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관세협상 기약 없는 보류에…車·철강 등 수출산업 '멘붕'
관세유예시한까지 협상 재개 안되면 자동차 피해 가장 커 반도체·석유화학도 美 투자압박·공급망 재편 등 감내해야
[뉴스웍스=안광석 기자]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오는 25일로 예정된 한미 고위급 '2+2 통상협의'를 일방적으로 연기하면서 자동차·철강·반도체·석유화학 수출 산업군의 긴장도가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산 제품에 대한 25% 상호관세 유예를 종료하는 8월 1일 전 진행될 마지막 협상이었기 때문이다.
수출의존도가 높아 이번 협상에서 관세 철폐 내지 인하를 기대했던 해당 산업군은 그렇지 않아도 빨간불이 켜진 수출전선에서 자체적으로 대응해야 할 위기에 몰린 만큼, 다음달 1일 전까지 조속히 협상 일정이 잡히기를 바라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24일 미국 스콧 베선트 재무부 장관의 긴급 일정으로 25일 워싱턴D.C.에서 열리기로 예정된 2+2 협상이 취소됐고, 빠른 시일 내 후속 일정을 잡겠다고 공지했다.
이번 협상을 위해 이미 위성락 국가안보실장과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워싱턴을 방문 중인 상태였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출국하려다가 취소했다.
한국 사절단은 이 자리에서 스콧 베센트 재무부 장관 및 제이미슨 그리어 무역대표부(USTR) 대표 등 미국 고위인사들과 ▲관세문제 ▲투자협력 ▲산업협력 ▲경제안보 등의 큰 방향을 조율할 계획이었다. 이 중 한국 정부가 가장 공을 들였던 것은 관세율 인하 및 면제였다. 전날 일본은 750조원 규모 기금 지원 및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 참여라는 대가를 치르기는 했지만, 25% 상호관세를 15%로 낮추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한국과 통상협상은 기약 없이 보류되면서, 25% 상호관세 및 품목별 관세가 다음달 1일 이후 그대로 적용될 최악의 시나리오를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이 경우, 가장 타격이 큰 분야는 자동차다.
상호관세와는 별도이지만, 한국에서 생산해 미국에 수출하는 자동차에는 이미 지난 3월 초부터 25% 품목관세가 적용되고 있다. 지난 3월 대미 자동차 수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10% 넘게 줄었고, 1분기 전체로도 대미 수출은 11.2% 감소했다. 같은 시기 국내 자동차 생산량도 전년 동기 대비 1.1% 줄면서 멕시코에 글로벌 생산 순위 6위 자리를 내줬다.
현대자동차·기아와 같은 완성차 업체들은 그나마 1분기는 관세 적용 전 수출한 물량으로 버텼으나, 재고가 모두 소진되면서 2분기부터는 수익성 악화가 두드러질 전망이다. 더욱 최악인 것은 자동차는 미래성장동력인 전기자동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과 자동차 부품 및 철강 같은 전·후방 산업 품목 관세(25%) 피해도 감내해야 한다는 점이다.
자동차업계 한 관계자는 "현대차·기아를 예로 들면 글로벌 경쟁사인 도요타가 미국 현지 자동차 가격을 인상하고, 이제는 일본 관세 15% 인하로 판매 경쟁에 더 불리해졌음에도 현지 가격 동결 정책을 고수 중"이라며 "이대로 통상협의 없이 다음달 1일을 맞게 되면 3분기 수익성 악화는 물론 대대적인 현지 전략 수정도 불가피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지난 6월 초부터 기존 25%에서 50% 품목 관세가 적용된 철강업종 피해도 더 심각해진다.
25% 관세만 적용된 올해 상반기 한국의 철강 수출만 해도 전년 동기 대비 5.9% 줄었다. 특히 지난 5월 대미 철강 수출액은 3억2700만달러로 전년 대비 16.3% 감소했다. 대미 수출 감소는 국내 철강사들의 전반적인 생산량 감소로 이어졌다. 올해 한국의 조강 생산량은 전년 대비 4.9% 줄었다.
현재는 미국 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관세 부담분을 자체적으로 흡수하거나 단가를 낮추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이는 곧 마진 감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철강산업은 중국발 공급과잉 및 전방산업인 건설업 침체에 따른 수요 둔화를 감내하고 있는 상태다. 포스코나 현대제철 등 주요 철강사들은 미국 현지 투자라는 1회성 손실 이벤트를 기획한 동시에 위기 극복을 위한 생산라인 축소 등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또 다른 수출효자 산업군인 반도체나 석유화학은 현재는 미국으로부터 품목관세 적용을 받지 않지만, 공급망 재편 및 투자 압박이 심해질 것인 만큼 안심하고 있을 수 없다. 반도체만 해도 미국 첨단 산업 육성 정책의 핵심인지라 트럼프 행정부는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등이 현지에 대규모로 투자해야 한다는 눈치를 주고 있다.
이미 저유가와 중국발 공급 과잉으로 어려움을 겪는 석유화학 산업은 미국산 석유화학 제품 유입 압박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 석화업계 한 관계자는 "결과는 봐야겠지만, 다음달 1일 전 협상이 재개돼 일본에 버금가는 결과를 얻으면 현재의 경쟁 심화 국면은 지속돼도 추가적인 가격 경쟁력 약화는 막을 수 있을 것"이라며 "그러나 협상이 이뤄지지 않으면 국내 석유화학 기업 실적 부진은 더 심화되고, 현재까지는 가시화되지 않은 대대적인 인적 구조조정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