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 임단협 마무리 수순…정년연장 등 갈등의 불씨 여전

현대차·HD현대 등 대형 사업장 대부분 정년연장 미합의 사회적 분위기 및 노란봉투법 등에 업고 요구 정례화 가능성

2025-09-20     안광석 기자
현대자동차 노사 관계자들이 지난 6월 18일 현대차 울산공장 본관 동행룸에서 임금 및 단체협상 교섭 상견례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현대자동차)

[뉴스웍스=안광석 기자] 여름을 뜨겁게 달궜던 제조업 노사 임금·단체협상이 마무리되는 분위기이나, 추후 갈등의 불씨는 여전한 상황이다.

대부분 사업장이 정년연장 등 사회적으로 민감한 사안은 합의를 이루지 못했을뿐더러, 오는 2026년 3월부터는 쟁의행위 등과 관련해 노동조합 운신의 폭이 넓어지는 노조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개정안(노란봉투법) 시행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20일 재계에 따르면 자동차 및 조선업 등 규모가 크고, 강성 성향 노조원들이 몰린 사업장을 중심으로 수년 만에 파업까지 이뤄졌을 정도로 치열했던 제조업 임단협이 지난 주를 기점으로 마무리 수순을 밟고 있다.

국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현대차 노조는 지난 15일 노조원 찬반투표 결과 임금 인상 및 성과금 지급 등의 내용을 담은 사측과의 잠정합의안을 가결했다. 그 뒤를 이어 한국지엠을 비롯한 동종업계 노조와 포스코 노조, HD현대 노조 및 삼성중공업 노동자협의회도 임단협을 마쳤다.

기아 노사가 임단협을 마무리하지 못했지만, 통상 제조업 노사관계 바로미터가 현대차임을 고려하면 장기화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업계 중론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다만, 올해 제조업 노조의 핵심 요구안이었던 정년연장이나 주 4.5일제 도입은 대부분 사업장에서 받아들이지 않았거나, 극히 일부만 수용됐다”며 “이조차 미국 관세 등 대내외 불확실성이 겹쳐서 겨우 합의를 이룬 것인 만큼, 올해 남은 기간은 물론 내년 임단협은 올해 버금가는 격한 갈등이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현대차나 HD현대중공업 등 강성 성향이 뚜렷한 노조는 초고령사회 진입과 연금 수급 연령과의 불일치를 이유로 기존 60세이던 정년을 64세로 늘리는 안을 사측에 강력히 요구했다. 정년연장이 기업에는 큰 금액적 부담이 따르는 만큼 정부나 업계 일각에서는 퇴직 후 재고용 등의 중재안을 제시하기도 했으나, 복지혜택 등에서 큰 차이가 있어 대부분의 노조 지도부는 검토하지도 않았다는 후문이다.

현대차 사측은 미국 관세 대응 문제로, HD현대중공업은 인건비 부담 증가 등을 이유로 정년연장에 난색을 표했다. 결국 해당 문제는 추후 사회적 논의가 있을 때마다 내년 임단협 등에서 협의하기로 결론났다. 현대차 노조의 경우, 일부 조합원들은 잠정합의안에서 정년연장 내용이 빠진 것에 대해 집행부를 크게 비판한 바 있다.

고려아연이나 삼성중공업이 노조의 정년연장 요구를 받아들인 사례가 있다고 해도, 이는 만 60세에서 61세로 1년 연장 등 일부 수용 형식이다.

HD현대중공업 노조 조합원들이 지난 8월 29일 울산조선소에서 파업 집회를 하고 있다. (사진=뉴스1)

더욱이 국회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지난 8월 국회에서 노란봉투법을 통과시키면서 노조의 추가적인 강경행보 가능성에 힘을 실어줬다. 노란봉투법의 핵심은 노조 손해배상 책임 제한이다. 법이 통과되면 사측은 파업에 대해 과도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기 어려워진다. 또한 하청업체 노동자가 노동조건에 대해 실질적인 지배력을 가진 원청업체와 교섭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노란봉투법 처리 이후 현대차는 7년 만에 파업을 실시하고, 철강 노조도 이전보다 더 강경한 행동에 나선 바 있다. 올해는 제조업 전반적으로 경영환경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노조 설득에 성공했지만, 앞으로 임단협은 기업이 가장 꺼리는 정년연장과 주 4.5일제 요구가 정례화 될 가능성이 크다.

노조 내부에도 세대간 갈등 등 변화의 물결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정년을 앞둔 숙련된 노동자들은 정년연장을 통해 안정적인 소득을 확보하고자 하는 반면, 청년 노동자들은 정년 연장이 신규 채용 축소와 승진 적체로 이어진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러한 갈등은 노조의 단결력을 약화시키고, 협상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 사회학자는 “임금피크제 개선 및 고령 근로자 재고용 지원 정책, 근무시간 유연화에 대한 가이드라인 제시 등 노사 갈등을 완화할 수 있는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며 “노사 양측의 입장뿐만 아니라 청년층의 고용 문제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범사회적 논의기구의 필요성이 대두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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