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해체계획심의 제도, 안전을 위한 '형식'인가 '설계'인가

2025-05-05     우수한 기자
박창민 운리산업개발 대표이사.

건축물 해체공사는 더 이상 단순한 철거가 아니다. 구조적 안전을 정밀하게 계산하고, 도시의 안전을 전제로 설계되는 고도의 기술공정이다. 해체계획심의 제도는 이런 공정의 안전성과 타당성을 사전에 검토하기 위한 장치로 도입됐다. 그러나 지금의 제도는 그 취지에 부합하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해체계획심의는 현재 일정 규모 이상의 해체공사에서 건축물관리법에 따라 의무화되어 있다. 겉으로 보기엔 법제화가 이뤄졌고, 안전장치도 마련된 듯 보인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형식적 심의", "실효성 없는 절차", "제각각인 기준"이라는 말이 끊이지 않는다. 제도적 틀은 존재하지만, 실제로는 구조를 보지 못하고, 위험을 걸러내지 못하는 채 작동 중이다.

가장 먼저 짚어야 할 것은 심의 대상의 불균형이다. 내부 수장재 철거, 건물 내  시설물, 기계설비 해체 등은 명백히 구조적 하중과 연관되며, 공정상 위험이 높은 작업임에도 불구하고 심의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다. 특히 리모델링이나 부분 해체가 병행되는 건축물은 오히려 해체보다 더 복잡한 구조위험을 내포하지만, 제도는 이를 따로 고려하지 않는다.

반면, '10톤 이상 장비를 건축물 위에 올릴 경우 국토안전관리원의 심의를 받아야 한다'는 규정은 해체대상의 건축물의 구조적 상태와 무관하게 일괄 적용되고 있다. 어떤 건축물은 10톤 이상의 장비도 견디지만, 어떤 노후 건물은 3톤도 위험하다. 구조는 단순 중량에 의할게 아니라 하중의 집중 여부, 피로 누적, 재료 강도, 시공 방식 등 다양한 요소에 의해 좌우된다. 결국, 절대값 기준보다는 상대적 구조수용능력 중심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절차의 형식화도 문제다. 심의가 서류 접수와 형식 요건 확인에 그치며, 구조안전성에 대한 실질적 검토는 부실하게 이뤄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더 큰 문제는 심의 주체의 편차다. 각 자치구의 지역건축안전센터와 심의위원들이 심의를 맡고 있지만, 인력 구성, 기준 해석, 위원 전문성 등이 지역마다 크게 다르다. 동일한 위험요소에 대해 어떤 지역에서는 반려되고, 어떤 지역에서는 그대로 통과되는 식이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보완할 것인가. 단순히 기준을 고치고 법을 개정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진짜 필요한 것은 심의 구조의 다층화와 공정성 확보다.

무엇보다도 심의위원 구성이 바뀌어야 한다. 현재 다수의 심의가 건축사나 구조기술사 등 설계·감리 중심 인력으로 구성되어 있다. 물론 이들의 전문성은 필수지만, 해체공법에 대한 실무 이해, 구조물 거동에 대한 경험, 현장 안전 리스크에 대한 직관은 상대적으로 부족할 수 있다. 더욱이 이들이 기존 설계에 관여했거나, 이해관계가 얽힌 경우라면 객관성과 투명성도 담보하기 어렵다.

그래서 해체심의에는 공사 이해관계자가 아닌 제3의 전문업체, 즉 해체전문기업, 구조분야 기술진단업체, 민간 구조자문기관 등 현장 실무 전문성을 갖춘 외부 전문가의 참여를 의무화해야 한다. 이들은 실무 중심의 기술 검토는 물론, 현장 기반 위험요소에 대한 실질적 진단이 가능하다. 행정의 객관성을 유지하면서도, 현장의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이다.

이와 함께 심의 기준도 개편돼야 한다. 노후도, 구조형식, 주변 환경, 집중하중 발생 여부 등 위험기반 분류체계로 전환해야 하며, 전국 통합 매뉴얼과 데이터 기반 평가시스템이 가동되어야 한다. 심의가 자치구별로 들쭉날쭉해선, ‘해체공사의 안전’이라는 목적은 결코 달성할 수 없다.

해체는 예전처럼 단순히 건축물을 부수는 철거가 아니고, 심의는 설계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서류를 넘기는 행정이 아니라 구조를 설계하는 심의다. 절차는 더 구조적으로, 구성은 더 객관적으로, 판단은 더 실무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때 비로소, 해체계획심의는 공허한 절차가 아니라 도시의 안전을 세우는 첫 단추가 될 것이다.

[박창민 운리산업개발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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