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엔솔, 美공장 설비 인력 구하지 못해 '발동동'…하반기 실적도 '흐림'
미국 진출한 대기업 '비상'…출장 지침 강화 조치 '너도나도' 증권사 "2026년 양산 목표 차질 불가피" …주가 하향 조정
[뉴스웍스=채윤정 기자] LG에너지솔루션이 미국 조지아주 공장에서 근무할 배터리 인력을 구하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다.
현대자동차와 LG에너지솔루션의 미국 조지아주 합작공장에서 일하던 직원들은 비자 문제로 구금됐다가 풀려나 지난 12일 귀국한 바 있다. 업계 일각에서는 현지 인력 문제가 LG에너지솔루션의 하반기 실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하는 모습이다.
LG에너지솔루션 구금 사태에 따라 미국에 진출한 업체에도 비상이 걸렸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현대차 등 대기업들은 미국 출장 지침을 대폭 강화하고 나섰다.
◆LG엔솔, 조지아주 공장 구금 사태…내년 생산 차질 '먹구름'
관련 업계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현지 배터리 공장을 담당할 설비 인력을 구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워지면서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에 정통한 소식통은 "배터리 합작공장에는 두 종류의 인력들이 일하는데, 바로 건설 쪽 인력과 배터리 업무를 담당하는 설비 쪽 인력들이다. 건설 쪽 인력은 미국 현지 인력을 채용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설비 인력들은 구할 수 없다"며 "장비에 대한 이해도가 있어야 하는 만큼, 한국에서 전문 인력이 파견되어야만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SK온은 현대차와 공동 미국 배터리 합작공장에 인력 재투입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어, 양사 대응이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SK온 관계자는 "현대차와 미국 배터리 합작공장에서 단기 상용 B1 비자를 가진 직원들에게 숙소 대기 방침을 해제하고, 정상 근무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SK온은 현대차와 공동으로 미국 조지아주 바오투 카운티에 배터리 합작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현대차는 또 SK온의 단독 공장인 조지아주 'SK배터리아메리카(SKBA)'에서 배터리를 조달할 방침이어서, SK온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당초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공장은 연말 완공을 앞두고 내년부터 생산을 본격화할 계획이었지만, 일정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호세 무뇨스 현대차 사장은 지난 11일(현지시간) “이번 일로 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법인 공사가 최소 2~3개월 지연될 것”이라며 “공사 단계에서는 미국에서 구하기 어려운 인력과 장비가 필요하다. 완공 지연에 따라 커머스의 SK온 공장에서 배터리를 조달하겠다"고 대응 방침을 언급했다.
SKBA은 연간 22GWh 규모의 커머스 공장이다. 현대차 메타플랜트 아메리카와 약 300㎞ 떨어진 곳에 있어 협업 환경에서 유리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공장은 이달 말 전기차 구매 보조금 폐지로 가동률이 하락할 거라는 예상이 제기됐지만, 현대차의 추가 수요가 몰리면서 가동률 증가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우리 정부와 미국 정부 사이에서 비자 문제에 대한 협상이 진행되고 있지만, 아직 협상 결과가 나오지 않고 있다.
한국 기업들이 미국 단기출장 시 ESTA(무비자 전자여행허가)를 활용해 왔던 것은 일종의 관행으로 굳어져 있다. 그러나 ESTA와 B1의 경우 단기 관광, 회의나 콘퍼런스 참석, 사업 현장 감독, 자문 제공 등 비생산적 활동만 허용된다. 또 ESTA는 미국 내 취업이 법적으로 금지돼 있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은 지난 11일(현지시간) "한국인 구금 사태는 전적으로 책임이 한국 기업에 있다"고 주장하면서 "한국 기업이 미국에 노동자를 파견하려면 정식 비자를 받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LG에너지솔루션은 로펌에 자문해 업무 범위를 확인하고 직원들을 미국에 파견한 것이어서 '위법하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증권사들은 "LG에너지솔루션의 내년 양산 목표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며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정경희 LS증권 연구원은 "건설 초기 단계에 한국 내 협력사 직원을 단기 출장 형태로 파견하고, 기술 노하우를 전수하는 기존 관행을 현장에서 불법 고용으로 간주했다"며 "이번 사태는 트럼프 행정부 강력한 반이민 정책 기조 연장선에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의 2026년 양산 목표에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고 분석했다.
