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노트] 고질적 중대재해 원인, 왜 건설사에서만 찾나

2025-08-26     안광석 기자

[뉴스웍스=안광석 기자] 사망사고 등 중대재해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산업 현장은 단연 건설이다. 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산업재해에 따른 사망자 수는 287명(잠정치)인데, 건설업에서만 이중 절반가량인 138명이 나왔다.

최근 모 건설사에서는 더 이상 사고 치지 말라는 대통령의 호통소리가 잦아들지도 않은 다음날, 또 근로자가 사망해 곤욕을 치르고 있다. 해당 건설사도 10대 건설사 중 한 곳인데 아무렴 과거 숱한 경쟁사들 사건·사고 사례를 반면교사 삼을 생각을 못했겠는가.

당연한 얘기지만 건설사들의 안전불감증이 타 산업군 대비 높은 게 아니다. 고층공사나 중장비 운반과 같은 위험작업은 업종 특성상 AI가 대체할 수 없다. 이에 각 건설사는 수십년 전부터 나름대로 매뉴얼을 만들어 안전사고에 대비해 왔다. 또한 타업종에는 없는 산업안전보건관리비 의무 계상까지 부여되기에 안전에 신경을 안 쓸 수가 없는 구조다.

그럼에도 중대재해를 야기한 건설사들에 대한 중징계가 불가피하다는 이재명 정부의 기조 자체는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잇따른 중대재해의 원인을 건설사들에서만 찾으려고 하는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첫 번째 문제는 국내 숙련공이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가끔 건설 현장을 찾아가 보면 대부분의 근로자들이 고령층 아니면 외국인들로 구성돼 있다. 저출산도 저출산이지만 젊은층, 소위 ‘MZ세대'들이 건설업을 기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건설은 열악한 근로 환경과 낮은 사회적 인식, 불안정한 고용 형태로 일자리의 질과 워라밸을 중시하는 MZ세대의 외면을 받아왔다.

건설업 취업자 수는 지난 2023년 4분기부터 6분기 연속 줄어들었고, 올해 상반기 기준으로는 5년 만에 200만명선이 붕괴됐다. 건설업 현장 평균 연령은 지난 2024년 기준 53세로, 40세 이상 근로자가 전체의 80%를 차지한다.

젊은이들이 떠난 자리는 체력이 달리는 고령층과, 말이 안 통하는 것은 물론 전문성도 부족한 외국인들로 채워지니 사고가 안 나는 게 더 이상할 지경이다.

이보다 더 심각한 건설현장 안전사고 원인은 국내에 뿌리박은 하도급 관행이다.

통상 건설사를 비롯한 산업계는 넓은 현장을 원청이 다 관리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공공연하게 하도급 업체를 활용한다. 원청으로부터 받은 공사비가 하도급과 재하도급을 거치면서 중간 이윤으로 계속 빠져나가는데, 실제 시공을 담당하는 최하위 하청업체에 할당되는 공사비는 매우 적다.

최하위 하청업체들은 이를 충당하기 위해 부득이 싼 자재를 쓰거나 안전비용을 줄이고, 무리하게 공기를 단축하려 한다. 그러다 보니 원청이 아무리 신경 쓴다 외치더라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안전사고는 관성적으로 이어진다. 90년대 삼풍백화점 및 성수대교, 2020년대 광주 아파트 및 인천 검단 지하주차장 붕괴사고 주 원인도 재하청 문제였다.

이같은 구조적 문제들은 중대재해처벌법 등으로 전체적인 산업현장 사망사고가 줄어드는 가운데서도, 외국인 및 중소하청 노동자 사망은 늘어나는 결과를 초래했다.

최근 5년간 국내 산업현장에서 산업재해로 사망한 외국인 노동자는 453명에 달한다. 이는 내국인 대비 7배 높은 사망률이다. 50인 미만 사업장 사망자 수는 올해 상반기 기준 176명으로 오히려 전년 동기보다 13.5% 증가했다.

최근 잇따른 중대재해로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실명까지 거론한 건설사 소속 사망 근로자들도 하청 소속 혹은 외국인이었다.

산업재해의 원인이 건설사 때문이 아닌 구조적 문제라는 점을 인식하고 나면 방향성은 명확해진다. 정부와 발주처가 적정 공사비를 보장하고, 하도급 과정에서 비용이 부당하게 삭감되지 않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하청업체가 안전관리에 충분한 예산을 투입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계약 과정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고, 재하도급에 대한 명확한 기준과 제재를 마련해 다단계 하도급으로 인한 '위험의 외주화'를 막을 필요가 있다. 애매한 책임 소재 명시로 '솜방망이'라는 비아냥을 받는 중대재해처벌법도 적용 대상을 사실상 지배·운영·관리하는 사업장으로 명확히 해야 한다.

외국인 근로자들에 대한 언어 및 문화 교육은 기본이고, 정부의 현장 감독도 형식적인 서류 점검 말고 전문성을 강화해야 한다. 공공 건설 사업 입찰 시 기업 중대재해 발생 건수나 안전 관리 투자 실적을 주요 평가 항목으로 반영해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안전관리에 투자하도록 유도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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