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이어 유럽도 車관세 15%…현대차·기아 버티지만, 부품업계는 직격탄
관세 후 미 ATP 현대차·기아 2.3% 상승…같은 기간 도요타 0.2% 소폭 인상 가격 동결 기조로 납품단가 인상 어려울 듯…영세 부품사에 부담 전가 우려
[뉴스웍스=정현준 기자] 미국이 유럽산 자동차와 부품에 대한 관세율을 15%로 낮추기로 하면서 일본에 이어 유럽연합(EU)까지 관세 인하 혜택을 받게 됐다. 결국 한국만 25% 고율 관세를 계속 부담하는 불리한 상황에 놓인 가운데, 현대차·기아는 '가격 동결' 전략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 여파가 부품업계에 전가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5일 미국 시장조사업체 콕스오토모티브에 따르면 지난달 현대차(기아·제네시스 포함)의 평균거래가격(ATP)은 3만9037달러(약 5470만원)로, 관세가 적용되기 전인 지난 3월 3만8129달러(약 5343만원)보다 2.3% 상승했다. 금액으로는 약 127만원이 오른 수준이다. ATP는 인센티브나 할인 등을 반영한 소비자 최종 거래 가격을 의미한다.
같은 기간 도요타(렉서스 포함)의 ATP는 4만5076달러(약 6317만원)에서 4만5164달러(약 6329만원)로 0.2% 정도 올랐다. 혼다도 3만8890달러(약 5449만원)에서 3만9236달러(약 5498만원)로 0.9% 상승에 그쳤다.
현대차와 기아는 지난 4월 자동차와 부품에 25% 관세가 부과된 이후에도 미국 시장에서 차량 가격 인상을 자제하며 가격 동결 기조를 이어왔다. 토요타가 지난 7월 1일 이후 생산 차량의 미국 판매가를 평균 270달러(약 37만원) 인상하고, 포드가 앞서 5월 멕시코산 차량 가격을 올린 것과 비교하면 현대차·기아는 가격 인상 대신 수익성 방어에 주력하고 있는 셈이다.
현대차·기아의 가격 동결 기조는 지난 7월 열린 양사의 2분기 실적 컨퍼런스콜에서도 확인됐다. 당시 이승조 현대차 재경본부장은 "관세 인상분을 즉각적으로 가격에 반영하기보다는 '패스트 팔로워(빠른 추격자)' 전략에 따라 시장 상황을 지켜보며 탄력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기아 역시 가격 인상 대신 다른 방안을 택했다. 미국에서 캐나다와 중동으로 수출하던 차량 2만5000대를 현지 판매로 돌리고, 딜러 인센티브 지급을 줄여 관세 부담의 약 30%를 상쇄하겠다는 계획이다.
이후 호세 무뇨스 현대차 사장도 지난 1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2025 CEO 인베스터 데이'에서 "관세 인상 때문에 가격을 올릴 수는 없다"며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좌우되는 것이지, 관세와 연관되는 문제는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국내 자동차 부품업계 1차 협력사들의 현대차·기아 의존도가 전체 납품액의 9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의 완성차업체별 OEM 납품 실적에 따르면, 지난해 총납품액 71조6586억원 가운데 현대차·기아에 대한 납품액은 64조7321억원으로 전체의 90.3%를 차지했다.
문제는 현대차·기아가 차량 가격 동결 전략을 고수하면서 이 부담이 협력사들로 전가될 수 있다는 점이다. 업계에서는 차량 가격을 올리지 않겠다는 결정이 곧 납품단가 인상 여지를 차단하는 것이며, 관세 충격이 장기화할 경우 그 피해가 영세 부품사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한다.
이경진 한국자동차부품협회 연구소장은 "1차 협력사들은 그나마 버틸 수 있지만, 2·3·4차로 내려갈수록 상황은 훨씬 심각해 진다"며 "최근 현대차가 미국 현지 공급망 확대를 선언한 것은 국내에서의 낙수효과가 미국으로 옮겨가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코로나19 이후 5년 사이 1차 협력사 수가 100곳 이상 줄었다"고 말했다.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도 "현대차그룹은 영업이익률 8~9% 수준인 만큼 25% 관세로 10조원가량 손실을 보더라도 당분간 버틸 수 있지만, 이익률이 3% 미만인 중소 협력사들은 존립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다"며 "납품단가까지 동결된다면 많은 협력사가 도산하거나 폐업 위기에 내몰릴 가능성이 크다. 장기적으로 현대차·기아의 부품 수급 불안으로 이어져 피해가 더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