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차 전환도, 신차 계획도 없다…한국지엠 고용보장 어떻게 믿나"
[뉴스웍스가 만난 사람] 안규백 금속노조 한국지엠 지부장
[뉴스웍스=정현준 기자] "회사는 철수 계획이 없다고 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장기 생산 계획이나 신차 배정안은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국내 완성차 업체 중 유일하게 미래차 전환 계획조차 없는 상황에서, 최소한 내연기관 신차라도 배정돼야 안심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런 계획조차 부재한 상황에서는 사측의 고용 보장을 신뢰하기 어렵습니다."
'한국지엠 철수설'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미국의 '상호 관세' 조치가 우리 시간으로 지난 7일 오후 1시부터 시행되면서 15% 관세가 한국산 자동차의 대미 수출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지엠은 지난 5월 직영 서비스센터 9곳과 인천 부평공장 유휴 부지 일부 매각 계획을 발표했다. 명분은 '관세 대응'이지만, 업계 안팎에서는 이를 구조조정의 신호탄으로 보고 있다.
국내 완성차 업체 중 현대차그룹에 이어 미국 수출 비중이 큰 한국지엠은 그간 여러 차례 철수설에 휩싸였다.
회사는 철수 가능성을 부인하고 있지만, 노조의 반발은 거세다. 특히 직영 서비스센터 직원들은 매각 방침에 반발해 방문 고객을 상대로 호소문과 함께 서명 운동에 나선 상태다. 현재 부평공장은 하계휴가 이후 설비 공사로 2주간 휴업 중이며, 재가동과 함께 노사 협상도 본격화할 예정이다.
한국지엠의 내수 실적은 아쉬운 상황이다. 업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한국지엠의 총판매량 24만9355대 중 내수는 8121대(3.3%)에 그쳤으며, 나머지는 전량 수출됐다. 특히 미국 수출은 전체 생산량의 90%를 차지한다.
여기에 현대차가 지난 7일 미국 제너럴모터스(GM)와 차량 5종을 공동 개발해 2028년부터 현지 출시하겠다고 발표하면서, GM이 한국 시장을 점차 축소하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한편으로는 한국지엠이 최근 정전 사고를 겪었던 창원공장에 수십억원 규모의 예비전력 설비를 마련하는 등 생산 안정화에 나서고 있는 점을 들어, 국내 철수 가능성이 오히려 낮아진 것 아니냐는 상반된 시각도 나온다.
한국지엠 경영진은 올해 현장 방문을 통해 한국 내 사업에 대한 의지를 강조하기도 했다. 지난 2월 헥터 비자레알 한국지엠 사장이 '먼슬리 커넥트(Monthly Connect)' 프로그램의 하나로 서울 마포구 쉐보레 신촌 대리점을 방문해 카 매니저들을 격려하고 판매 향상 방안을 논의한 바 있다.
'철수냐 존속이냐'를 두고 업계 안팎의 관심이 집중되는 가운데, 안규백 금속노조 한국지엠 지부장을 만나 현장의 목소리를 들었다.
-직영서비스센터·부평공장 유휴부지 매각을 철수 신호탄으로 봐야 하나.
"지금 당장 철수라고 단정하긴 어렵다. 회사도 철수는 아니라는 입장을 반복적으로 밝히고 있고, 2018년 산업은행과 체결한 10년짜리 투자 계약도 종료 시점인 2028년까지 유효하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그 계약의 구체적인 내용이 지금까지 공개된 적이 없다는 점이다. 노조는 매번 교섭 때마다 정보 공개를 요구하고 있지만, 회사는 한미 양국 간 비밀유지협약 등을 이유로 공개하지 않다 보니 불안과 의혹이 커지고 있다.
