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졌던 산업계 M&A…6·3대선 이후 '속도전' 나서나
유동성 확보 급한 SK·LG 계열사 매각 서두를 듯 특정후보 당선 시 호반그룹 적대적 M&A 더욱 활발
[뉴스웍스=안광석 기자] 오는 3일 치러지는 대통령 선거 이후 기업 인수합병(M&A)이 활발해질 전망이다.
지난 2024년 12월 3일 계엄 이후 국내 산업계를 짓눌러 온 불투명성이 사라지면서 미뤄온 신규투자 및 기존 사업 재편 당위성이 부각될 전망이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기존보다 0.25% 낮춘 2.50%로 발표한 것도 M&A에 활기를 불어넣을 것으로 여겨진다.
1일 재계에 따르면, SK그룹은 지난 2024년부터 추진 중인 대대적 사업 재편(리밸런싱) 차원에서 이달 9일 SK실트론 예비입찰에 나설 예정이다. 인수후보로는 사모펀드 한앤컴퍼니와 스틱인베스트먼트 등 사모펀드들이 거론된다.
SK㈜ 산하 계열사 SK실트론은 비상장사이고 올해 1분기 실적도 그리 좋지 않다. 다만, 국내에서 유일하게 반도체용 실리콘 웨이퍼를 생산하는 데다, 반도체 산업 전망도 좋아 5조원가량의 기업가치가 있다고 평가된다.
그럼에도 SK그룹이 해당 계열사 매각을 감행하는 것은 정유·화학·배터리(SK이노베이션)나 건설(SK에코플랜트) 등 기존 주축사업 경쟁력이 약화 추세이고, 전망도 좋지 않기 때문이다. 그동안 진행해 온 리밸런싱 여파로 인한 그룹 순차입금도 지난해 말 기준으로 10조5000억원에 달한다.
재계 한 관계자는 "최근 SK텔레콤 해킹 사태로 예상되는 1회성 손실비용 및 보상소송 등 후폭풍과 미래산업인 배터리 부문 부진 장기화 등을 감안하면, 상장(IPO) 작업이 사실상 물 건너간 SK이노베이션 배터리 자회사 SK온 매각도 대선 이후 가시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SK이노베이션은 올해 1분기 적자를 낸 박상규 대표이사 총괄사장을 사실상 경질하고, 신임 대표이사직과 총괄사장직에 각각 추형욱 E&S 사장과 장용호 SK㈜ 사장을 앉혀 2인 수장 체제를 만들었다. SK그룹에 따르면 추 사장은 그룹 반도체·배터리 부문 M&A를 조율한 해당 분야 전문가다. 장 사장은 최태원 회장의 신임이 깊은 재무통으로 알려졌다.
그룹 재무상황이 좋지 않은 만큼, 경우에 따라서는 고강도 구조조정 차원의 SK온 매각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SK이노베이션 뿐 아니라 석유화학 업계 전체적으로 M&A가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중국발 공급과잉에 따른 업계 사업 재편 필요성은 이미 지난해부터 제기됐기 때문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및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후보도 당선 후에는 석유화학 구조조정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실적 부진으로 대규모 구조조정설에 시달리고 있는 LG화학은 유동성 확보를 위해 1조원 규모의 수처리사업부 워터솔루션 및 에스테틱사업부, 여수 나프타 분해 설비(NCC) 2공장 매각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SK이노베이션과 마찬가지로 반도체 소재 관련 사업도 잠재 매물로 거론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LG화학 관계자는 "모든 것이 검토 중일 뿐 확정된 계획은 아직 없다"고 말했다.
자산경량화(에셋 라이트) 작업을 추진 중인 롯데케미칼은 인도네시아 자회사 LCI 지분을 비롯해, 말레이시아 자회사 LCT 매각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1분기 1266억원의 적자를 기록한 롯데케미칼은 울산공장을 중심으로 고연령 생산직 직원들 대상 권고사직을 실시 중이다.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가 당선될 경우, 호남기업인 호반그룹의 M&A가 날개를 달 가능성이 있다. 호반그룹은 건설업이 주력이지만, 건설 전망이 좋지 않아 신규 분양을 거의 하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1조원에 달하는 현금과 18% 밖에 안 되는 부채비율 등 탄탄한 재무구조를 바탕으로 포트폴리오 확대를 위해 적대적 M&A를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인 사례가 대한항공이다. 김상열 호반그룹 창업주는 실패로 끝나기는 했지만, 지난 2015년 아시아나항공을 자회사로 뒀던 금호산업 인수를 시도했던 만큼 항공업에 대한 욕심도 있다. 호반호텔앤리조트를 계열사로 두고 있는 만큼 대한항공 인수 시 시너지도 기대된다.
호반그룹은 최근 대한항공 지배회사인 한진칼 보유 지분을 17.44%에서 18.46%로 늘렸다. 단순 투자를 이유로 밝혔지만, 호반은 수년간 꾸준히 지분을 매수해 한진칼 대주주인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및 특수관계인(20.13%)과 지분 차이를 좁혀 왔고, 지난 3월 주주총회에서도 이사 보수 한도에 이의를 제기하기도 했다.
물론 조 회장에게는 델타항공(14.9%)과 KDB산업은행(10.58%)이라는 우호지분이 있다. 그러나 델타항공은 필요에 따라서는 호반과도 M&A 관련 논의의 가능성이 열려 있는 데다, 산은은 신정부가 들어선 이후 정책기조가 바뀔 수도 있다.
조 회장 측은 표면화하지는 않고 있지만, 호반의 공세를 막기 위해 주주가치 훼손 비판을 받으면서까지 1% 안팎에 불과한 의결권 없는 자사주를 사내복지기금에 증여해 의결권을 부활시켰다. 또한 대한항공으로 하여금 동맹관계인 LS의 교환사채(CB)를 인수하게 해 추후 경영권 분쟁 가능성을 염두에 뒀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반대로 대선 이후 M&A가 더욱 불투명해질 사례도 있다. 민영화 작업을 추진 중인 HMM이다.
현재 HMM 대주주는 산은과 한국해양진흥공사로 각각 36.02%, 35.67%의 지분을 보유 중이다. 산은은 자기자본비율을 높이기 위해 산은 지분을 매각하려 하지만, 해진공은 민영화를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런 상황에 유력 대선후보인 이 후보가 HMM 본사 부산 이전 등 정부의 경영 간섭을 의미하는 공약을 내면서 민영화는 더욱 더 멀어진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