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은행 M&A, 당국 노력 무색…시장 '미동'조차 없다
정부, M&A 기준 완화 정책 의문…"실질적 도움 안돼" 중소형사 가격·의지 부족…"79개사 형태 유지될 것"
[뉴스웍스=정희진 기자] 정부가 저축은행 인수합병(M&A) 문턱을 낮췄지만, 시장은 미동조차 없다.
업계는 "당국이 문을 열었지만, 시장은 들어갈 이유를 못 찾는다"며 정책 효과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저축은행 발전방안이 논의된 후 M&A 인수 요건이 대폭 완화됐지만, 주인이 바뀐 곳은 SBI저축은행뿐이다.
당국은 최근 2년 동안 자산건전성 지표가 4등급 이하이거나 BIS 비율이 11% 이하인 저축은행도 인수할 수 있도록 유도 중이다. 79개사인 저축은행 수를 줄여 체력을 키우겠단 복안인데 저축은행 간 인수합병은 미적지근한 분위기다.
실제 OK금융그룹은 지난해부터 상상인저축은행 인수를 검토했으나 협상은 난항을 겪고 있다. 상상인 측은 약 1.4배 수준의 주가순자산비율(P/B)을 기준으로 2000~3000억원의 매각가를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OK금융이 제시한 금액과 차이가 컸고, 상상인의 매각 의지 또한 높지 않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업계 관계자는 "OK는 인수가를 제시했지만, 상상인이 이를 받지 않고 있다"며 "정확한 입장은 상상인 측에 확인해야겠지만, '경기가 좋아지면 몸값이 오른다'는 기대심리가 작용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앞서 상상인은 경영개선권고 조치 발표 다음 날(3월 20일) "지난해 영업실적은 영업손실 규모가 매 분기 축소됐고 4분기 흑자 전환에 성공했고, 이 같은 추세에 따라 올해는 연간 흑자도 기대하고 있다"며 "자산건전성 제고를 위한 다각적인 자구 노력을 지속할 것"이라며 상상인이 건재함을 밝힌 바 있다.
OK금융은 이후 협상이 답보 상태에 빠지자 페퍼저축은행으로 눈을 돌렸지만, 이 역시 무산됐다. OK측은 자문 회계법인을 선정하고 실사에 적극 착수했지만, 페퍼 측이 인수합병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앞서 페퍼는 지난해 3분기 300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단행한 뒤, 올해 3월 경영실태평가에서 '유예' 판정을 받아냈다.
결국 당국은 실제 거래를 유도하기 위한 '핵심 요건'이 아닌, 겉으로 드러나는 매물 수 확대에 초점을 맞추며 구조조정을 시도한 셈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저축은행 인수는 낮은 가격, 강한 매각 의지, 전략적 보완 가능성(포트폴리오, 영업권) 등이 충족돼야 하지만, 현재 조건을 만족하는 매물은 없다"고 말했다.
이 와중에 유일하게 성공한 거래는 교보생명의 SBI저축은행 인수다.
교보생명은 지난달 28일 이사회에서 SBI저축은행 지분 50%+1주를 단계적으로 인수하기로 결의했다. 올해 하반기 1차로 30%를 확보해 자사주를 제외한 의결권 기준 35.2%를 보유하고, 이듬해 10월까지 최종적으로 58.7%의 의결권을 확보해 최대주주에 오를 계획이다.
SBI저축은행은 2011~2012년 구조조정 당시 자산·부채이전(P&A) 방식으로 국내에 진입한 일본계 저축은행이다. 과거 일본의 초저금리와 한국의 고금리 대출 환경을 활용한 '저리 조달-고금리 운용' 모델로 수익을 냈지만, 일본은행(BOJ)의 기준금리 인상과 국내 수익의 본국 송금 제한 등으로 기존 모델에 균열이 생겼다.
업계는 이번 인수를 수익모델 변화에 따른 예금 기반 다변화 전략으로 해석한다.
한 관계자는 "기존 수익모델(한·일 금리차)이 변화된 것은 사실"이라며 "공동 지분 구조를 선택한 것으로 볼 때 완전 철수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저축은행은 개인 대주주가 예금취급기관을 소유할 수 있는 유일한 업권인 만큼, 이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 역시 "SBI 인수는 자체 전략적 판단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며 "일본계 금융사는 국내 배당이 사실상 어려운데, 이는 국내 정서상 일본 자본이 수익을 가져가면 '국부 유출'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SBI가 배당한 건 단 한 번뿐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두고 "이런 맥락을 업계에서는 '국민정서법'이라고 부른다"고 덧붙였다.
업계에서는 교보의 사례를 '이례적'으로 합이 맞은 사례로 본다.
업권 관계자는 "당국의 규제 완화가 명목상으론 의미 있어도 실질적 효과는 미미하다"며 "신규 인가가 사실상 불가능한 업권 특성상, 업계 전체 수는 당분간 79개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그는 "다만 향후에는 복수 저축은행을 보유한 '형제회사 체계'가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며 "한국 경제 특성상 양극화는 심화될 수 있지만, 계열 내 전략을 통해 동반 성장을 꾀하는 움직임도 조심스럽게 기대해 볼 만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