부평공장 유휴 부지 매각은 용도 변경 문제나 인수 희망자의 부재 등 현실적으로 성사 가능성이 작다. 데이터센터 같은 대체 활용안도 인근 아파트 단지와의 환경 이슈로 쉽지 않아 보이며, 사측도 '수년이 걸릴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럼에도 실현 가능하지 않은 계획을 올해 임금협상 직전에 발표한 건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직영 서비스센터 매각 방침은 회사가 강한 의지를 보이는 것으로 안다. 하지만 직영 애프터서비스(AS)를 중단하겠다는 건 한국 시장을 사실상 포기하겠다는 신호로 읽힐 수밖에 없다. 한국 소비자 입장에서 직영 AS를 운영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어떤 신뢰를 할 수 있겠나. 이를 외주 정비로 대체하겠다는 건 리콜이나 보증 수리 같은 제조사의 책임을 외면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이는 소비자 신뢰를 무너뜨리는 무책임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회사가 정말 철수 의사가 없다면 그 의지를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직영서비스센터 빈자리를 협력 정비소가 현실적으로 메울 수 있나.
"전혀 가능하지 않다. 해당 방침 발표 직후 산업통상자원부 자동차과장에게도 말했지만, 이 문제는 단순히 한국지엠만의 이슈로 끝날 사안이 아니다. 현대차와 기아도 직영 서비스를 운영하면서 수익을 내는 구조는 아닌 가운데, 회사가 손실을 이유로 직영 서비스를 포기한다면 이는 향후 다른 글로벌 자본에도 '돈이 안 되면 직영 서비스는 접어도 된다'는 신호가 될 수 있다. 회사는 전국에 380여 개 협력 정비소가 있으니 서비스 품질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현실을 모르고 하는 이야기다.
지금도 협력 정비소에서 처리할 수 없는 복잡한 수리 건은 결국 직영 서비스센터로 넘어온다. 협력 정비소는 외주 개념이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수익이 나는 수리 위주로 운영될 수밖에 없고, 결국 소비자들이 기대하는 제조사 수준의 서비스는 받을 수 없게 된다. 이렇게 되면 리콜 등 법적으로 제조사가 책임져야 할 부분도 외주 네트워크에 떠넘기는 구조가 될 수 있다."
-거듭된 철수설 부인에도 조합원들이 불안한 이유는 무엇인가.
"현재 직영서비스센터에는 400여 명이 근무 중인데, 회사는 이들을 제조공정으로 전환 배치하겠다고 밝히며 고용 보장을 주장하고 있다. 직영 직원들을 포함해 조합원들이 불안해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과거에는 차량 단종 시기와 후속 차종, 향후 5~10년간의 공장 운영 계획 등 중장기 로드맵이 있었기에 조합원들도 '이 공장에서 계속 일할 수 있겠다'는 신뢰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트레일블레이저, 트랙스 크로스오버를 비롯해 수출 모델인 엠비스타, 뷰익, 앙코르 GX 등 생산 중인 모델의 후속 차종이 전혀 배정되지 않은 상태다. 그러다 보니 조합원들은 2018년 군산공장 철수의 아픈 기억을 떠올리며, 회사가 계약 기간이 끝나는 2028년쯤 철수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하고 있는 것이다.
회사는 철수 계획이 없다고 하지만, 정작 이를 뒷받침할 만한 장기 생산계획이나 신차 배정안은 제시하지 않고 있다. 국내 완성차 업체 중 유일하게 미래차 전환 계획조차 없는 것도 불안을 키우는 요소다. 물론 지금 전기차 시장이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기)에 접어들고, 미국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영향으로 내연기관 차량의 수명이 연장될 조짐이 있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내연기관 기반 신차라도 배정해 줘야 조합원들이 안심할 수 있지 않겠나. 그런 계획조차 없는 상황에서는 사측의 고용 보장을 믿기 어렵다."
-현직자가 볼 때 한국지엠은 GM에 어떤 의미를 가지나.
"GM의 한국 진출 23년 동안 한국지엠은 사실상 GM의 '현금자동입출금기(ATM)'였다고 본다. 특히 GM이 어려웠던 시기에 한국지엠이 없었으면 지금의 GM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 생각한다. 대표적으로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때 당시 GM은 부도 직전까지 갔고, 일시적으로 국유화 직전 상황까지 몰렸다. 그 과정에서 한국지엠은 혁혁한 공을 세웠다. 2008년 국세청 정기 세무조사에서 완성차 이전가격, 즉 수출 시 제값을 받고 있는지 여부가 지적돼 수백억원대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이후에도 본사가 이익을 가져가는 구조 속에서 한국지엠은 손실을 떠안는 상황이 반복됐다.
