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항 떠나는 韓 면세점…中 상륙시 '일대일로' 거점 우려

신라면세점 철수에 신세계면세점 거취 '주목' 업계 "세계 2위 면세점 中 'CDFG' 입점할 수도"

2025-09-19     김상우 기자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면세구역이 여행객들로 북적이고 있다. (사진제공=인천공항공사)

[뉴스웍스=김상우 기자] 신라면세점이 인천국제공항 철수를 단행하면서 국내 면세점이 모두 인천공항에서 철수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국내 면세점들이 떠난 자리는 과거 인천공항 입찰을 타진했던 중국관광그룹면세유한공사( China Duty Free Group, 이하 CDFG)가 노릴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중국 국영기업인 CDFG는 세계 2위 규모의 면세점이며, 최근 중국 '일대일로(BRI)' 전략국을 중심으로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CDFG가 인천공항 면세점은 운영하면 적자와 상관없이 고객 데이터 축적을 비롯해 중국 제조업체·브랜드의 해외 전진기지 역할을 하면서 상당한 이익이 될 것이란 분석이다.

1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신라면세점이 전날 인천공항에서 철수를 발표하면서 신세계면세점도 조만간 비슷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예상이 일각에서 제기된다. 신라면세점은 지난 2023년 인천공항에서 DF1 구역 면세 사업권을 낙찰받아 오는 2033년까지 10년 동안 운영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당시 신라면세점과 신세계면세점은 코로나 팬데믹이 끝나고 예년처럼 면세점이 호황을 누릴 것이란 장밋빛 구상이었지만, 관광객들의 달라진 소비행태와 면세점 큰손인 중국 관광객들이 크게 줄며 적자를 피하지 못했다. 

적자가 누적되자 면세점들은 인천공항공사에 임대료 인하를 요구하기에 이른다. 앞서 이달 5일 인천지방법원은 인천공항공사에 신라면세점 임대료 25% 인하라는 강제 조정안을 내린 바 있다. 다만, 조정안이기 때문에 법적 구속력이 생기지 않는다. 인천공항공사는 곧장 조정안을 거부했고, 신라면세점은 본안소송을 포기하고 전면 철수를 단행한다.

본안소송은 통상 6개월에서 1년 정도가 걸린다. 항소심까지 포함하면 2년 이상 소요될 수도 있다. 매달 60억∼80억원, 연간 720억~960억원 수준의 적자가 발생하는 상황에서 법적 공방을 치르기엔 누적 적자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신라면세점은 철수 의사와 상관없이 당분간 영업을 유지한다. 인천공항 면세점 계약에서는 입점 사업자가 철수 의사를 밝히더라도 6개월간 영업을 유지해야 한다는 조약이 있다. 이에 신라면세점의 인천공항 DF1 구역 영업은 내년 3월 18일까지 유지될 전망이다. 신라면세점은 영업 유지 기간 6개월 동안 인천공항공사와 협의를 거쳐 영업기일을 조율하겠다고 밝혔다.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에 위치한 신라면세점 화장품·향수 매장 모습. (사진제공=신라면세점)

또한 신라면세점이 인천공항공사에 납부했던 임대보증금 약 1900억원은 계약 조건에 따라 위약금으로 전환된다. 법원이 강제 조정을 통해 임대료를 25% 인하를 권고했기 때문에 위약금 액수를 둘러싼 양측의 다툼이 생길 수도 있다. 

신라면세점 관계자는 "위약금 규모는 계약에 따라 임대보증금에 상당하는 금액으로 인천공항공사와 협의를 통해 정해질 예정"이라며 "지금까지 확정된 건 없다"고 말했다.

신세계면세점은 고민에 휩싸였다. 신세계면세점 운영사인 신세계디에프는 2년 전 입찰 때 신라면세점보다 여객 1인당 임대료가 높은 9020원을 제시해 손실액만 따진다면 신라면세점보다 급한 처지다. 신세계디에프 관계자는 "현재까지 결정된 것은 없다"며 말을 아꼈다.

업계 안팎에서는 인천공항 면세점 사업구조가 사실상 적자구조를 탈피하기 어려운 만큼, 국내 면세점들의 인천공항 전면 철수는 시간 문제라는 견해가 우세하다. 국내 면세점업계 1위 사업자인 롯데면세점은 2018년 2월 인천공항 제1여객터미널 면세점 사업권 3개 구역(DF1·DF5·DF8)을 반납하고, 위약금 1870억원을 지불한 적이 있어 재입점을 추진할 가능성이 희박하다.

(출처=중국관광그룹면세유한공사(CDFG) 홈페이지)

한편에서는 국내 면세점들이 모두 인천공항을 떠난다면 중국계 면세점이 빈자리를 채울 수 있다는 진단이다.

특히 글로벌 면세점 2위 사업자로 평가받는 CDFG가 중국 정부의 이해관계와 맞물려 인천공항 입점에 눈독을 들일 것이란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앞서 CDFG는 지난 2023년 인천공항 면세점(DF1·DF2·DF3 구역) 사업자 입찰에 참여한 적이 있다. 당시 자금력은 가장 월등했으나, 인천공항공사가 평가 비중을 '사업역량(60%)', '가격(40%)'으로 차등해 고배를 마셨다.

CDFG는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의 핵심 국가들을 중심으로 해외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2018년 캄보디아 프놈펜국제공항에 진출한 뒤로 홍콩, 스리랑카, 베트남 등 반경을 넓히는 중이다. 올해는 태국과 말레이시아 진출을 타진하며 입찰에 참여했지만 최종 낙찰됐다. 태국과 말레이시아는 전통적으로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지만, 최근 중국의 경제·안보 영향력 확대에 견제 움직임을 강화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국영기업인 CDFG의 글로벌 시장 공략 과정을 살펴보면 단순 재무지표가 아닌, 전략적 가치와 정책 기여도를 우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며 "만약 인천공항에 입점하면 적자를 보더라도 한국 시장의 데이터 수집부터 중국 브랜드와 제조업체의 수출 거점 역할, 환거래 등의 금융 네트워크 확장 등 다방면 이득을 취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최근 K-컬처의 글로벌 인기와 지정학적 가치만 따져도 한국의 관문인 인천공항은 CDFG에게 전략적 가치가 매우 크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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