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잇따르는 산업계 중대재해…李대통령 '일벌백계' 효과 있을까
李 안전사고 질타에도 한 달 만에 대형 안전사고 잇따라 안전문화 확산 촉진책 및 재하도급 등 시스템 개선 우선
[뉴스웍스=안광석 기자] 근로자 사망사고를 야기한 기업들에 대한 이재명 대통령의 호통이 무색하게 산업계 곳곳에서 추가적인 중대재해가 발생하면서 징벌적 처벌 강화가 아닌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요구된다.
산업계에서 중대재해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철강·조선 등 기간산업이나 건설 분야는 아직은 AI가 아닌 사람의 손길이 필요하다. 따라서 무거운 처벌보다는 업무 시스템 및 사회적 인식 변화 등 예방이 우선돼야 사고 발생률 증가 및 중대재해처벌법 우회 등 기업 반발심리를 최소화할 수 있다.
4일 경찰 등 당국에 따르면 지난 3일 오전 9시 45분께 서울시 성동구 GS건설 청계리버뷰자이 공사장에서 중국 국적 50대 노동자가 추락사한 데 이어, 정오에는 경상남도 거제시 한화오션 야드 해양플랜트 시설 내 플랫폼이 기우는 바람에 브라질 선주사 소속 감독관이 바다로 추락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산업현장 중대재해가 민감한 이슈인 만큼 관련 업계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여부를 주의 깊게 살피고 있다. 허윤홍 GS건설 대표는 사고 후 즉각적으로 유족에 사과하는 동시에 적극적 재발방지책 마련을 약속했다. 한화오션 사고의 경우 사측과 사망자가 고용-피고용 관계가 아니기에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이 될지는 고용노동부의 상세조사가 필요하다.
주목할 점은 포스코이앤씨에서 외국인 근로자들이 잇따라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해 이 대통령이 건설면허 취소를 포함한 강력한 제재를 지시한 지 불과 한 달 만이라는 점이다. 이후에도 경기도 의정부 DL건설 등 건설현장을 중심으로 안전사고가 빈번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중대재해처벌법 등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는 기업이 안전 의무를 소홀히 했을 때 금전적 부담을 가중시켜 경각심을 높이는 데 목적이 있고, 이 정부의 방침도 이런 차원인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사후약방문 식이라 재해 자체를 막는 데는 한계가 있고, 사고의 원인을 깊이 있게 분석하고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GS건설이나 한화오션 같은 대기업은 처벌을 받아들인다 해도 감당할 수 있는 여력이 있으나, 중소기업의 경우 과도한 손해배상 방침이 경영난을 심화시켜 오히려 안전 투자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 덧붙였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사고 발생 시 손해액의 최대 5배까지 배상토록 규정하고 있다. 이것이 부담스러운 나머지 기업들은 로펌을 고용하거나, 피해자들과의 합의로 마무리하는 식으로 오히려 처벌을 피해가고 있다. 이 대통령이 지난 2일 국무회의에서 발언한 "중대재해처벌법에 징벌적 손해배상이 명시돼 있다지만 징벌적 배상을 했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한 배경이다.
기업별로도 관련 매뉴얼이 없어 안전사고를 방지하지 못하는 게 아닌 만큼, 예방 중심의 정책을 강화하고 모든 경제 주체가 참여하는 안전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는 지적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제기된다.
이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우선 기업이 자체적으로 사업장 내 위험 요소를 파악하고 개선하는 위험성 평가를 의무화하고, 특히 중소기업을 위한 정부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기업이 안전 관련 기술 및 장비에 투자할 경우, 세제 혜택이나 보조금 지급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해 자발적인 안전 투자를 유도해야 한다.
아울러 처벌 위주의 정부의 관리·감독보다는 민간 전문가를 통한 안전 컨설팅을 강화하고, 산업 현장 위험을 가장 잘 아는 노동자를 활용해 안전 관리 프로세스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안전 목표를 달성한 사업장에는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안전 관리 우수 사례를 공유하고 포상하는 제도의 도입도 필요하다.
물론 현재 건설산업기본법이나 중대재해처벌법에 명시돼 있는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는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부분이다. 다만 기업이 예방 조치를 성실히 이행했는지 여부를 양형에 반영하는 등 예방 노력에 대한 가중치를 둬 제도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
재하도급 관행 및 저출산에 따른 외국인 근로자 증가 등 안전사고의 구조적 원인들도 개선해야 한다. 포스코이앤씨나 GS건설 등 최근 안전사고에 휘말린 건설사 소속 사망 근로자들도 하청 소속 혹은 외국인이었다.
제조업 관계자는 "하청업체가 안전관리에 충분한 예산을 투입할 수 있도록 정부와 발주처가 하청업체에 적정 공사비를 보장하고, 하도급 과정에서 비용이 부당하게 삭감되지 않도록 명확한 재하도급 개념 제시와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저출산의 심각성과 젊은층이 제조업을 기피하는 현상을 정부가 인정하고, 취업 프로그램 과정에서 기업과 취업준비생 모두에 혜택을 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고, 외국인 전문인력 취업 비자 확대와 이들의 처우 개선 관련 제도도 손봐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