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들어온 美 알래스카 LNG 압박…강관업계 "기회 아닌 리스크"
트럼프 참여 요구에 업계 난색…"백지 상태서 주가만 올라" 걱정 사업성 검토 선행돼야…참여 시 美정부에 손실보증 등 요구 필요
[뉴스웍스=안광석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근 한국과 미국 간 정상회담을 통해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개발 프로젝트 참여를 강하게 압박하고 있는 가운데, 주식 시장에서 수혜주로 구분되는 강관 등 관련 업계에서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한반도 7배 크기 1300km 동토(凍土)를 개척하는 사업인 만큼, 공사기간 및 자금 불확실성이 높은 데다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지속성도 담보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에 이재명 대통령을 비롯해 한국 정부는 전략적으로 두루뭉술한 입장을 취하면서 관련 업계에서는 섣불리 투자계획도 수립하기 어려운 상황에 주가가 폭등해 추후 거품 논란도 예상된다.
강관업계 고위 관계자는 28일 "(알래스카 LNG 사업) 키를 정부가 쥐고 있어 민간업체서 언급할 단계는 아니나, 참여가 결정된다면 내부적으로는 난개발 및 환경론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글로벌 에너지 기업(엑손모빌)조차 손 뗀 불투명한 사업을 굳이 검토할 가치가 있느냐는 의견이 많다"며 "미국 정부의 정책 영속성과 신뢰도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한미정상회담 이후 회사를 포함한 관련 주가가 폭등하고 있는데, 이같은 이유에서 썩 달갑지는 않다"고 덧붙였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5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개최한 이재명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자리에서 한국이 일본과 함께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에 투자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후 세아제강·하이스틸·넥스틸 같은 강관 관련 주들은 지난 26일 장중 전 거래일 대비 최대 20%까지 오르는 등 상승세를 타고 있다.
대통령실은 해당 투자 참여에 대해 실무적으로 논의되지는 않았으나, 사업 타당성 등을 검토해 협의하겠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올해 초부터 해당 사업에 대한 미국 정부의 압박이 컸다고는 하지만, 현재까지는 일본이나 대만처럼 국가 간 교환하는 명문화된 공식 문서 내지 서류는 없는 상태다.
한국 정부도 그동안 에너지 전문가들이 무수히 비판해 온 알래스카 채산성 문제에 어느 정도 공감해 현지 타당성 조사를 이유로 일종의 ‘시간 끌기’에 돌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가스공사 측도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 관련해 현재까지는 대통령실이나 산업통상자원부 측으로부터 관련 지침을 받은 바 없다는 입장이다.
알래스카 LNG 사업은 알래스카 최북단에서 생산된 LNG를 1300km 떨어진 남쪽 해안으로 운송해 아시아 시장에 판매하는 내용이다. 사업 참여가 확정되면 LNG를 직접 구매해 올 한국가스공사가 주도해야 한다.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에 대한 직접적인 투자 참여는 확정되지 않았어도, 한국가스공사는 오는 2028년부터 10년 동안 미국산 LNG를 대량 도입은 해야 한다. 어디까지나 이는 트럼프 행정부 이전 무역 협의에서 합의된 미국산 에너지 구매 약속을 이행하는 차원이다.
무엇보다 트럼프 행정부가 주장하는 사업 참여는 구매 정도로 그친 과거 계약과는 결이 다르다. 미국 기업들이 과거 실패 사례를 이유로 참여하려 하지 않기에, 자원 채굴부터 운반까지 국내 강관·조선·에너지 기업들이 총동원돼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2023년 말 기준 한국가스공사의 총부채는 46조2942억원에 부채비율은 400%를 넘을 정도로 재무구조가 악화돼 있다. 총 규모 64조원에 달하는 알래스카 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상태는 아니다.
더욱이 강관업계 반응처럼 알래스카는 1년 중 절반이 땅이 얼어 파이프를 설치하기 어렵고, 글로벌 환경보호론자들도 알래스카에서 활발히 활동 중이어서 근로자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전쟁 및 글로벌 지정학적 위기 고조로 유가나 천연가스 가격 동향도 불투명하다. 공기가 길어지는 것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작은 손실도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날 수 있다.
막대한 투자 부담에 엑손모빌과 브리티시 페트롤륨 BP 등의 민간 자본은 지난 2016년 모두 해당 사업에서 철수하고, 현재는 알래스카 주정부 소유 가스라인 개발공사 ADGC만 남았다. 심지어 한국가스공사도 당시 사업 참여를 검토했다가 철회한 바 있다. 더욱이 사업 승인 및 준비 기간을 고려하면 10년 가까이 소요되는데 트럼프 행정부 정책 일관성이 유지될지도 지켜봐야 한다.
에너지 개발 업계 한 관계자는 "미국 압박으로 사업 참여를 피할 수 없게 되면 트럼프 행정부 일자리 창출에 따라 현지에서 노동인력을 충원해야 하는데, 인건비도 한국보다 높고 혹독한 환경에서 이들이 제대로 근무할지도 미지수"라며 "정부는 '선(先) 사업성 검토, 후(後) 투자 결정'이라는 원칙을 지키되, 정 피할 수 없으면 정부 보증 및 세금 감면, 저금리 금융 지원 등을 세게 요구해 협상력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