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중대재해법 '처벌'에서 '예방' 중심 정책으로 나아가야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3년을 넘었지만, 건설 현장의 안전 현실은 여전히 무겁다. 법의 제정 목적은 분명했다. 반복되는 사망사고를 줄이고, 안전을 기업 경영의 최우선 가치로 삼도록 하겠다는 사회적 합의였다. 그러나 현장에서 체감하는 목소리는 다르다. 법이 처벌의 두려움으로만 작동하면서, 정작 사고 예방이라는 본래 취지가 약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곳곳에서 나온다.
현실은 더욱 엄혹하다.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2022년부터 올해 1분기까지 산업현장에서 사망한 근로자는 총 1968명이다. 이 중 건설업 사망자가 991명으로 50.4%를 차지했다. 법이 시행된 지 3년을 넘었지만 여전히 건설업에서 가장 많은 근로자가 목숨을 잃고 있다. 올해 1분기 건설업 사망자수는 71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7명이 늘어나 오히려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현행 중대재해법이 사망사고 감축이라는 본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다.
건설업은 복잡한 공정과 다단계 하도급 구조 속에서 수많은 이해관계자가 얽혀 있다. 이러한 특성은 현장 안전관리의 공백을 만들기 쉽다. 경영책임자에게까지 의무를 확대한 법의 취지는 바람직하지만, 모호한 규정과 형식적 대응으로는 실질적인 안전 확보가 어렵다. 실제로 현장에서는 위험성평가 절차만 갖추면 면책될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안전을 문서와 절차에만 맡기는 순간, 현장은 다시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법의 불확실성이 건설산업 전반의 위축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대형 건설사들은 중대재해 발생 시 막대한 형사적 책임을 우려해 영업수주를 보수적으로 전환하고 있다. 신규 사업을 회피하거나 공사기간을 의도적으로 늘리는 방식으로 리스크를 줄이려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결국 아파트 공급 지연과 분양가 상승으로 이어져 소비자, 즉 수요자들의 부담으로 전가된다.
또한 최근 몇 년간 대기업 현장에서 발생한 중대재해 사고는 단순히 해당 현장의 중단에 그치지 않았다. 공사가 멈추면 수많은 협력업체와 노동자들의 일자리가 직격탄을 맞는다. 더 나아가 건자재·장비 공급망, 금융·보험, 지역경제 전반으로 충격이 확산된다. 안전사고 하나가 곧 산업경제의 연쇄적 마비로 이어지는 구조가 된 것이다.
여기에 더해, 건설업계의 고질적 재하도급 문제도 중대재해와 직결된다. 일부 현장에서는 실질적인 인력과 장비 없이 계약서만 존재하는 이른바 '페이퍼컴퍼니'가 하도급 단계에 끼어들어 이윤만 취하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 그 결과 최하위 시공업체는 턱없이 낮은 금액에 공사를 떠맡게 되고, 안전과 품질 확보에 필수적인 자원 투입조차 불가능해진다. 국토교통부가 2023년 말 총 957개 현장을 단속한 결과 242개 현장에서 불법하도급을 적발했으며, 현장에서는 많게는 7~8차까지 이르는 다단계 하도급 관행이 만연하다.
현행법 역시 이러한 문제를 인식해, 발주자의 승인을 받은 경우에 한해 제한적으로 재하도급을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그 범위가 지나치게 협소하다 보니 제도 밖에서 음성적·편법적 거래가 성행하는 부작용이 발생한다. 따라서 정책적 방향은 재하도급을 무조건 금지하는 데 두는 것이 아니라 현행 승인제도를 폭넓게 적용하여 제도권 안에서 투명하게 관리하는 것이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승인 요건을 합리화해 전문성이 입증된 업체라면 재하도급을 폭넓게 허용 ▲등록제를 통해 인력·장비 보유 현황과 안전관리 능력을 사전에 심사 ▲원청·발주자가 하위 업체의 안전관리까지 연대책임 방식이 필요하다.
또한, 단계별 계약과 비용 구조를 투명하게 공개해 불필요한 중간 이윤이 안전비용을 잠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즉, 무분별한 재하도급은 막되 합법적 승인 절차를 폭넓게 인정해 관리·투명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정책을 설계하는 것이 현실적 해법이다. 이는 음성적 관행을 제도권 안으로 끌어올리고 산업 전반의 안전과 품질을 동시에 담보할 수 있는 길이다.
이와 함께, 책임의 편중 문제도 다시 짚어야 한다. 현행 중대재해처벌법은 경영책임자에게 과도하게 집중되어 있지만 실제 현장의 사고 원인은 단순하지 않다. 아무리 경영자가 안전관리 체계를 구축하더라도 현장에서 안전수칙을 무시하거나 보호장비를 착용하지 않는 등 노동자의 직접 과실로 발생하는 사고도 상당하다.
2022년 건설업의 사고사망자 402명 중 82.8%인 333명이 근속기간 6개월 미만 근로자였다는 사실은 현장 경험 부족이 사고사망의 가장 큰 요인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현실을 외면한 채 경영자만을 처벌하는 구조는 제도의 균형을 잃을 수 있다.
따라서 정책적으로는 '공동 책임 모델'이 모색될 필요가 있다. 경영자는 안전관리 체계와 교육·장비 제공에 대한 의무를 다해야 하고 노동자는 주어진 안전수칙을 준수할 책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 이를 법과 제도에 반영한다면 경영자와 노동자 모두가 '안전 파트너십' 속에서 사고 예방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
패러다임의 전환이 시급하다. 고용노동부는 2022년 발표한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은 이미 "사후적인 규제와 처벌 중심에서 사전 예방에 초점을 맞추고, 위험성평가 제도를 중심으로 자기규율 예방체계로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제시했다. 영국 등 선진국도 처벌 위주의 정책에서 자기규율 예방체계로 전환해 실질적인 사고 감축 효과를 거둔 바 있다. 정부는 2026년까지 사고사망만인율을 현재 0.43%에서 OECD 평균 수준인 0.299%로 감축한다는 목표를 내세웠지만 이를 위해서는 정책 패러다임의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
구체적으로는 정기감독을 '위험성평가 점검'으로 전환하고 위험성평가를 핵심 위험요인 '발굴·개선과 재발 방지' 중심으로 운영해야 한다. 중소기업의 자기규율 예방체계를 컨설팅하는 방식으로 지원하며 올해 말까지 5인 이상 사업장에 대하여 단계적으로 의무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중대재해법은 기업인을 처벌하기 위한 법이 아니다. 그것은 산업의 안전 수준을 끌어올리고 사회 전체가 '안전'이라는 공통 가치를 지켜가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이다. 그러나 현장에서의 공포와 산업 위축으로 이어진다면 본래 취지를 살리기 어렵다.
이제는 법을 넘어선 정책적 보완과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 처벌의 공포가 아니라 예방과 책임의 문화가 현장에 뿌리내릴 때 비로소 법은 제 기능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박창민 운리산업개발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