즉, 회사 구조상 충분히 이익을 낼 수 있음에도 얼마든지 손실을 내는 회사로 만들 수 있고, 반대로 손실을 내는 회사도 이익을 내는 회사로 전환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한국지엠의 생산성은 절대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적은 인원으로 높은 노동 강도를 감내하며 양질의 차량을 생산하는 게 강점이다. 실제로 미국 공장을 방문해 비교해 보면, '편성 효율(부하율)'이 부평은 80% 후반, 창원은 90% 초반대를 유지한다. 측정 방식 차이는 있겠지만, 이를 현대차와 비교하면 우리가 두세 배 가까운 작업량을 소화하고 있다고 본다."
-대법 판결로 해고가 확정될 때, 심경은 어땠나.
"지난 2월 대법원이 심리불속행 기각 결정을 내렸는데, 어느 정도 예견된 결과였다. 아쉬운 점은 사법적 판단이 재판부 성향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중노위와 1심에서는 승소했지만, 고등법원에서 판결이 뒤집혔고, 대법원은 심리조차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2020년 당시로 돌아간다 해도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당시 회사는 부평2공장이 2년 뒤 생산을 중단할 예정인 상황에서, 추가 인력 투입 없이 생산량만 늘리자고 요구했다. 조합원들에게 그 요청을 설명하려면 회사가 2년 후에도 공장이 지속될 것이라는 미래 비전을 제시해야 했다. 사측은 '공장이 안정적으로 운영될 것이라는 약속만 해달라, 그러면 비판을 감수하더라도 동의하겠다'고 말했지만, 회사는 끝내 그 약속하지 않았다. 그래서 동의할 수 없었고, 항의 과정에서 작업을 중단한 책임으로 해고된 것이다.
이 사건은 지부장이 되기 전 일이긴 하지만, 조합원들 입장에서는 불안 요소였을 것으로 생각한다. 회사도 법적 지위를 인정해 현재 교섭 대표로서 단체교섭을 진행하고 있다. 결국 관건은 복직 여부로 회사가 처음 했던 약속을 끝까지 지킬지는 임기 종료 시점이 되어봐야 알 것 같다."
-임금 교섭이 난항을 겪고 있다. 노사 간 입장 차가 좁혀지지 않는 이유는.
"2025년 임금 교섭은 2024년 성과를 기준으로 그에 대한 정당한 분배를 논의하는 자리다. 관세 문제는 예기치 못한 외부 변수일 뿐이며, 지난해 회사는 당기순이익 2조2000억원, 영업이익 1조3500억원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냈다. 이 성과에 조합원들이 크게 기여했다는 점은 회사도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회사는 기본급 6만300원과 전년도 수준의 성과급만을 제시하고 있는데, 노조는 최소한 작년보다 나은 수준의 보상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기본급 14만원 인상이 과도한 요구라는 얘기도 있지만, 요구는 어디까지나 요구인 것이다. 관세 국면이라고 해서 노조가 스스로 임금 동결을 선언할 수는 없지 않은가."
-2028년 계약 종료를 앞두고 철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어떻게 전망하나.
"회사가 부평 2공장을 방치하고 있는 것은 여전히 의심스럽다. 지난해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 차량 생산 확정이 성사되기 직전에 무산됐던 점도 GM이 그동안 세계 각국에서 벌여왔던 일관된 행태하고 맞물려 있다고 본다. 결국에는 2027년 말이나 2028년쯤 되면 GM이 다시 산업은행에 손을 벌릴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이렇게 하겠다, 그러니 정부도 투자해 달라며 또다시 지원을 요구할 거고 만약 거절하면 '그렇다면 우리는 한국을 떠날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압박할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대비해야 한다. 설령 지원이 필요하더라도, 그 지원이 어떤 조건과 방향을 가져야 하는지 명확해야 한다. 자동차 산업은 단순히 한 기업이나 노조만의 문제가 아니며, 전방위적으로 미치는 영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회사 조합원만 해도 창원공장 포함 약 7000명, 한국지엠테크니컬센터코리아(TCK)까지 포함하면 1만여 명에 달한다. 더 중요한 건 1·2차 협력업체까지 포함하면 20만개 이상의 일자리가 이 사안에 걸려 있다는 점이다."
