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보니] 금융노조 총파업…주4.5일제 외쳤지만 '냉랭한 현실'
[뉴스웍스=정희진 기자] 2000년 금융노조는 노동시간 단축과 주5일제를 요구하며 사상 첫 총파업을 벌였다. 당시 시기상조라던 재계의 반발은 거셌지만 2년 뒤 금융권 주5일제가 도입됐고, 2011년 전 산업으로 확대됐다.
노조의 주장은 결국 시대를 앞선 선택이었다.
25년이 지난 2025년 9월 26일, 금융노조는 다시 주4.5일제라는 깃발을 들었다.
김형선 금융노조 위원장은 대회사에서 '그날, 금융노동자가 옳았다'라는 과거 기사 제목을 인용하며 이번 투쟁 역시 역사의 시계를 앞당길 것이라 강조했다.
그러나 당시와 달리 이번 총파업의 성과와 현실은 괴리가 컸다. 노조 측은 8만명 이상 동참을 기대했지만 실제 참여 인원은 수천명에 불과했다. 영업점은 정상적으로 운영됐고, 시중은행 직원 대다수는 자리를 지켰다.
원인은 대형 은행의 참여가 저조했기 때문이다. 신한은행 노조는 참여 여부를 두고 투표를 진행한 결과 50%를 넘지 못해 불참을 선언했다.
국민·우리·하나은행도 총파업 참석자는 100명 내외에 그쳤다. 대부분 노조 전임자들이었다. 총파업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현장의 호응은 미미했다.
반면 지방은행은 대거 상경 투쟁에 나섰다. 부산·경남·아이엠뱅크를 주축으로 오전부터 현장을 메웠다. 이들이 시중은행보다 앞장 선 이유는 현장의 열악함을 알리기 위해서다.
한 지방은행 관계자는 "지방의 경우 고령층과 외국인 고객이 많다. 이들은 모바일뱅킹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 지점을 방문한다"며 "지점 직원들은 밥 먹을 시간도 없이 자리를 지켜야 하는 고충이 있는 만큼 주4.5일 전환을 계기로 현장 고충이 해소되길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노조 역시 "주4.5일제가 도입되면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삶의 질이 높아진다"며 대국민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이밖에도 금융노조가 주4.5일제를 밀어붙이는 배경에는 최근 몇 년간의 구조조정이 있다. 2019년 이후 은행들은 디지털 전환과 비용 효율화를 내세워 765개 점포를 줄였고, 7000명이 넘는 직원이 현장을 떠났다. 줄어든 인력 부담은 남은 직원들의 장시간 노동으로 이어졌다.
실질임금은 물가상승률을 따라가지 못했고, 지난 8년간 금융노동자 가정의 출생아 수는 64% 감소했다. 노동 강도는 높아지고 삶의 기반은 약화된 셈이다. 그러나 사측은 산업 불확실성을 내세워 교섭을 미뤄왔고, 누적된 노조의 불만은 오늘 폭발한 셈이다.
그러나 여론은 싸늘하다. 올해 상반기 4대 은행 평균 급여가 6350만원으로 삼성전자·현대차보다 높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고액 연봉자들의 근로시간 단축 요구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결국 시민사회가 체감하는 노동 현실과 금융권 종사자들의 요구 사이에 괴리감이 존재했다는 분석이다. 주4.5일제가 노동시장 전반의 구조적 문제와 연결되지 못하고, 특정 업권의 특권적 요구로 비쳐진 것도 한계로 꼽힌다.
총파업 현장에 나온 한 사측 관계자는 "노조가 복지와 임금 개선을 위해 역할을 하는 건 맞지만, 총파업까지 필요한 사안인지는 의문"이라며 "사회적 합의가 선행됐어야 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