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품 대신 인증 부품 수리?"…車보험 약관 개정 '논란'

내달 16일부터 자동차보험 수리비 산정 기준 변경 금감원 "보험료 절감" vs 소비자 "선택권 제한" 대립

2025-07-29     정현준 기자
서울 시내 한 1급 공업사에서 수리를 기다리고 있는 제네시스 'EQ900'. (사진=정현준 기자)

[뉴스웍스=정현준 기자] 다음 달 중순부터 자동차 수리 시 정품 부품 대신 '품질인증부품'을 우선 적용하는 자동차보험 표준약관 개정안이 시행된다. 개정안에 따라 앞으로 사고나 고장으로 보험 수리를 진행할 경우, 대체 부품이 존재하면 해당 부품의 가격을 기준으로 보험금이 산정될 예정이다. 

29일 금융당국과 보험업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자동차보험 표준약관을 개정해 보험 수리 시 품질인증부품을 적극 활용하도록 했다. 이 개정안은 8월 16일부터 갱신 또는 신규 가입하는 보험계약부터 적용된다.

보험연구원의 충돌시험 시 손상 부품 및 부품비 비교 결과표. (출처= 보험개발원)

핵심 내용은 기존 정품 중심 수리 방식에서 벗어나, 국토부 인증기관이 성능과 품질을 인정한 '품질인증부품'을 우선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다. 주로 외장재와 소모품에 해당하는 인증 부품은 정품 대비 평균 35~40% 더 저렴하다.

소비자가 정품 사용을 원할 때는 인증 부품과의 차액을 본인이 부담해야 하며, 보험사는 수리비가 더 저렴한 쪽을 기준으로 보험금을 산정하게 된다. 이에 따라 소비자의 선택권이 제한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번 개정은 지난해 2월 자동차관리법 개정의 후속 조치다. 기존에는 인증 부품을 사용하면 순정 부품 가격의 25%를 돌려주는 환급 특약이 있었지만, 이번 개정으로 해당 특약은 폐지된다.

금융감독원은 정품 위주의 고비용 수리 관행을 개선하고 보험 손해율을 줄여 보험료 인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2023년 대물배상 수리비는 약 4조3000억원에 달하는데, 이 중 부품비가 약 48%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험개발원은 부품비 상승 원인으로 ▲차량 고급화·대형화 ▲부품 모듈화 ▲재고 부족 등을 꼽았다. 예를 들어, 외산차의 경우 라이트 커버 손상 시 단순 수리비는 약 20만원 수준이지만, 모듈 단위로 전체 교체하면 약 180만원으로 9배가량 더 비싸진다. 또 부품 재고가 부족할 경우 수리 기간이 길어지며, 이는 부품비 증가뿐 아니라 차량 렌트비 상승에 따른 보험금 지급 확대 요인으로도 작용할 수 있다.

보험업계는 특히 자동차보험 손해율 상승의 주요 원인이 대인배상보다 대물배상·자기차량손해 담보에서 비롯된다고 분석하고 있다. 

2006년 이후 자동차보험 담보별 사고 건당 손해액 전년 동기 대비 증가율. (출처=보험연구원)

보험연구원이 지난해 10월 발간된 '자동차 부품비 증가의 영향과 개선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대인배상 손해율은 2019년 4분기 104.1%에서 2023년 1분기 67.8%로 하락한 뒤, 같은 해 4분기에는 76.3%로 소폭 상승하는 데 그쳤다. 반면, 수리비와 직접적으로 연동되는 대물배상과 자기차량손해 손해율은 2019년 4분기 각각 86.3%와 87.2%에서 2023년 1분기 75.8%와 74.6%로 낮아졌다가, 2023년 4분기에는 각각 85.1%, 85.5%로 상승했다.

이런 가운데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인증 부품의 품질과 안전성에 대한 불신이 여전하다. 지난 2015년 소비자의 부품비용 절감 및 부품산업 발전의 정책 일환으로 품질인증부품제도가 시행됐지만, 실제 인증 부품 사용률은 2023년 기준 국내에서 0.5%에 불과하다. 반면 미국과 유럽에서는 30% 수준이다.

지난 18일 행정안전부 온라인 청원 시스템 '청원24' 게시판에 '금융감독원의 품질인증부품 강제 도입을 반대한다'는 내용의 게시글이 올라왔다. (출처=청원24)

행정안전부 '청원24' 사이트 게시판에는 '자동차보험 표준약관 변경 철회해 주세요', '금감원의 품질인증부품 강제 도입 반대합니다 소비자의 선택권을 지켜주세요'라는 제목의 국민 청원이 올라와 현재까지 2만명 이상이 동의했다.

