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보다 공급망 안정…현대차·기아, 겹악재에도 美 현지화 '정면돌파'
車 관세 및 비자문제 따른 인건비 상승 우려 아랑곳 안 해 선대부터 내려온 美 시장 중시 따라 지속가능성 확보 택해
[뉴스웍스=안광석 기자] 현대자동차·기아가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25% 자동차 관세 유지 및 비자 문제에 따른 인건비 상승 위협에도 가격 동결 등 미국 현지화 정책 재고 없는 지속가능성을 택해 재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단기적 수익성 악화는 감내하더라도 세계 최대 소비 시장인 미국을 중심으로 중장기적인 공급망 안정을 꾀하겠다는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평소 신념이 반영된 것으로 여겨진다.
22일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가 여전히 한국산 자동차에 25% 품목관세를 유지 중인 가운데, 현대차는 2분기 기준 영업이익 감소분을 8282억원, 기아는 7860억원 총 1조 6140억원으로 추산했다.
증권가에 따르면 25% 관세가 연간으로 적용될 경우 현대차와 기아의 합산 영업이익은 올해 약 4조9000억원 줄어들 전망이다. 관세 영향이 연간 전체에 반영될 오는 2026년에는 양사 합산 영업이익이 9조1000억원까지 감소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같은 분석은 현대차·기아가 내년까지 관세 부담을 소비자가 아닌 자체적으로 흡수하는 가격 동결 정책을 유지한다는 것이 전제다. 그럼에도 양사는 단순한 위기 대응을 넘어 미국 시장에서 진정한 현지 기업으로 자리매김한다는 그룹의 중장기적 비전을 수정하지 않고 있다.
현대차·기아가 처한 핵심 딜레마는 트럼프 행정부의 25% 관세 부담을 소비자에게 전가하면 가격 경쟁력이 떨어져 판매량 감소로 이어지고, 관세를 자체 흡수하면 수익성이 급격히 악화된다는 것이다. 양사는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를 중심으로 미국 내 생산 비중을 기존 40%에서 80%까지 끌어올리는 전략으로 딜레마를 타개한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이는 곧 국내 생산량 감소를 의미하기에 추후 노동조합과의 임금·단체협상에서 갈등의 불씨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양사는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추후 국내 투자도 병행하겠다는 상세 가이드라인을 세우겠다는 방침이다.
미국 진출 이후 수십년을 지켜온 ‘제값 받을 때는 받되, 부담은 소비자에 전가하지 않는다’는 브랜드 이미지 수성 측면도 있다. 도요타자동차 및 독일 3사(메르세데스-벤츠·BMW·폭스바겐) 등 현지 경쟁업체들은 이미 자동차 판매 가격을 인상해 관세 부담을 소비자에게 전가한 상태다.
현대차와 기아는 지난 3월 시작된 25% 관세 부과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전략을 바탕으로 미국 시장에서 점유율을 꾸준히 늘려왔다. 이른바 역주행 전략을 통해 소비자들의 '패닉 바잉'을 유도하고, 신차 출시와 같은 모멘텀을 이어가며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는 방식이다.
최근 미국에서 발생한 비자 문제에 따른 현지 공장 건설 지연 등 악영향에도 오히려 현지 자동차 부품 공급망을 강화하고, 한국인 인력 대비 비용이 높은 현지 인력을 채용하고 있다. 물론 양사는 미국 정부나 지자체와의 협상을 통해 비자 문제 해결을 위한 법적·제도적 노력도 병행 중이다.
현대차·기아의 이같은 행보는 선대 회장인 정몽구 회장부터 이어내려온 미국 시장 중시 정책에 기인한다. 정의선 회장도 이달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한 자동차 포럼에서 미국 시장에 더 많은 기여를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현지 매체와 인터뷰에서는 "판매하고자 하는 곳에서 직접 생산한다는 원칙 아래 미국에만 210억달러 이상을 투자하고 있다"고 했다. 특히 조지아주에 건설 중인 HMGMA를 통해 전기자동차와 하이브리드차 등 다양한 차종을 현지 생산해 관세 장벽을 해소하겠다는 기존 전략도 재확인했다.
앞서 정 회장은 지난 3월 HMGMA 준공식에서 "단지 공장을 짓기 위해 이곳에 온 게 아니라, 뿌리를 내리기 위해 왔다"고 언급한 바 있다.
호세 무뇨스 현대차 사장도 최근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관세로 비용은 높아지겠지만, 가격은 결국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된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이 한국보다 낮은 관세로 현재는 우위에 있다고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포기하고 걱정만 한다면 이 비즈니스 전체를 잃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즉, 미국발 관세에도 차량 가격 인상을 하지 않겠다는 큰 틀을 재부각한 것이다.
따라서 현대차·기아는 현지에서 자동차 생산을 늘리는 동시에 전동화와 목적 기반 모빌리티(PBV)를 중심으로 한 미래 사업에 대한 투자를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오는 2030년까지 전기차 125만9000대를 포함한 233만3000대의 친환경차를 판매해 친환경차 판매 비중을 56%까지 늘릴 계획입니다. 미래항공모빌리티(AAM)나 로보틱스 등 차세대 사업에도 적극 참여할 전망이다.
증권가 한 관계자는 “현대차와 기아가 앞으로도 미국발 관세로 상당한 재정적 손실을 입을 것으로 추정하지만, 워낙 현지화 전략이 뚜렷해 중장기적인 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