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포스코가 흔들리면 포항이 멈춥니다
포항은 대한민국 산업화의 심장입니다. 그 심장 한가운데에는 언제나 포스코가 있었습니다. 50년 전, 동해의 갯벌에 제철소가 세워지던 날을 기억합니다.
밤을 지새우며 쏟은 근로자들의 땀과 눈물이 철강으로 변해 대한민국을 경제대국으로 세웠습니다. 포스코의 제철보국(製鐵報國), 그것은 포항의 역사이자 대한민국의 역사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철강의 도시 포항은 앞으로도 철강의 도시로 남을 수 있는가.”
지금 철강산업은 거대한 전환의 소용돌이 속에 있습니다. 중국의 과잉생산, 글로벌 가격 폭락, 보호무역주의 확산, 탄소중립의 부담, 원료 공급망의 불안정까지 포스코와 포항은 전례 없는 도전에 맞서고 있습니다.
이제 철강산업의 생존은 제품만 잘 만든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탄소 감축, 고부가가치 개발, 공급망 다변화, 국가 정책과의 조율까지 총체적 전략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철강은 단순한 산업이 아닙니다. 식량이 안보의 문제인 것처럼, 철강도 국가 안보의 자산입니다. 철강이 멈추면 자동차도, 조선도, 기계산업도 멈춥니다. 곧 지역의 붕괴이며, 국가의 위기입니다.
이런 가운데 저는 포스코 노동조합의 새로운 모습을 보며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노조는 이제 임금과 복지를 넘어서 회사의 경쟁력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에너지 비용 절감, SMR(소형모듈원자로) 도입, 원전선로 구축까지 함께 논의하고 심지어 포스코대교 건설 문제까지 고민하며 지역의 불편 해소를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포스코가 마련한 80억원의 상생기금도 그런 변화의 상징입니다. 포항과 광양에 각각 1억원씩을 기부해 지역의 어려운 이웃을 돕는 모습에서 노사와 지역이 함께 살아가는 'K-노사문화'의 모범을 봅니다.
포스코의 경쟁력은 곧 포항의 경쟁력입니다. 포스코의 땀과 기술이 지역 상권을 살리고, 청년의 일자리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 선순환의 끈을 절대 놓쳐서는 안 됩니다.
이제 지역 정치와 행정도 달라져야 합니다. 포스코를 지킨다는 것은 포항의 생명줄을 지키는 일입니다. 정치와 행정은 기업의 경영에 간섭하지 말고, 기업은 일자리 창출과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상호 간의 소통과 배려가 필요합니다. 갈등의 역사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합니다. 지금 머리를 맞대고 규제 혁신과 친환경 전환, 스마트 인프라 확충을 고민해야 합니다. 주저하다가 중국의 저가 철강에 국내 시장을 내줄 수는 없습니다. 포항은 언제나 위기 속에서 길을 찾아왔습니다. 태풍이 와도, 산업구조가 바뀌어도 포항은 스스로 길을 냈습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한 응원이 아닙니다. 노동과 경영, 기업과 지역, 정치와 행정이 함께하는 연대와 협력입니다. 포스코가 흔들리면 포항이 멈춥니다. 포항이 멈추면 대한민국의 심장도 멈춥니다. 포항의 심장은 결코 멈출 수 없습니다.
[박승호 전 포항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