이들은 ▲소비자 선택권 침해 ▲실제 안전성과 품질 불확실성 ▲자동차 가치 하락 및 중고차 거래 불이익 ▲수리업계 혼란 등을 지적했다. 

한 청원인은 "보험료 인하나 수리비 절감은 중요하지만, 그 전제는 소비자의 안전과 권리를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이뤄져야 한다"며 "정부와 금융감독원은 소비자와 정비업계, 제조사 등의 충분한 의견을 수렴한 뒤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자동차 관련 커뮤니티와 유튜브 등에서도 인증 부품은 정밀도와 내구성에서 정품과 차이가 있다는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특히 수입차나 고성능차의 경우, 인증 부품 사용이 승차감·조향 능력·소음 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정비업계도 신중한 입장이다. 정비업체 한 관계자는 "겉모습은 같아도 정품과 성능 차이로 소음이나 누유 등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소비자와 정비소 간 분쟁의 소지가 크다"고 우려했다.

또 다른 문제는 신차를 구매한 지 얼마 되지 않았거나 교통사고 피해자인 경우에도 인증 부품 사용이 강제된다는 점이다. 해당 부품 사용 시 공식 서비스센터에서 보증수리를 거부할 수 있다는 점도 우려스러운 점이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중국산 부품이 인증 부품으로 유통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소비자 불신을 키운다. 일부 유튜버들은 "인증받은 저품질 중국산 부품이 수리에 사용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자동차부품협회(KAPA) 측은 "인증부품 가운데 중국산 비중은 1%도 되지 않는다. 수입차에 들어가는 유리의 경우, 글로벌 시장 점유율 1, 2위를 차지한 제조사가 중국과 홍콩 업체이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사용되는 경우가 있다"며 "국산 부품은 국산차 외에는 인증받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보험개발원이 지난 6월 실시한 저속충돌사고에서의 손상성 비교 결과. (출처=보험개발원)

보험개발원은 지난 6월 실시한 충돌 시험 결과, 인증 부품과 정품 간 안전성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고 발표했다. 정면충돌 테스트에서 탑승자 상해 정도는 양 부품 모두 유사한 수준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선진국과 비교하면 제도 설계에는 차이가 있다. 한국은 보험 약관을 통해 인증 부품 사용을 사실상 강제하고 있지만, 미국과 유럽은 소비자의 자율적 선택을 전제로 한다. 미국 일부 주에서는 비 OEM 부품 사용 시 소비자 사전 동의를 필수로 요구하며, 유럽연합(EU)도 지난해 말부터 '수리 조항'을 도입해 자유로운 부품 선택권을 보장했다.

김상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국회 기자회견에서 이번 개정안이 "소비자 권리를 침해하고 산업의 공정성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며 시행 유예와 전면 재검토를 촉구했다.

김 의원은 기존 '환급 제도'를 폐지하고 가장 저렴한 부품 기준으로 보험금을 산정하도록 한 개정안은, 소비자에게 부당한 비용 전가를 초래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또 품질인증부품이 한국자동차부품협회(KAPA)의 인증을 받은 제품으로 한정되면서, 인증 권한이 특정 민간단체에 과도하게 집중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KAPA는 인증기관이자 동시에 부품 제조·유통업계와 밀접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어 인증의 공정성과 객관성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약관 개정의 배경으로 경미한 흠집이나 긁힘에도 제조사 공식 서비스센터에서 향후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수백만원 상당의 부품 교체를 권유하는 사례가 빈번해지면서 자동차보험 손해율이 악화한 점을 지적했다.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엔진·변속기·스티어링·서스펜션 등 안전과 직결된 핵심 부품은 정품 사용이 바람직하다. 내장재·프레임 등 안전에 직접 영향이 작은 부품부터 인증 부품을 적용하고, 문제 발생 여부를 보며 점진적으로 확대하는 방식이 합리적"이라며 "인증 부품 사용 시 보험료를 10% 낮추고, 정품 사용 시 20% 인상하는 이원화 구조로 소비자 선택권을 보장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어 "인증 부품으로 인한 2차 사고 시 제조사의 책임 문제가 제기될 우려가 있다"며 "펀드를 조성해 부품협회가 일정 부분 책임을 분담하는 구조도 상생 해법이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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