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車관세 완화로 숨통 트인 현대차·기아…부품업계엔 '글쎄'
현지 생산 차량 부품 관세 2년간 완화…차값의 15%, 10% 적용 전문가들 "완성차 부담 일부 경감…부품업체엔 실질 효과 미미"
[뉴스웍스=정현준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100일을 맞아 자동차 관세 완화 조치를 공식화하면서, 현대차와 기아 등 미국 내 생산시설을 보유한 완성차 업체들의 숨통이 트일 전망이다. 반면, 국내 부품업체들은 실질적인 혜택 체감이 어렵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9일(현지시간) '수입 물품에 대한 특정 관세 해소'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자동차와 부품 수입에 대한 관세 조정안을 발표했다.
이번 조치의 핵심은 관세 중복 부과 해소와 '부품 관세 상쇄 크레딧(Credit)'제도 도입이다. 기존에는 철강·알루미늄·자동차 부품 등에 각각 관세가 부과돼 중복 과세 구조라는 지적이 있었지만, 앞으로는 이들 중 가장 높은 세율 하나만 적용된다. 지난 4일 이후 중복 납부된 관세는 소급 환급이 가능하다.
이번에 도입된 관세 상쇄 크레딧은 미국에서 최종 조립된 차량에 한해 권장소비자가격(MSRP)의 일정 비율만큼 부품 관세를 감면해 주는 제도다. 1년 차에는 차량 가격의 15%에 해당하는 부품에 대해 25%의 관세가 면제된다.
예를 들어 차량 가격이 100달러라면, 그 중 최대 15달러어치 부품에는 25%의 관세가 면제되는 셈이다. 이는 MSRP 기준 약 3.75% 수준만큼 관세 부담을 줄여주는 효과를 의미한다. 2년 차에는 이 비율이 10%로 줄어들고, 이후 해당 혜택은 종료된다.
이번 조치는 현대차와 기아 등 외국 브랜드를 포함한 미국 내 생산 차량 전체에 적용된다. 특히 차량 부품의 85% 이상을 미국 또는 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 지역에서 조달할 경우, 사실상 추가 관세 부담이 없어진다.
트럼프 행정부는 앞서 4일부터 외국산 완성차에 25%의 관세를 부과했고, 오는 5월 3일부터는 자동차 부품에도 동일한 수준의 관세를 적용할 예정이다. 이와 관련해 미국 자동차 업계는 공급망 재구성과 생산 차질을 우려하며 완화 조치를 요청해 왔고, 미국 상무부는 공급망 전환에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반영해 2년간 유예 기간을 뒀다.
국내 업계는 당장의 비용 증가를 피할 수 있다는 점에서 '최악은 면했다'는 평가다. 현대차·기아는 미국 앨라배마와 조지아 공장에서 현지 생산을 하고 있어 관세 감면 혜택을 누릴 수 있다. 현대차는 미국 조지아주 메타플랜트(HMGMA)의 생산 능력을 20만 대 증설해 연간 120만대까지 확대할 방침이다.
이승조 현대차 재경본부장(부사장)은 최근 1분기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현지 부품 공급 및 물류 전략 수립과 생산 효율화 방안을 마련 중"이라고 말했고, 김승준 기아 재경본부장(전무)도 "현지 생산 차량의 판매 구조를 강화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번 조치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자동차 부품은 국경을 넘나드는 공급망 구조로 되어 있는데 관세 감면 적용 기준이 불분명하고, 수입차에 대한 25% 관세는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현지 공급망 재편과 생산 확대 압박은 계속될 전망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예측 불가능한 정책 방향도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2월 수입 철강·알루미늄에 25%의 관세를 부과하는 포고문에 서명하면서 자동차 관세 부과 가능성을 시사했고, 이후 이달 2일부터 모든 수입 자동차에 25% 수준의 관세를 적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달 중순에는 자동차 부품 관세 유예 가능성도 거론됐지만, 최종적으로는 다음 달 3일부터 적용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로 완성차업체에는 일부 감면 효과가 있지만, 부품업체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으로 내다봤다.
김영훈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 실장은 "미국 내 생산 차량을 보유한 완성차 업체에는 일정 부분 도움이 되겠지만, 부품업체에는 실질적인 영향이 제한적"이라며 "완성차가 가격 정책을 어떻게 조정하느냐에 따라 간접적 영향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권은경 한국모빌리티산업협회 실장도 "이번 조치는 미국 내 제조 유인을 위한 정책적 메시지일 뿐, 국내 부품사 입장에서는 실효성이 크지 않다"며 "국경을 넘나드는 공급망 특성상 관세 적용 기준이 모호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2년 안에 공급망을 이전해야 하는 현실을 고려할 때, 그에 따른 비용 부담을 감안하면 실질적인 감면 효과가 크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완성차업체가 감면 혜택을 독점할 경우, 부품사는 운송비·관세 부담을 감당하지 못해 도산 위기에 몰릴 수 있다"며 "완성차가 받은 혜택을 2·3차 벤더들과 공유해 함께 버틸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