이어 "현대차와 합작공장 프로젝트 지연으로 내년 수익 추정치를 하향 조정한다. 첨단 제조생산 세액공제(AMPC)를 통해 세금 혜택을 누릴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됐지만, 이 계획에도 차질이 생겼다"면서 목표 주가를 30만2000원에서 30만원으로 내렸다. AMPC는 첨단 제조 기술을 활용한 제품을 미국 내에서 생산 및 판매하는 경우 세액공제가 부여되는 제도다.
LG에너지솔루션은 다른 공장은 차질 없이 준비하고 있으며, 정부에서 협상을 끝나는 대로 근무 지침을 발표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대기업들, 구금 사태에 '출장 강화 지침' 마련
미국에 진출했거나 진출을 예정하고 있는 대기업들은 LG에너지솔루션의 구금 사태로 비상이 걸렸다. 이에 따라 사내 긴급 공지를 통해 ESTA 출장 지침 등을 점검하며 비상 대응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사내 공지를 통해 DS(반도체)부문의 경우 미국 이민 당국의 조사 결과가 발표되기 전까지 ESTA를 통한 생산법인 출장을 제한한다고 밝혔다, 판매법인 출장·고객사 회의·콘퍼런스 및 학회 참석은 기존 가이드 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ESTA를 받은 근로자는 미국 출장 시 2주만 체류하도록 제도화했다"며 "2주 이상 출장은 B1 비자를 강제하고 있다. 또 ESTA로 현지를 갔던 근로자의 경우, 최소 3개월 이후 다음 출장을 갈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SK하이닉스는 최근 사내 공지를 통해 ESTA를 통한 출장 기간을 최대 2주 이내로 제한했다. 연속 출장의 경우에는 최소 1개월의 공백 기간을 두도록 지침을 내렸다. 또 미국 입국 심사 시 사용할 수 있는 ‘답변 매뉴얼’도 제공했다.
방문 목적은 단기 비즈니스 미팅, 현장 시찰임을 밝히고, 반드시 “한국 소속이며 왕복 일정을 확정했다”는 답변을 하도록 지시했다. 또 "미국 내에서 무슨 일을 할 예정이냐"는 질문이 오면 “회의 및 교육만 참석한다”고 답하도록 안내했다.
SK하이닉스는 아직 미국에 공장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인디애나주에 반도체 패키징 생산라인을 설립할 계획이지만, 착공에 들어가지는 않았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나중에 이슈가 될 지 몰라 미리 대비하는 차원에서 ESTA 가이드라인을 공지한 것"이라며 "아직 직접적으로 해당되는 이슈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현대차는 지난 7일부터 ESTA를 이용한 출장 기간을 일주일로 제한했다. 필수 출장 외에는 전면 취소하도록 하고, 출국자들은 가능한 한 조기 귀국할 것을 당부했다. LG그룹 계열사들도 최근 ESTA를 통한 미국 출장을 전면 금지하는 출장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관련 업계에서는 향후 한미 실무협상을 통해 H-1B 쿼터 도입이나 한국인 전용 E-4 비자 제도 신설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미국 및 한국 정부는 비자 문제 해결을 위해 새로운 ‘비자 협의체’를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또 한국 대표들은 별도의 근로자 비자 쿼터를 요청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은 H-1B 비자 제도를 통해 전문직 외국인을 선발하고 있기는 하지만, 연간 쿼터와 추첨제 때문에 선발이 매우 제한적인 것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