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한 韓·美 합의는 금물…국익 위한 목소리 당당히 담아야"
[뉴스웍스가 만난 사람] 조연성 덕성여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뉴스웍스=정현준 기자] 한미 양국이 지난 7월 한국산 수입품에 대한 상호 관세율을 25%에서 15%로 낮추는 대신, 한국이 3500억달러(약 488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를 추진하는 것을 골자로 협상을 타결했다. 이미 상호 관세 인하는 시행됐지만, 대미 투자 방식을 두고 양국이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품목관세인 자동차 관세는 여전히 인하되지 못하고 있다.
미국 행정부는 달러 현금을 직접 받아 투자처를 자국이 결정하고, 투자금 회수 이후 발생하는 이익의 90%를 가져가는 방식을 받아들이라고 압박하고 있다. 반면 우리 정부는 막대한 현금 유출이 외환시장 불안과 원화 가치 폭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안전장치로 한미 '통화 스와프' 체결을 요구 중이다. 이에 대해 미국 정부는 부정적인 입장을 고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통화 스와프 없이 미국이 요구하는 방식대로 투자한다면, 한국은 1997년 금융위기와 같은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의 경우 외화보유액이 한국보다 두 배 이상 많고 이미 스와프 라인이 체결돼 있어 조건이 다르다는 점도 지적했다.
현재 방미 중인 이 대통령은 미 상·하원 의원들을 접견한 가운데 "관세 협상 과정에서 우리나라 외환시장에 불안정이 야기될 우려가 있지만, 양측이 '상업적 합리성'이 보장되는 방식으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조지아주에서 발생한 한국 전문인력 구금 사태가 재발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진 가운데, 최근 미국 조지아주에서 발생한 한국 전문 인력 구금 사태로 국내 대미 여론이 악화했다.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공장 인력 재투입 문제도 난제다.
한미 통상 협상의 교착 원인과 전망, 통화스와프의 필요성, 일본과의 협상 비교, 한국이 내세울 수 있는 협상 카드, 그리고 자동차 관세 불확실성이 장기화할 경우 정부와 기업의 대응 전략 등에 대해 조연성 덕성여대 국제통상학과 교수와 이야기를 나눴다.
-미국의 일본식 합의 모델 요구에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우리나라는 일본식 모델을 그대로 따르기 어렵다. 일본은 미국과 이미 통화 스와프를 체결했고 외화 보유액 규모도 우리보다 훨씬 크며, 국가 경제 규모 역시 다르다. 무엇보다 일본은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적이 없지만, 우리는 이미 FTA로 관세 0%를 적용받고 있었다. 그런데 미국에서 정권이 바뀌면서 갑자기 25% 관세를 내라는 상황이 된 것이다.
투자가 한국 기업들에 장기적으로 도움이 된다면 추진할 수 있겠지만, 미국이 요구하는 방식처럼 현금으로 모두 내고 투자처 결정 권한까지 미국이 가지는 구조는 한국에 불리하다. 특히 투자금의 사용처나 회수 방식도 불투명하므로 이런 이유로 협상 담당자가 현재 버티고 있는 것이다. 저뿐만 아니라 학계에서도 일본식 모델을 그대로 수용해선 안 된다는 의견이 중론인 것 같다."
-한미 무제한 통화스와프에 대한 미국의 부정적 반응 평가한다면.
"통화 스와프는 양국이 통화를 교환하기로 약속하는 제도인데, 미국은 전통적으로 일본 같은 기축통화국들과 많이 맺어왔다. 한국이 요구한 무제한 통화 스와프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입장에서 부담이 되고, 미국 내부에서도 정치적 책임 문제가 있어 쉽게 수용하기 어려울 것으로 본다. 설령 통화 스와프를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반드시 안전장치를 마련하려 할 것이다. 또한 선례가 되면 다른 국가도 요구할 수 있는 만큼, 처음부터 '안 된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지난 2008년 금융위기 때처럼 위기가 명확할 때만 예외적으로 10개국과 통화 스와프를 체결한 적이 있다. 당시 한국도 포함됐지만,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다. 따라서 미국의 부정적 반응을 비정상적이라고 볼 필요는 없다. 다만 우리로서는 이번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어가기 위해 통화 스와프를 하나의 지렛대, 즉 '협상 카드'로 활용해야 한다."
-그렇다면 현재 미국에 제시할 수 있는 '협상 카드'는 어떤 것들이 있나.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겠다고 한 표면적 이유는 한국의 3500억달러 대미 투자 약속이다. 그러나 통상 협상은 농업·의약품 등 다양한 의제가 얽혀 있는 복합 협상이다. 쟁점은 투자 '방식'을 둘러싼 이견이며, 핵심은 투자금을 어떻게 집행할 것인가에 있다. 한국은 일시에 현금을 낼 수 없으므로 분할 납부, 통화 스와프 활용, 투자 수익 환수 일정 등을 패키지로 협상해야 한다. 미국은 자국 언론을 통해 압박 신호를 흘리지만 협상 과정에서 흔히 있는 일이다. 중요한 점은 우리가 투자금을 한 번에 낼 수도, 또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이미 FTA로 무관세였던 상황에서 15%가 된 것만으로도 불합리한데, 25%를 피하려고 수천억 달러를 현금으로 내는 것은 더 받아들이기 어렵다.
