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외국인 계절근로자, 농업 생존의 '빛'인가 '독'인가

2025-09-23     민문식 기자
최재중 장성군치유농업협회 대표·진풍경농업회사법인 대표. 

도심의 팍팍한 삶에 지쳐 "농사나 지을까"라는 말을 농담처럼 던지지만, 막상 농촌의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농촌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바로 농촌 노동력 문제로, 이는 우리 농업의 근본적 경쟁력과 직결되는 핵심 이슈다.

작물재배업 농가의 90%가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를 사용하고 있다는 현실은 단순한 법 위반을 넘어 우리 농업 생태계 전체의 지속가능성을 흔드는 심각한 구조적 문제를 드러낸다.

농촌의 노동 수요는 파종과 수확기인 4~6월, 9~10월에 집중되며, 고령화와 인구 감소로 인해 국내 인력 확보가 극도로 어려워진 상황이다. 2025년 농번기 농업고용인력 수요는 1450만명으로 예상된다. 이 중 절반인 700만명을 외국인 계절근로와 내국인 지원으로 공급할 계획이지만, 여전히 부족하다.

이러한 공급 부족의 틈을 메우는 것이 바로 불법 노동력 생태계다. 브로커들은 하루 2만~5만원의 차익을 챙기며 농촌의 불법 노동력 생태계를 부추기고 있으며, 불법 체류 노동자들은 단속 위험 노출은 물론 임금 착취와 열악한 노동환경에 시달리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법의 테두리 밖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관행에 농촌사회가 익숙해져 눈감는 분위기가 만연하고 있다는 점이다.

농촌 노동력 문제의 근본 원인은 결국 농산물이 제값을 받지 못하는 유통구조에 있다. 우리나라 농산물 소매가의 절반 이상이 유통단계 비용으로, 2023년 기준 유통비용 비율은 49.2%에 달한다. 농민들은 생산원가 절감을 위해 인건비 절약이라는 현명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딜레마에 빠져 있다.

이러한 비현실적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 다음과 같은 제언을 하고자 한다.

첫째, 불법체류자 양성화와 특별법 마련이 시급하다. 현재 불법체류 중인 외국인 노동자들이 스스로 자진 출국을 서약하면 일정기간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특별법을 마련해야 한다. 세금 납부 조건으로 3~5년의 합법적 근로기간을 허용하고, 이후 자진출국 시 재입국 기회를 제공하는 제도를 통해 세수 확보, 음지 범죄 억제, 노동력 안정화라는 삼중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둘째, 농산물 제값 받기를 위한 유통구조의 근본적 개선이 필요하다. 산지 생산자 조직 규모화를 통한 불필요한 유통과정 단축과 온라인 도매시장 확대로 유통비 절감을 추진해야 한다. 정부는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를 통해 약 1조30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하고 있지만 효과가 제한적인 만큼, 보다 혁신적인 유통 채널 개발이 요구된다.

셋째, 농업경영 효율성 확보를 위한 기반시설 확충이 필요하다. 지자체의 한시적 인건비 지원으로 안정적 고용인력 공급체계를 구축하고, 농지 및 도로 확장을 통한 대형기계 운영 지원, 투명한 농업경영을 통한 고수익 실현 창구 마련이 병행되어야 한다.

최근 국회를 통과한 출입국관리법 개정안은 계절근로자 전문기관 설치를 통한 관리 프로그램 도입과 불법 브로커 규제 강화를 담고 있어 긍정적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지속가능한 농업 발전을 위해서는 단순한 노동력 수급 정책이 아닌 농업정책, 인구정책으로의 확장이 필요하다.

농업과 환경의 조화를 통한 삶의 질 향상이라는 지속가능한 농업의 비전 실현을 위해서는 농업정책과 환경정책의 통합성 제고, 안전 고품질 농산물 생산 및 유통, 연구개발 및 기술보급 확대 등이 종합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정직한 농법으로 생산하고 합리적 소득을 실현하는 자랑스러운 농업을 위해, 새로운 정부는 현실적 대안 마련에 나서야 한다. 허리띠에 여권과 현금을 지니고 일터에 나서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고 꿈을 위해 당당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곧 우리 농촌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길이다.

억압과 단속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구조적 문제에 대한 근본적 접근만이 농업의 미래를 열어갈 수 있을 것이다.

[최재중 장성군치유농업협회 회장·진풍경농업회사법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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