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맹탕 선거와 참을 수 없는 정치의 가벼움…괴로움은 국민의 몫

2025-05-24     차진형 기자
조혜경 경제민주주의21 대표.

좀처럼 선거 분위기가 달아오르지 않는다. 결과가 뻔한 선거라. 애초부터 김이 빠진 것도 있고, 진보·보수·중도 가릴 것 없이 모든 유권자가 만성 정치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이라 새 대통령에 대한 기대도 예전 같지 않다.

무덤덤하고 무관심한 선거 분위기에 깔 맞춤을 한 듯 선거 슬로건도 맹탕이다.

대선 후보 지지도 조사에서 압도적인 차이로 앞서 나가는 이재명 후보는 '이제부터 진짜 대한민국', 한참 뒤쳐져 있는 김문수 후보는 '새롭게 대한민국'을 내걸었다. '진짜', '새롭게' 수식어가 사실상 전부인데, 진부하고 식상한 것을 넘어 아무런 내용이 없다. 그 어떤 정치적 의미도, 시대정신도 드러나지 않는다. 

맹탕 슬로건보다 더 한심한 것은 아무말 대잔치 공약이다.

세계를 선도하는 경제강국, 가계 소상공인 활력 증진, 공정경제, 외교 강국,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나라, 자유 주도 성장, AI·에너지 3개 강국, 청년이 크는 나라, 중산층 자산 증식 등등 비현실적인 추상적 목표와 국정 책임자로서 당연히 해야 할 책무를 공약이랍시고 늘어놓았고, 방법은 '퍼주기' 이외에 별다른 언급이 없다. 선거철이면 으레 벌어지는 기적을 약속하는 공허한 말잔치에 불과하다.

평범한 정치인이 대통령 후보로 나서는 순간 한국사회의 모든 고질병을 낫게 할 수 있는 초능력자로 변신하는 낯익은 광경이 벌어지고 있다. SF 영화나 만화에서 통하는 판타지가 대한민국 대선 경쟁의 고정 내러티브가 된 지는 이미 오래다.

달라지는 건 한국사회의 고질병이 깊어질수록 선거철 말잔치는 더 성대하고 화려해지고 기적을 창조하는 후보의 초능력도 더 강력해진다. 아무말 대잔치 공약 중에서 무엇이 진심인지 가려낼 방법이 없다. 설사 진심이라고 해도 말 바꾸기가 다반사고, 안 지켜도 그만이라 굳이 공약을 세세히 들여다보며 시간을 낭비할 이유도 없고 평가할 이유도 없다.

공약이 빈 약속이라는 사실을 오랜 경험을 통해 학습한 만큼 유권자들은 후보들이 쏟아내는 감언이설에 무감하고 무관심하다.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 하고, 서슴없이 거짓말을 해도 그것이 정치의 속성이라 받아들인다.

어떤 정권이 들어서든 정권 초반에 성과를 내야 한다는 강박에 빠져 뜬구름 잡는 공약은 어설픈 정책으로 급조되어 구체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대통령실의 힘으로 몰아붙인들 그 결과가 좋을 리가 없다. 화려한 약속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초라한 결과를 마주한 유권자들은 알면서도 속은 것에 분풀이하듯 선거 때마다 정권을 갈아치우는 것으로 거짓말 정치를 응징한다.

대통령이 자기 맘대로 나라를 통치할 수 없다는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군대를 동원한 친위 쿠데타를 일으켜 파면을 당해 치러지는 조기대선이다. 계엄 대통령을 배출한 국민의힘은 내란 비호 정당이라는 주홍글씨를 평생 가슴에 달고 살기로 작정한 듯하다. 계엄세력과 결별을 거부하는 당 지도부가 심야 강제 후보 교체라는 괴이하고 엽기적인 행각을 벌이고도 태연하게 선거운동을 하며 돌아다닌다.

이재명 후보의 말처럼 "가만히 있으면 상대방이 자빠지는" 긴장감 제로의 맹탕 선거에 참을 수 없는 정치의 가벼움이 그 어느 때보다 더 유권자들을 무겁게 짓누른다. 유권자 대다수는 이번에도 기꺼이 속을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나 파렴치함을 갑옷처럼 휘두른 위정자들이 유발하는 스트레스에 괴로움은  순전히 국민의 몫이다.

[조혜경 경제민주주의21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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