따라서 지금의 '버티기' 전략은 협상의 일부로 볼 수 있다. 다만 25% 관세로 직접 피해를 보는 기업들의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정부의 중재가 필요하다. 협상은 길어야 몇 달 내 결론이 날 가능성이 크다. 그 사이 투자금 지급 방식, 투자 분야, 수익 회수 일정 등에서 우리의 의견을 반드시 반영해야 한다. 한 방에 모든 문제를 해결할 '마법의 카드'는 없다. 결국 세세한 조건에서 유불리를 따져 조율하는 수밖에 없으며, 섣부른 양보로 협상을 끝내서는 안 된다.""
-일본의 5500억달러 규모 대미 투자 약속은 어떻게 보나.
"일본과 미국의 경제 관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긴밀하다. 미국 입장에서는 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파트너가 일본일 수밖에 없고, 이미 일본 자본이 미국에 깊숙이 들어가 있다. 언론에서 보도되고 있는 것처럼 이번 합의도 단순히 몇백조를 현금으로 송금하는 방식은 아닐 것이다. 일본 기업들이 충분히 감당할 수 있고, 일본 정부가 받아들일 만한 방식이 마련됐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으로 본다.
일부에서는 이를 '굴욕적 합의'라고 표현하지만, 국가 간 대규모 투자에 굴욕이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 일본은 외국인직접투자(FDI) 규모 자체가 한국보다 훨씬 크고, 미국과의 경제 교류 역사도 길기 때문에 그만큼 그들만의 해법이 있다. 오히려 우리는 일본의 방식을 연구해 한국 실정에 맞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 일본이 '한 번에 투자한다'고 밝힌 것을 명분으로 삼아, 한국은 그런 방식은 불가능하다고 계속 주장하는 것이 맞다. 지금 정부가 그런 입장을 견지하는 건 잘하고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차라리 '관세 25%'를 감수하자는 여론도 있다. 이 경우 추가 인상 가능성은.
"추가 인상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를 보면 인도에는 관세 40%를 부과하겠다고 했다가 다시 낮추고, 중국에 대해서도 관세 인상을 90일 유예했으며, 일본과는 일정 수준에서 타협을 마무리했다. 이런 흐름을 볼 때, 한국에 대해서만 괘씸죄를 적용해 관세를 50%로 올릴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본다. 그렇다고 해서 25% 관세를 장기간 감수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대외 경쟁력이 떨어져 일본차와의 경쟁에서도 밀릴 수 있고, 이는 북미 시장에 국한되지 않는다. 관세로 가격 경쟁력을 잃은 상태에서 수출이 이뤄지면 북미는 물론 연계 시장 전반에서 파급 효과가 이어져 일종의 꼬리표처럼 부정적 영향이 지속될 수 있다.
단순히 '버티기 전략'은 바람직하지 않다.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해 기업을 버티게 하자는 의견도 있지만, 그런 방식으로 유지되는 산업은 근본적으로 경쟁력 확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문제는 기업 차원이 아닌 국가 간 협상의 영역이다. 정부가 산업 전반을 고려해 치열하게 협상에 임하고 있는 만큼, 여론도 조급하게 몰아붙이기보다는 협상팀이 흔들림 없이 대응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줄 필요가 있다."
-현대차그룹처럼 대미 수출 의존도가 큰 기업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기업들이 실제로 외국인직접투자(FDI) 전략을 많이 택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기존에 구축된 글로벌 공급망을 한 번에 바꾸는 것은 절대 쉽지 않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공급망 관리(SCM)를 다시 설계하는 일이다. 과거에는 비교적 안정적인 환경 속에서 계획이 가능했지만, 트럼프처럼 예측 불가능한 변수를 경험한 만큼 앞으로는 언제든 유사한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는 전제를 두어야 한다. 또 다른 하나는 현재의 공급망을 어떻게 재구성해 돌발 변수가 발생하더라도 가격 경쟁력과 품질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다만 자동차 산업은 생산라인 규모가 크고 복잡하기 때문에 이러한 전략 전환이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예상을 벗어난 협상 표류 상황에서 우리 정부나 국회의 카드가 궁금하다.
