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자원 화재 대응 허술" 질타…신분증 미확인 개통 15만건·복구율 37% 그쳐
[뉴스웍스=박광하 기자] 13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정부의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대응 미흡점이 도마 위에 올랐다. 신분증 확인 없이 개통된 휴대전화 15만여 건이 범죄에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대통령실의 늑장 대응, 허술한 백업 체계, 데이터 영구 소실 가능성 등이 잇따라 지적을 받았다,
◆신분증 확인 생략 개통 휴대전화 15만대 '대포폰' 우려
박정훈 국민의힘 의원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이동통신 3사(SK텔레콤·KT·LG유플러스) 제출 자료를 확인한 결과, 국정자원 화재 이후 행정망이 복구되기 전인 지난달 27일부터 30일까지 신분증 진위 확인 없이 개통된 휴대전화가 총 15만5867건으로 집계됐다.
화재로 행정망을 통한 신분증 진위 확인이 불가능해지자 과기부가 휴대전화를 먼저 개통한 뒤 나중에 신분을 확인하는 '선개통 후검증' 시스템을 한시적으로 도입했기 때문이다.
박 의원은 "신분증을 확인하지 않은 휴대전화 15만여 대가 시중에 유통되고 있어 대포폰, 보이스피싱 등 범죄에 악용될 소지가 크다"며 "과기부가 현재까지 부정 가입자에 대한 전수조사를 진행하지 않은 것은 문제"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신분증 재확인에 응하지 않은 가입자의 휴대전화 개통을 취소하는 등 강력한 조치로 부정 가입자를 가려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실 지시는 화재 3일 뒤…"초기 대응 구멍" 비판
과기부 제출 자료에 따르면 국정자원 화재에 관한 대통령 지시사항 3건이 과기부로 처음 내려온 시기는 지난달 29일 오후 3시였다. 국정자원 화재로 인한 행정망 장애에 대해 김남준 대통령실 대변인은 지난 4일 서면 브리핑에서 대통령이 귀국한 9월 26일 오후 8시 40분 이후 밤새 상황을 점검하며 지시했다고 밝힌 바 있는데, 이보다 더 지난 시각이다.
29일 과기부로 내려온 대통령실 지시는 소관 시스템별 전산실 위치와 백업 주기 파악, 시스템별 망실 데이터 확인 및 대책 마련, 국가정보관리시스템의 근본적 재설계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야당은 대통령실의 발표와 실제 지시 시점이 3일이나 차이가 나는 것은 초기 대응의 허점을 보여준다고 짚었다. 밤새 상황을 점검했다는 대통령실의 주장과 달리 실제 구체적인 지시가 사흘이나 지나서야 이뤄졌다는 점에서 실시간 대응이 이뤄졌는지 의문이라는 지적이다.
◆"이재명 정권·윤석열 정권 탓"…책임 소재 공방 '난타전'
여야는 국정자원 화재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두고 공방을 벌였다.
박정훈 의원은 사고 당시 이재명 대통령의 예능 프로그램 녹화로 인한 부재를 문제 삼았다. 그는 "이 대통령이 성남시장 시절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세월호 사건 당시 7시간 컨트롤타워 부재를 문제 삼으며 탄핵 사유에 집어넣었다"면서 "(그랬던 이 대통령은) 경기지사 시절 쿠팡 화재에선 떡볶이 먹방을 했다. 이번 국가 재난 사태에서 예능 프로그램에 나가 피자나 만들고 도대체 뭘 했느냐"고 따졌다.
배경훈 부총리는 "각 부처별 점검이 이뤄졌고 TF를 구성했다"면서 "대통령은 중대본 회의에 상황 파악을 위해 참석한 게 아니라 오전에 상황 파악을 하고 관련 내용을 점검하는 회의를 3시간 이상 진행했다"고 답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도 이 대통령이 중대본에서 무슨 말을 했고 어떤 지시를 했는지를 물었다. 이 의원은 "이 대통령은 본인이 자신 있다고 생각하는 분야는 밀어붙이는 분으로 농림부 장관에 바나나 값이 왜 이렇게 높냐고까지 묻는 분인데 중대본에서 무슨 말을 했나"고 물었다. 배 부총리는 이에 대해 "데이터 백업 체계, 재해복구(DR)별 엑티브-스탠바이, 데이터 이중화를 왜 갖추지 못했나 등과 전산실 위치, 백업 주기 파악 등을 집중 점검했다"고 답했다.
여당은 지난 정부의 탓이라고 비판하면서, 이재명 대통령의 사고 당시 행적을 옹호했다.
김우영 민주당 의원은 "윤석열 정권이 국정자원 관리 예산을 대폭 삭감했고, 백업 시스템을 설치 안 해서 발생한 사태"라고 전 정권 책임론을 제기했다. 한민수 민주당 의원은 "국정자원 화재가 작은 사고는 아니다"라면서도 "(당시 이 대통령이 출연한 방송 프로그램은) 최고 시청률도 거뒀고, K-푸드 홍보도 할 수 있었는데 그게 문제가 되느냐"고 말했다.
◆복구율 37% 그쳐…일부 데이터 영구 소실 가능성
황정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복구가 진행 중인데, 추후에도 복원되지 않는 부분이 있을 수 있느냐"고 질의했다. 배 부총리는 "복원이 되지 않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고 답했다.
황 의원은 "완전히 복원되지 않은 부분이 정부 시스템 운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파악하고 있느냐"고 다시 묻자, 배 부총리는 "현재 복구 작업 중인 시스템 중에서도 해당 부분이 매우 크리티컬하다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13일 오후 3시 기준, 4개 시스템이 추가로 정상화됐다고 밝혔다. 전체 709개 시스템 중 264개가 복구되면서 복구율은 37.2%를 기록했다.
의원들은 민간 기업의 경우 실시간 백업과 이중화를 통해 데이터 손실을 최소화하고 있는데, 국가 시스템이 이를 따라가지 못한 데 대해 비판을 이어갔다.
이준석 의원은 류제명 과기부 차관에게 다른 나라의 백업, DR 체계에 대해 물었다. 이에 류 차관은 몇몇 국가의 서버 분산 사례를 소개했다. 이 위원은 "우크라이나는 전시 상황에서 해외에 서버를 뒀고 2017년 에스토니아와 룩셈부르크가 국가 간 DR 협정을 맺었다"며 "한국도 이를 고려하고, 장관이 (다른 나라에 이런 제안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배 부총리는 "국민께 불편을 드린 점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디지털행정서비스의 안전 확보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여러 차례 사과했다. 그는 또 "민간은 2022년부터 카카오도, SK도 데이터 이중화를 강조하면서 거의 실시간으로 복구가 된다"며 "(국정자원 화재 복구 과정에서) 백업 서버 구축에 8개월이 걸린다고 하는데, 이를 더 빨리 구축하고 힘을 합쳐 극복할 수 있게 노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