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석유화학 구조개편 '지원 틀' 마련…기업 신청만 남았다
17개 은행·정책금융기관 협약 체결 만기연장·금리조정 등 지원 명문화
[뉴스웍스=차진형 기자] 석유화학 산업 재편을 위한 금융권 지원 체계가 본격 가동된다. 글로벌 공급과잉과 경쟁력 약화라는 이중고에 직면한 업계가 자구노력을 담보할 경우 은행권은 만기 연장과 금리 조정, 신규자금 투입까지 나서기로 했다. 이제 남은 과제는 기업들이 구체적인 사업재편 계획을 마련해 협약의 그림을 채워넣는 일이다.
은행연합회는 30일 오전 은행회관에서 '산업 구조혁신 지원 금융권 협약식'을 열고 17개 은행과 신용보증기금·기술보증기금·무역보험공사·캠코 등 4개 정책금융기관이 참여하는 자율협의회 운영협약을 체결했다.
이번 협약은 지난 8월 대통령 지시로 속도가 붙었다. 석유화학의 경쟁력 회복을 위해 종합대책을 신속히 마련하라는 주문 이후 금융위원회가 산업계·금융권과 잇따라 간담회를 갖고 실행 방안을 구체화했다.
조용병 은행연합회장은 "현재 석유화학이 글로벌 공급과잉과 근본적 경쟁력 약화하는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범정부 차원의 석유화학산업의 구조개편 지원에 금융권도 발맞춰 자율협약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이어 조 회장은 "이번 협약은 정상기업에 대한 선제적 금융지원을 통해 기업의 자구 노력을 돕고 부실을 방지함으로써 금융권과 산업계가 윈윈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협약이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기업들의 사업재편 계획 이행을 충실히 돕겠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금융권의 준비는 끝났다고 못박았다. 권대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이번 협약은 선제적 사업재편의 틀을 마련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며 "석유화학이 첫 사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업계의 미온적 태도를 지적했다.
권 부위원장은 "석화업계가 제시한 감축목표 달성을 위한 구체적 계획이 미진하다"며 "시장 의구심을 걷어내고 기업의 실행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명확한 로드맵을 조속히 제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협약 절차는 주채권은행이 중심을 맡는다. 기업이 구조혁신 지원을 신청하면 주채권은행이 채권은행들을 모아 자율협의회를 소집한다. 이어 외부 회계법인의 공동실사를 통해 사업재편 계획의 타당성을 검증하고 만기연장·이자유예·금리조정·추가담보 제한 등 금융지원 방안을 논의한다. 필요시 신규자금 투입도 가능하다.
합의된 계획은 산업통상자원부의 승인을 거쳐 구조혁신 약정으로 확정된다. 이후 주채권은행은 기업의 재무·영업 현황을 정기적으로 점검해 약정 이행을 관리한다.
은행권은 금융지원 과정에서 자산건전성 분류 기준의 명확화를 요구했다.
금융당국은 "정상기업을 대상으로, 기업·대주주의 철저한 자구노력과 수익성 개선이 전제되는 만큼 감독규정상 건전성 분류 상향이 가능하다"고 답했다. 이는 만기연장이나 금리조정으로도 은행의 재무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번 협약은 석유화학이라는 특정 업종에 국한되지 않는다. 당국은 이를 주력 산업 구조혁신 지원의 '모델 케이스'로 삼고 향후 자동차·조선 등으로 확대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그러나 금융권의 지원 의지가 제도화된 반면 정작 업계의 구체적 실행계획은 아직 빈칸으로 남아 있다.
권 부위원장이 '금융권은 모든 준비를 마쳤다'고 강조한 배경에는, 이제 공은 기업으로 넘어갔다는 메시지가 담겼다. 업계가 사업재편 계획을 제때 제출하지 못하면 시장 불신은 오히려 증폭될 수 있다. 결국 이번 협약의 성패는 '기업의 속도'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