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푸틴 정상회담, 소문난 잔치 먹을 건 없었다…우크라이나 전쟁 '빈손'
[뉴스웍스=박명수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만난 미·러 정상회담은 아무런 결론도 내리지 못한 채 양측의 입장만 확인한 '소문난 잔치'가 되고 말았다.
15일(현지시간) 미국 알래스카주 앵커리지의 엘먼도프 리처드슨 합동기지에서 트럼프와 푸틴의 미·러 정상회담이 개최된 가운데 양측은 우크라이나 전쟁 휴전과 관련해 어떠한 결론도 내놓지 못했다. 트럼프는 푸틴은 다음 만남을 언급하며 협상이 장기전으로 갈 것이라 암시했다.
트럼프는 푸틴과 회담을 마친 뒤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는 매우 건설적인 대화를 나눴고 여러 사항에서 합의를 보며 진전을 이뤘다"며 "다만 (최종)합의하기 전까지는 합의한 게 아니다"라고 회담을 통한 양측의 구체적 결론 사항을 공개하지 않았다.
이어 "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과 통화할 것이고, 내가 원하는 이들과도 통화할 것"이라며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가장 먼저 전화해 회담의 내용을 설명해주겠다"고 언급했다.
트럼프는 기자회견에서 합의 내용은 일절 언급하지 않았지만 최대 쟁점은 어느 정도 일치했다고 강조했다. 러시아가 줄곧 요구해왔던 우크라이나 영토의 러시아 합병안에 결론을 내린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합의하지 못한 게 아주 적게 남아 있고 일부는 크게 중요하지 않은 문제"라며 "가장 중요한 하나는 합의에 도달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밝혔다.
앞서 미국 주요 매체는 백악관이 러시아가 원하는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 전체를 넘기면서 지난 2014년 강제 병합한 크림반도 역시 러시아 소유로 공식 인정하는 합의안에 대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유럽 회원국들에게 타진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는 푸틴과의 악연도 이날 회담으로 모두 해소됐다면서 양국의 우호 관계가 증진될 것이라 자신했다. 그는 "오랫동안 푸틴 대통령, 블라디미르와 환상적인 관계를 가졌지만 '러시아 사기'(Russia hoax) 때문에 푸틴 대통령과의 관계가 훼손됐다"고 지난 트럼프 1기 때 양국의 외교 마찰을 들춰냈다.
이어 "나와 푸틴이 사기라는 것을 알았고, 이건 우리가 하려는 모든 것들을 어렵게 했다"며 "이제는 이 문제를 해결하고 더 좋은 기회를 얻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트럼프는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자신의 당선을 돕기 위해 러시아가 선거에 깊숙이 개입했다는 '러시아 게이트'가 대선 쟁점으로 부상한 바 있다. 트럼프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조작이라며 이를 '러시아 사기'라 명명했다.
이밖에 트럼프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많은 이가 죽는 것을 이제는 끝내야 하고, 푸틴도 나 못지않게 그것을 원한다"며 "푸틴과 계속 대화할 것이고, 조만간 푸틴을 다시 보게 될 것"이라며 러시아가 제안한 양국 2차 정상회담에 기꺼이 응할 것이라 전했다.
러시아 타스통신은 이번 알래스카 정상회담 이후에 트럼프를 러시아에 초대할 것이라며 초청장을 이미 발송했다고 언급했다. 시기는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았으나 연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푸틴도 트럼프와 마찬가지로 비슷한 소감과 원론적 입장을 밝혔다. 푸틴은 "우리 협상은 상호 존중의 건설적인 분위기에서 진행된 매우 유익한 협상"이라며 "우리는 분쟁의 근본적인 원인을 제거해야만 해결이 지속 가능하고 장기적일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크라이나의 안보가 보장돼야 한다는 점을 동의하고 우리는 이에 협력할 준비가 됐다"며 "함께 달성한 합의가 이 목표에 한 걸음 다가설 수 있도록 우크라이나의 평화로 향하는 길을 열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는 키이우(우크라이나 수도)와 유럽의 수도들이 이를 건설적으로 받아들이고 방해물을 던지지 않을 것"이라며 "특히 뒷거래를 통한 금지 조치를 취해 초기 진전을 방해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을 것임을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푸틴은 미국과의 경제협력을 크게 기대했다. 이번 전쟁 휴전과 관련한 미국의 경제적 지원을 협상 지렛대로 삼고 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그는 "미국과 러시아의 비즈니스 협력은 엄청난 잠재력을 가질 것"이라며 "양국은 무역, 디지털, 첨단기술, 우주 탐사 분야에서 서로에게 많은 것을 제공할 것이고, 북극 협력도 충분히 가능하다. 러시아의 극동 지역과 미국 서부 해안 사이의 관계는 양국이 새로운 장을 열고 협력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양측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회담에 대한 입장 발표 이후 아무런 질문을 받지 않았다. 합의사항에 대한 아무런 언급도 없이 서로가 긍정적 대화를 나눴다는 발언은 총 12분에 불과했다. 기자회견에서 보통 1시간 이상 발언했던 트럼프는 기자회견장 퇴장에 바쁜 모습이었다. 연설을 끝낸 뒤 트럼프는 푸틴에게 다가가 악수를 했고, 악수를 마친 뒤 푸틴의 등을 툭 두드리고 나란히 퇴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