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3차 상법 개정안' 9월 국회 처리 가닥…재계 '자사주 소각 의무화' 반발
[뉴스웍스=채윤정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핵심 내용으로 하는 3차 상법 개정안 공론화 작업에 착수, 9월 정기국회에서 이를 처리한다는 계획이다. 재계는 해당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들이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는 수단이 줄어드는 것은 물론, 기업 안정성·유연성을 위한 경영 판단이 위축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민주당 코스피 5000 특별위원회는 지난 25일 국회에서 자사주 제도의 합리적 개선 방안 토론회를 열고, 3차 상법 개정안 논의에 착수했다.
특위 위원장인 오기형 의원은 “9월 정기국회에서 전문가들의 말씀을 들으며 법안을 다듬어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를 담은 상법 개정이 마무리됐고, 추가 상법 논의를 시작하는데, 첫 번째가 자사주 문제다. 자사주 소각 등을 상법에서 다룰지 자본시장법에서 할지 정기국회 기간에 조율하고 다듬겠다”라고 밝혔다.
민주당 일부 의원들은 당초 '3년 이내 소각' 방침을 냈지만, 투자자 반발을 의식해 '즉시 소각'으로 방침을 수정했다. 투자자 의견을 수렴해 최종안은 1년 이내 소각으로 좁혀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
민주당은 자사주가 주주 환원이 아닌 지배력 강화 수단으로 악용된다고 보고, 주주 이익을 보호하고, 기업 경영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자사주 소각을 추진하고 있다. 기업이 자사주를 소각하지 않으면, 주식 수는 줄지 않아, 주식 가치에 변화가 발생하지 않고, 기업들이 자사주를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대주주 경영권을 방어하겠다고 우호 세력에게 넘기거나, 임직원 성과급을 주는 기업 현금 창구로 사용하는 사례가 허다하다.
그러나 민주당은 재계 반발을 우려해, 그동안 기업들이 줄기차게 요구해 온 배임죄 완화를 '당근'으로 내놓았다. 이를 통해 합리적인 경영 판단이 결과적으로 손실을 초래하더라도 형사처벌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겠다는 것이다. 다만 배임죄 완화 조치가 디스커버리 제도, 의무 공개매수, 합병 공정가액 산정 강화 등 다른 제도와 함께 추진될 경우 기업 부담은 오히려 늘어날 수 있다.
재계는 배임죄 완화 조치는 환영하지만, 투기 자본 등 외부로부터 경영권이 위협받을 위험이 커진다는 점을 호소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외국과 달리 차등의결권·포이즌필(신주인수선택권)·황금주 등 제도가 없어, 자사주가 기업의 주요한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사용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재계는 국회가 지난 25일 본회의에서 처리한 2차 상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우려하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2차 상법 개정이 지난달 15일에 공포된 1차 상법 개정과 결합하면서 헤지펀드 등 투기 자본에 의한 경영권 위협이 한층 강력해졌다"며 "2차 상법 개정의 핵심인 ‘집중 투표제 의무화’는 자산 2조원 이상 상장 회사 주주총회에서 이사 2명 이상을 선임할 때 1주당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주고 한 명에게 몰아줄 수 있게 한 것이다. 이사 2명을 선출한다면 소액 주주들이 2표씩을 한 사람에게 몰아줘 자신들이 원하는 이사를 뽑을 수 있다"고 의견을 말했다.
또한 2차 상법 개정에 포함된 ‘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도 주목하고 있다. 감사 업무 독립성을 위해 이사와 별도로 선출하는 감사위원을 기존 1명에서 2명으로 늘려 대주주 입김을 줄이는 내용이다. 재계는 이사회 내 3명 이상으로 구성되는 감사위원회에서 과반인 2명이 외부 세력 몫이 되면 기업 기밀 유출 등 경영권을 위협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하고 있다.
반대로 주식을 보유한 주주들은 3차 상법 개정안에 대해 환영하는 분위기다. 우선 자사주 소각으로 유통되는 주식 수가 줄어, 주가 상승으로 이어져 '주주가치 제고 효과'가 크다는 것이다.
이상현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9월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담은 개정안이 정기국회에서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며 "자사주 소각 의무화와 배당소득 분리과세는 자본 총계를 낮출 유인이 있어, 정책적 효과가 발휘된다면 자기자본이익률(ROE) 개선을 기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단기적 불확실성과 변동성은 단점으로 꼽힌다. 기업 입장에서는 자사주 활용이 경영 전략의 일부인 경우가 많아 단기적으로 부담이 되고, 법안 통과 시점에서 시장 변동성이 커질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이미 국회에는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명시한 상법 개정안이 다수 발의돼 있다. 각 법안은 상장사가 자사주를 취득하면 원칙적으로 소각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소각 기간에서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김현정 민주당 의원이 대표로 발의한 법안은 신규 자사주를 취득하면 ‘즉시’ 소각하도록 규정했으나, 김남근·민병덕 의원이 같은 날 각각 발의한 법안은 ‘1년 이내’에 소각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반면 차규근 조국혁신당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6개월 이내’ 소각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이들 법안은 기존에 보유한 자사주도 입법 이후 정해진 기간 내 소각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고 있다.
전문가들은 자사주를 강제 소각하면 다른 경영권 방어 수단을 제공하거나, 강제 소각 의무화보다는 '한도를 두는 것이 낫다'고 조언했다.
박주근 리더스인덱스 대표는 "3차 개정안은 2차 개정안보다 타격이 덜하기는 하지만, 우리나라 대기업들의 경영권 방어 장치는 자사주가 유일하다. 자사주를 강제 소각한다면 경영권 방어로 사용할 수단이 뭐가 있느냐"며 "기업에 대신 포이즌필이나 황금주 등 경영권 방어 수단을 제공해야 한다. 3차 개정안이 통과되면 경영권 방어 장치가 거의 없는 만큼 치명적"이라고 우려했다.
김용진 서강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자사주 소각이 글로벌 표준도 아니고 의무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의무화보다 다른 나라처럼 한도를 두고 사유·기간 등을 규정하는 게 낫다. 다른 나라는 일반적으로 자사주를 10% 한도로 가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기업들이 자사주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아, 자사주를 다 소각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평가했다.
황용식 세종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자사주 소각은 주주가치 제고 측면에서 긍정적인 면이 있지만, 1·2차 상법 개정까지 통과되면서 '기업에 대한 옥죄기'가 시작됐다. 재계는 매우 부담스러워할 수밖에 없다"며 "대외 여건이 어려운 상황에서 상법 개정안을 계속 밀어붙이는 것은 다소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자사주 소각 방침에 대해 세부 사항 등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정다솜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2차 상법 개정까지는 당론으로 이미 의견이 모아진 사항이었다"며 "그러나 3차 상법 개정 및 국정 계획에 담긴 방안은 아직 여당 내에서도 충분한 논의가 진행되지 않았다. 구체적인 사항과 일정에 많은 변동이 있을 것으로 본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는 국내 증시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시장 관심이 제고될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