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사법 리스크' 끝났다…힘실린 초대형 M&A·반도체 회복
[뉴스웍스=채윤정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10년 동안 짓눌려 왔던 사법 리스크를 완전히 해소했다.
대법원(주심 오석준 대법관)은 17일 오전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 사건에 대한 상고심 선고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 회장은 국정농단 사태 이후 이어간 사법 리스크를 완전히 벗게 됐다. 지난 2020년 9월 기소된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 사건에 대한 결론도 4년 10개월 만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재용 회장, 1심 재판 출석률 91%…결국 '무죄' 결론
이 재판에서 이재용 회장이 무죄를 받은 것은 검찰이 삼성으로부터 압수한 자료 대부분이 증거능력을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검찰은 2015년 이뤄진 삼성물산 및 제일모직의 합병에 대해 '이 회장의 경영권 강화와 승계를 위한 절차'라며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 분식 등 다양한 위법 행위가 있었다고 강조했다.
1심 재판부는 이에 대해 "합병이 승계 작업이라는 유일한 목적만으로 이뤄졌다고 볼 증거가 부족하다"며 "여러 증거에 따르면 삼성물산의 사업적 목적이 합병의 이유로 볼 정황이 충분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검찰은 2심에서 2300여 건의 증거 목록을 새롭게 제출했지만 역시 무죄 판결을 받았다. 특히 법원은 검찰이 압수 대상과 방법 제한을 위반한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삼성바이오로직스 서버 등 및 삼성바이오에피스 서버에 대한 압수수색은 위법하다. 위법한 방법으로 취득한 증거들은 모두 증거 능력이 없다"며 "항소 이유와 관련된 주장이 타당하지 않고, 증거가 공소 사실을 입증하기에는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증명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 회장은 1·2심 재판에서 대통령 순방 동행·경영상 현안 해결 등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면 재판에 꼭 참석하는 등 성실한 태도로 재판에 임했다. 1심 재판만 106차례 진행됐고, 출석률은 90.5%에 달한다.
2021년 4월 22일 이 회장에 대한 1차 공판이 시작된 후, 그는 2022년 회장 취임 첫날에도 재판에 참석했다. 이후 취임 1주년 역시 모습을 보였다.
이 회장은 항상 재판 시작 30분쯤 전 법원에 도착했다. 여러 이유를 들어 재판에 불출석해 온 다른 재벌들과 확연히 다른 태도다. 재벌 총수들이 '비장의 무기'로 사용해 온 휠체어도 찾아볼 수 없었다.
◆'실적으로 증명하겠다' 확고…글로벌 행보 강화 예고
이 회장이 사법 리스크에 벗어남에 따라, 재계는 그가 더 적극적인 경영 행보에 나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 거론하는 '뉴삼성' 등의 비전을 발표하는 일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 이 회장은 '실적으로 증명하겠다'는 태도가 확고해, 비전 발표에 나서는 대신 오히려 실적 개선에 힘을 쏟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반도체 실적이 저조해 2분기 실적이 당초 증권가 기대치인 7조원대에 크게 못 미치는 4조6000억원을 기록한 만큼, 반도체 사업 회복이 급선무다.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서는 엔비디아의 퀄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면서 SK하이닉스에 영업이익이 크게 밀리고 있다. SK하이닉스는 2분기에 9조원 대 영업이익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삼성전자는 D램 사업에서 3조원 안팎의 영업이익을 기록하고, 낸드에서 4000억원대의 적자를 내 전체 메모리 사업에서 2조6000억원 규모의 영업이익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SK하이닉스가 삼성전자 메모리 사업부의 3.46배 영업이익을 거둔 것으로 예상된다.
또 파운드리·시스템LSI 사업에서도 삼성전자는 2분기에 2조원이 넘는 적자를 기록하며 고전하고 있다. TSMC와 격차는 점점 더 커지고 있으며, 중국 레거시 파운드리 업체인 SMIC가 바짝 추격하고 있다. 시장 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 1분기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TSMC 67.6%, 삼성전자 7.7%, SMIC 6% 순을 기록해, TSMC의 독점 구조가 더 강화됐다.
이 회장이 신규 사업으로 바이오 사업을 강화하고 있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본원적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 우선시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황용식 세종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삼성전자가 바이오 사업에 진출해 자본을 투입해 왔지만, 오히려 본원적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며 "반도체 부문에서 TSMC와 엔비디아가 치고 올라가는 데, 삼성전자는 오히려 하강 국면을 맞고 있다. 반도체 사업 강화가 최우선"이라고 분석했다.
오일선 한국CXO연구소 소장도 "삼성이 바이오 분야를 기반으로 성장할 수 있지만, 반도체·전자 등 기존 사업에서 성과를 얻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바이오는 막대한 자금이 더 필요한 사업으로 결실을 내는 데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고 지적했다.
이 회장의 글로벌 행보도 한층 더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회장은 지난 2월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 및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과 삼자 회동을 시작으로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국가주석을 만났다. 또 아몬 퀄컴 CEO와 함께 샤오미의 자동차 공장을 찾아 레이쥔 샤오미 회장과 회동했으며, 세계 최대 전기차 업체인 BYD(비야디) 광둥성 선전 본사도 찾아 왕촨푸 회장과 면담했다.
일본도 두 차례 방문했다. 첫 번째 출장에서 그는 일본 통신사 등을 방문한 것으로 전해진다. 두 번째 출장에서 이 회장은 '2025 오사카·간사이 세계 엑스포'에서 열리는 '한국의 날' 행사 참석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결국 불참했다. 이와 관련해 삼성전자에 정통한 고위 관계자는 "이 회장이 오사카 엑스포에 참석한다는 보도가 나자마자 엑스포보다 이 회장에게 관심이 쏠렸다. 그가 행사장에 나타났으면 엑스포 취재를 위해 현지를 찾은 기자들도 이 회장 취재에 몰렸을 것"이라며 "이 같은 관심을 피하고자 엑스포를 방문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높다"고 설명했다.
이 회장은 최근 '억만장자의 여름 캠프'로 불리는 미국 선밸리 콘퍼런스 일정을 마치고 14일 새벽 귀국했다.
그는 미중 기술패권 경쟁 속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해, 글로벌 행보를 더욱 강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회장은 2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이후 3건의 M&A를 진행했다. 삼성전자는 지난 4월 자회사 하만을 통해 미국 마시모의 오디오 사업부를 5000억원에, 5월 독일 공조 업체 플렉트를 2조4000억원에 인수하겠다고 발표했으며, 이달 초 미국 디지털 헬스케어 회사 젤스 인수도 발표했다.
그러나 하만과 같은 대형 M&A가 꼭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신사업 추진을 위해 10조원 안팎 대형 M&A를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분야는 바이오·전장·메디테크가 될 수 있다. 재계 관계자들은 삼성전자가 반도체 관련 기업을 인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 회장은 또 '지배구조 개편'이라는 숙제를 안고 있다. 또 '등기이사로 꼭 복귀해야 한다'는 요구사항이 거세지고 있다. 하지만, 삼성전자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 "이 회장은 아직 등기이사로 복귀할 의사가 없다"고 확인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