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감 증인도 채택 못했는데…더 확대된 'KDDX' 공정성 시비

수의계약 한다던 방사청 입장 돌변…HD현대 "기울어진 운동장" 과거엔 한화그룹이 공정원칙 주장…기밀유지 원칙 재정립 시급

2025-10-01     안광석 기자
HD현대가 지난 5월 국제해양방위산업전(MADEX)에서 전시한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설계 모형. (사진=안광석 기자 DB)

[뉴스웍스=안광석 기자] 2년여를 끌어온 7조8000억원 규모 한국형 차기 구축함 사업의 주요 사업자 윤곽이 시간이 지날수록 불투명해지는 형국이다.

그동안 기본설계 담당 업체와 수의계약 체결이 관례라는 이유로 HD현대중공업을 밀어온 KDDX 사업 발주처 방위사업청이 과거 보안사고 규제 적용 기간을 늘리는 등 갑자기 상반된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자율경쟁 원칙을 내세운 국회 국방위원회와 한화그룹, 일부 여론의 압박에 못 이긴 것으로 관측된다.

그동안 KDDX 주요 사업자 지위를 놓고 HD현대중공업과 경쟁해 온 한화오션이 불공정성을 호소해 왔다면, 이제는 정반대 상황이 된 것이다.

1일 국회에 따르면 국방위원회는 오는 13일부터 시작되는 국정감사 일정은 확정했으나, 증인 명단은 최종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당장 KDDX 문제를 다룰 방사청 국감 일정이 추석연휴 이후인 오는 17일로 잡혀 있다. 다만 그 외에도 12·3 비상계엄 및 '엔드(END) 이니셔티브', 미국과의 방산협력 문제 등 민감한 국방 현안이 많은 만큼 증인 채택을 놓고 여야 이견 차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

KDDX 문제만 해도 전·현직 방사청장을 비롯한 군 관계자들은 물론, HD현대 및 한화그룹 수뇌부들과 실무진을 어느 선까지 소환해야 할지 가늠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 방사청이 최근 KDDX 사업 특수성을 고려해 HD현대중공업의 보안감점 기간을 연장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KDDX 사업에서 HD현대중공업을 밀던 기존 방사청 입장과 상반된다. 또 다른 공정성 문제를 야기해 국방위 증인 채택 범위가 확대된다는 의미도 된다. 이미 HD현대중공업은 믿었던 방사청의 이같은 방침에 반발해 법정조치를 예고한 상태다.

안규백(가운데) 국방부 장관이 최근 군 관계자들과 소통하는 모습. (사진=국방부)

KDDX 사업자 선정과 관련한 공정성 논란은 2020년부터 시작됐다. 방사청이 당시 기본설계 계약을 체결한 이후 HD현대중공업을 밀기 시작한 만큼 현재와는 반대로 주로 한화그룹이 공정성 문제를 호소해왔다.

2020년 기본설계 입찰 과정에서 HD현대중공업 직원들이 과거 대우조선해양 시절 한화오션의 KDDX 개념설계 등 군사기밀을 몰래 촬영하고 빼돌렸기 때문이다. 이후 기본설계 입찰에서 HD현대중공업은 역대 방산업계 입찰 중 가장 근소한 차이인 0.056 차이로 수주했다. HD현대중공업 직원들은 과거 군가기밀을 몰래 빼돌린 사건으로 법원에서 유죄 판결이 확정됐고, HD현대중공업은 입찰 참가 제한과 함께 1.8점의 보안 감점을 받았다.

한화오션은 미국이나 영국 등 군사강국에서는 군사기밀 유출을 야기한 업체는 방산 입찰을 넘어 영원히 퇴출된다고 예를 들면서 수의계약이 특혜라고 비판했다. 이에 방사청은 경쟁입찰을 진행하기로 했으나, 결국 내부 점검 결과 수의계약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 과정에서 한화그룹 뿐만 아니라 국회의원 시절 안규백 국방부 장관 및 국방위 여당도 경쟁입찰이 타당하다는 의견을 남긴 바 있다.

경쟁입찰 여론이 형성되자 압박감을 이기지 못한 방사청은 이달 내 주요 사업자 선정 계획을 또 다시 보류했다. 이후 지난달 30일에는 곧 만료가 예정된 HD현대중공업에 대한 보안감점 기간을 1년 더 연장한다고 발표했다.

이런 방사청의 조치는 지난 2020년 9월 24일 울산지검이 보안사고를 일으킨 HD현대중공업 직원 12명 가운데 9명을 기소한 사건이 발단이다. 이들 9명 중 8명에 대해서는 2022년 11월 19일 판결이 확정됐고, 나머지 1명은 검찰이 항소해 2023년 12월 7일 최종 판결이 확정됐다.

방사청은 그간 관련 규정을 근거로 동일사건에 여러 명이 관련됐거나 복수의 사건으로 처벌받은 경우 다수의 확정판결이 있더라도 최초로 형이 확정된 2022년 11월 19일부터 3년간 보안감점 조치를 내린다는 입장이었다.

즉 HD현대중공업 입장에서는 3년이 거의 지나 보안감점 종료를 한 달 반 앞둔 시점에서 아무런 사전통보도 받지 못한 채 KDDX 주요 사업자 선정에 불리한 입지에 처한 것이다. 한화오션 주장대로 자율경쟁으로 갔다고 해도 HD현대중공업은 사실 큰 무리는 없었으나, 이번 방사청의 보안감점 기간 연장 조치로 한화오션을  자율경쟁에서도 완벽히 이길 수 있다는 보장이 없어졌다.

HD현대중공업 관계자는 “공정한 경쟁이 불가능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인식 하에 강력히 이의를 제기해 재검토를 요청하고, 가능한 모든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못박았다.

방산업체 한 관계자는 “이번 사업자 선정 여부를 떠나, 글로벌 사업까지 소화해야 하는 상황에서 국내 방산 리더격인 방사청이 뚜렷한 원칙 없이 여론에 이리저리 끌려간다면 앞으로 어느 국가가 K-방산을 신뢰하겠나”라고 우려했다.

방사청은 이 문제와 관련해 이달 중순 국감에서도 질타의 대상이 될 것으로 여겨진다. 결국 방사청이 주요 사업자 후보업체들을 포함한 국민의 납득을 모두 얻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HD현대나 한화오션이 갈등을 멈추고 공동으로 KDDX 사업단을 구성해 상세설계 및 건조를 진행하는 방안도 수년 전부터 거론됐으나, 방산업 특성상 작업 효율이 안 나올뿐더러 또 다른 보안 유출 위험도 생긴다. 당사자들 역시 공동 건조를 반대하고 있다.

이 관계자는 “국회 국방위 주도로 모든 이해관계자와 전문가를 초청해 공개 토론회를 개최하고 모든 쟁점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며 “특히 방사청은 이번 국감이 끝나자마자 KDDX와 같이 국가 안보에 중요한 사업은 기밀 유출 행위에 대해 일관성 있고 엄격한 기준을 새로 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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