-정부와 산업은행의 역할과 책임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과거 한국지엠에 대한 투자가 잘못됐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과거처럼 '묻지마 투자' 방식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8090억원이라는 회수할 수 없는 막대한 공적 자금이 투입됐지만, 비정규직 해고는 방치됐고 자동차·부품 연구개발(R&D) 부문은 GM TCK라는 별도 법인으로 분리되는 것을 정부가 모두 승인해 줬다. 결국 이에 따라 딱 '10년만 운영하겠다'고 만든 셈이 됐다.
문제는 10년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청사진이 없었다는 점이다. 한국의 자동차 산업과 지역 경제에 어떤 선순환 효과를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함께 제시돼야 하는데 당시 결정 과정에서도 노조의 의견은 거의 반영되지 않고 묵살됐다. 물론 노조가 항상 정답은 아니다. 우리도 부족한 부분이 있고, 모든 주장이 옳은 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그 안에도 충분히 반영할 가치가 있는 목소리들이 있었고, 앞으로는 이런 부분들이 더 전방위적으로 논의되고 준비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난 6월 국회 기자회견을 했는데, 정치권의 반응이 궁금하다.
"현재 각 국회 상임위 소속 의원들과 보좌진들이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있고, 저희도 사회연대실 대외정책부를 중심으로 이들과 긴밀한 네트워크를 구축해 소통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아직 회사가 이번 사안을 일방적으로 강행한 것은 아니고 오히려 노조와 협의를 하자며 제안해 오는 상황이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관망에 가까운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사태가 본격화하기 전에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악의 경우 GM이 한국을 떠날 것을 대비해 독자 생존을 위한 플랜B가 마련돼 있어야 한다. 최선의 시나리오부터 차선, 마지노선까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2028년을 타깃으로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이미 2018년에도 GM이 갑작스럽게 철수를 선언했고, 단 3개월 만에 정부에 2조 규모의 지원을 요청했던 전례가 있다. 따라서 정부와 산업은행도 지금부터 분명한 원칙과 기준을 세워서 무조건적인 '퍼주기식 지원'이 반복돼선 안 된다. 문제는 담당 공무원들이 수시로 교체되고, 정권도 5년마다 바뀌기 때문에 책임을 서로 미루는 '폭탄 돌리기' 식 대응이 반복될 수 있다는 점이다."
-오는 18일 노사협상에서 요구할 핵심 사안은 무엇인가.
"회사가 협의에 응하겠다는 입장을 보이는 만큼, 저희도 답을 미리 정해놓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이자는 생각은 없다. 관세 대응이라는 명분에는 동의하지만, 그에 따른 조치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는 노사가 치열하게 협의해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앞서 발표된 두 가지 조치(부평공장 부지 매각·직영 서비스센터 폐지)에 대해 사측이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는 명확한 메시지를 내야만 이번 임금 협상이 마무리될 수 있다는 점을 계속 강조하고 있다.
합법적인 쟁의권을 확보한 이유는 노조가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협상 과정에서 노사가 서로 한 발씩 양보하고, 필요한 부분은 설득하며 최대한 원만한 타결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다만 협상이 결렬된다면, 쟁의행위 역시 헌법이 보장한 정당한 권리로서 준비할 수밖에 없다. 단, 파업이 목적은 아니며, 필요한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조합원들과 협력사 관계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많은 분이 불안해하실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직 구체적으로 현실화한 것은 없으며, 언론 보도 등에 지나치게 흔들릴 필요는 없다고 본다. 물론 그런 반응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지만, 노조가 있는 사업장인 만큼 조합을 중심으로 힘을 모아주셨으면 좋겠다. 저희도 그 힘을 바탕으로 이번 사안을 조기에 잘 마무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이 사안은 우리 조합원들뿐 아니라 관련된 협력사와 공급망 전반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대응해 나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