"이 질문이 가장 답하기 어렵다. 현재 국회 차원에서 뚜렷한 역할을 한 부분이 사실상 없지 않나. 정부는 통상 협상단이 맡은 책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해 활용해 온 나라다. 관세무역일반협정(GATT) 체제 이후 세계무역기구(WTO) 체제가 출범하면서 우루과이 라운드와 도하 라운드라는 두 차례의 다자간 무역 협상이 진행됐다. 그러나 100개가 넘는 국가들이 참여한 협상은 뚜렷한 결론을 내지 못했고, 그 결과 다자체제 대신 양자 무역체제가 확산하며 FTA가 등장하게 됐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이를 큰 기회로 삼아 적극적으로 활용해 왔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 들어 이러한 질서가 흔들리고 있다. 통상 쪽 교수들이 모이면 우스갯소리로 말하는 게 '학생들한테 앞으로는 우루과이 라운드, 도하 라운드가 아니라 트럼프 라운드를 가르쳐야 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는 말까지 나온다. 최근 FTA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이슈와 맞물려 점점 더 까다로운 규정을 포함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국회와 정부는 이에 대응해 불필요한 규제는 선제적으로 풀고, 필요한 부분은 보완해 기업들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제도적 지원을 마련해야 한다. 또 한국은 이미 통상 측면에서는 일정한 영향력을 갖춘 국가다. 이를 십분 활용하기 위해선 외국인직접투자(FDI) 활성화 방안도 논의해야 한다. 다만 이 과정에서 제조업 공동화, 일자리 감소 등 국내적 파급 효과도 함께 고려해야 하므로 단순하지 않은 과제다."
-미국의 정치·경제 상황을 고려할 때, 한미 협상의 전망은.
"올해 겨울이 오기 전에는 어떤 형태로든 협상의 가닥이 잡힐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이후 각국에 고율 관세를 매겼지만, 이제 반년 가까이 지나면서 미국 역시 이를 정리해야 할 시점에 왔다. 지금 미국 경제 자체에 큰 위기는 없지만, 통상 불안정성이 길어지면 수입 물가와 기업 전략에 차질이 불가피하다. 따라서 미국도 협상을 무기한 끌 의도는 없어 보인다. 양국 모두 유불리를 놓고 치열한 실무 협상을 이어가겠지만, 디테일한 조율에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다만 내년 봄까지 협상이 결론 없이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 통상 협상에서는 양국 정상이 만나 기분 좋게 악수하고 헤어질 수는 있다. 문제는 디테일에 있다. 국민 세금이 걸린 문제인 만큼 양측 모두 쉽게 양보할 수 없다. 협상에는 항상 시간제한이 있는데, 우리가 불리하다고 느낄 수 있는 지점은 '관세 25%를 언제까지 감내할 것이냐' 정도다.
정부는 이 부분을 국민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사실관계를 투명하게 알리며 이해를 구해야 한다. 불만과 갈등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중요한 것은 이를 어떻게 수습하느냐다. 한국 정부는 투자 조건 등에서 우리에게 최대한 유리한 결과를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 FTA 체제로 이미 무관세였던 체제를 하루아침에 뒤집은 상황을 수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WTO 제소를 포함해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 결국 한국 정부는 협상에서 우리 국익을 지킬 최선의 방안을 확보해야 하며, 협상 타결까지 시간이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협상단에 전하고 싶은 당부나 조언이 있다면.
"현재 협상단이 정부와 긴밀히 소통하며 최선을 다하고 있을 거라 믿는다. 다만 정부는 정치적 여론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에, 때로는 국내 여론의 압박 때문에 필요한 '버팀'조차 지키기 어려운 상황이 생길 수 있다. 사실 협상은 복잡한 과정이라 국민이 세세한 내용을 모두 이해하기 어렵고, 그럴 필요도 없다. 중요한 건 전문가들이 협상에서 원칙을 지키고 국익을 지켜내는 것이다. 특히 미국에 요구한 통화 스와프 문제처럼 국민에게 이미 각인된 사안은 최소한 이행되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대통령이 '국익에 반하는 합의에는 서명하지 않겠다'라는 메시지를 강하게 내는 것도 국민에게 신뢰를 주는 방식이다. 다만 정치적 메시지가 협상의 실무를 왜곡하거나 과도하게 전도해서는 안 된다. 한 번 잘못된 메시지를 내면 되돌리기 어렵다. 협상 과정에서 미국이 약속을 먼저 깼다는 점, 그리고 우리가 투자까지 약속한 상황에서 투자 방식과 분야에 대한 의견을 내는 것은 정당하다. 국제 협상은 원래 공갈과 압박이 오가는 자리다. 저자세로 대응할 필요는 없다.
물론 협상이 장기화해 내년까지 이어진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미국 내부 상황을 고려하면 조만간 타결될 가능성이 크다. 이재명 대통령이 유엔 총회 참석차 미국을 방문하는 계기에 극적인 합의가 이뤄질 수도 있고, 중간 단계에서 일부 타결안을 먼저 발표할 가능성도 있다. 협상은 반드시 양측 대표가 함께 나서서 발표해야 의미가 있다. 어느 한쪽만 단독으로 발표한다면 협상이 끝난 게 아니다. 협상단은 이런 점을 고려해 국민 신뢰를 지키면서도 당당하게 협상에 임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