCPL(1275억원) 및 일본 화학사 레조낙 지분(2750억원) 매각 등 보유 자산 매각을 통한 현금 확보에도 나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