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주 "공약은 방향일 뿐…실행엔 정치 의지·제도 기반 필수"

[뉴스웍스가 만난 사람] 디지털 자산 명확한 법적 정의 없어 발전 저해 여야 모두 '기본법' 제정 공약했지만…구체적 설계·집행 로드맵은 공백

2025-05-30     정희진 기자
이근주 한국핀테크산업협회장이 한패스 사무실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정희진 기자)

[뉴스웍스=정희진 기자] 6.3 대선 첫 TV토론에서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둘러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의 공방이 가상자산 시장을 뜨겁게 달궜다. 디지털자산이 처음으로 정치권 핵심 의제로 올라선 것이다.

30일 대선이 나흘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가상자산 산업은 기대와 우려 속에서 요동치고 있다. 주요 후보들은 '디지털자산 기본법 제정', '스테이블코인 발행', '현물 ETF 허용'을 잇달아 공약했지만, 구체적 설계도는 빠져 있다.

변화의 최전선을 지켜본 이는 이근주 한국핀테크산업협회장이다. 전통 금융과 핀테크 산업을 모두 경험한 그는 국회와 함께 디지털자산 기본법 포럼을 주도해왔다. "변화는 시작됐다"는 그의 진단 뒤에는, 공약이 정책으로 작동하기 위한 냉정한 조건들이 놓여 있다.

뉴스웍스는 이 회장을 만나 대선 공약의 현실성과 법안 추진을 위한 전제 조건, 그리고 디지털자산 산업의 다음 과제를 들어봤다.

-협회는 디지털자산 기본법 관련해 6차례 포럼을 이어오며 정치권과 논의를 지속해왔다. 그간 협회가 가장 중점을 두고 제기한 쟁점은 어떤 부분이었나.

"첫째는 디지털자산의 명확한 정의와 분류 체계 확립이다. 스테이블코인 등 다양한 자산에 대한 법적 정의가 없어 산업 발전과 이용자 보호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서다.

두 번째는 산업 진흥과 규제의 균형 확보다. 과도한 규제로 국제 경쟁력을 잃지 않으면서도 이용자 보호와 시장 안정성을 확보해야 한다. 디지털자산 사업자 분류와 라이선스 제도 개선 등 혁신 친화적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

셋째는 글로벌 스탠다드와의 정합성이다. EU의 MiCA, 일본의 자금결제법 등 해외 주요국 규제와 호환 가능한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 국내 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규제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이번 대선을 앞두고 여야 주요 후보들이 '디지털자산기본법 제정'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정치권이 디지털자산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긍정적 신호다. 디지털자산은 투기 수단이 아니라 디지털 경제 시대의 핵심 인프라로 자리잡고 있다. 미국의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 글로벌 기관투자자들의 적극적 참여도 정치권 인식 전환에 영향을 줬다. 다만 대부분 공약은 방향성 제시에 그치고 구체적 실행 계획은 부족하다. 규제 불확실성 해소 기대는 커졌지만, 실질적 제도화까지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정책화 가능성이 높은 공약은 무엇인가.

"디지털자산 기본법 제정, 생태계 정비, 현물 ETF 허용이 현실화 가능성이 높다. 특히 현물 ETF는 미국과 홍콩 등 주요국에서 이미 승인된 만큼 국내에서도 기술적 구현이 어렵지 않다. 주요 대형 자산운용사들이 상품 설계를 마쳤고, 정책 결정만 남은 상황이다.

양당 모두 디지털자산의 중요성에 공감하고 있어 초당적 합의도 기대된다. 글로벌 규제 환경 변화와 업계 준비도가 뒷받침되고 있어 정책화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이근주 한국핀테크산업협회장이 뉴스웍스와 인터뷰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정희진 기자)

-공약이 입법으로 이어지기 위해 필요한 조건은 무엇인가.

"정치적 의지와 초당적 합의가 필수다. 디지털자산은 단기 과제가 아니라 장기적 전략 과제이기에 일관된 정책 방향을 유지해야 한다.

행정부 내 컨트롤타워 구축과 부처 간 역할 분담도 중요하다. 현재 디지털자산 관련 업무가 여러 부처에 분산돼 혼선이 발생하고 있다. 국회와의 긴밀한 협력 체계도 필수적이다. 상임위원회 간담회, 국회 입법조사처와의 협력을 통해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

업계와의 소통도 중요하다. 투명하고 개방적인 정책 과정, 이해관계자 의견 수렴 제도화를 통해 실효성 있는 정책 개발이 이뤄져야 한다."

-정책이 실질적으로 작동하려면 입법자와 현장 간의 인식 차를 좁히는 일도 중요할 듯하다. 지금 시점에서 양측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나.

"기술 복잡성과 정보 비대칭이 인식 차를 키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간담회뿐 아니라 입법자들이 직접 현장을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또한 정량적 데이터에 기반한 정책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다. 산업 구조와 현황을 보여주는 객관적 지표와 실증 데이터를 통해 신뢰를 높이고, 정책 반영 가능성을 키워야 한다."

-기본법 제정 이후 후속 과제로 가장 시급하다고 보는 것은 무엇인가.

"시행령과 세부 가이드라인 마련이 급하다. 디지털자산 분류 기준, 스테이블코인과 증권형 토큰 규제 방식, 사업자 등록 요건 등이 구체화돼야 한다.

감독·규제 체계의 일원화도 시급하다. 현재 업무가 여러 기관에 분산돼 있어 정책 집행의 일관성과 효율성이 떨어진다. 금융당국 전담 조직 확대, 기관 간 협조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

기술 인프라 표준화와 보안 기준 정립도 핵심 과제다. 블록체인 기술 가이드라인 수립과 거래소, 커스터디 업체의 보안 기준 강화가 요구된다."

-끝으로 정책 결정자나 업계 전체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디지털자산은 더 이상 미래 기술이 아니다. 이미 경제·금융 시스템 변화를 이끄는 현재의 산업이다. 규제의 목적은 혁신 억제가 아니라 건전한 발전 유도에 있어야 한다. 정부는 부처 간 칸막이를 넘어 통합적 컨트롤타워를 구축하고, 일관된 정책 방향을 유지해야 한다. 업계도 자율적 내부 통제와 투명한 정보 공개로 사회적 신뢰를 구축해야 한다. 디지털자산 기본법은 시작에 불과하다. 정책과 산업이 균형을 이루며 성장할 수 있도록 모두가 긴 호흡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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