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현대 정기선호 첫 시험대 美 조선 확대…'위기'이자 '기회'
마스가 프로젝트, 현지규제 및 출혈경쟁 등 산 넘어야 정기선으로의 지분 승계 위한 재원 마련도 미완의 과제
[뉴스웍스=안광석 기자] HD현대가 정기선 회장의 오너경영체제로 재전환했다. 그러나 정기선호가 입지를 굳히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사내 입지 확대의 발판이 돼야 할 미국의 조선업 재건 프로젝트 ‘MASGA(마스가·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는 주력 사업인 조선·방산의 글로벌 리더 도약의 첫걸음인 동시에, 불확실성도 큰 양날의 검이기 때문이다.
HD현대에 따르면 정 회장은 27일 경주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최고경영자(CEO) 서밋 ‘퓨처 테크 포럼: 조선’에서 그룹 주요 전략인 인공지능(AI) 전환과 미국과의 파트너십을 강조했다.
정 회장은 “AI는 선박의 지속가능성 및 디지털 제조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산업의 경계를 넘어서는 긴밀한 글로벌 혁신 동맹이 필요하다”면서 “HD현대는 첨단 역량을 기반으로 미국 해양 르네상스를 위한 든든한 파트너로 여정에 함께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는 최근 HD현대가 미국 해군 차세대 군수지원함 건조에 협력키로 한 미 최대 방산조선사 헌팅턴 잉걸스 관계자도 참여했다. 이번 정 회장의 행보는 회장 취임 후 첫 외부 공식활동인 데다, HD현대의 사업 확대 의지를 미국에 크게 어필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현재 HD현대는 미국 조선업 재건 및 해군력 증강 의지에 발맞춰 마스가 프로젝트에 참여해 시장 잠재력이 수십조원에 달하는 미 해군 함정 유지·보수·정비(MRO) 사업을 수주하고, 추후에는 단가가 높은 함정 공동 건조까지 추진하고 있다.
한국 조선 기술 노하우가 절실한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수요를 저격해 HD현대의 디지털 및 AI 기반 스마트 조선소 기술을 미국에 전수해 현지 조선소의 생산성 향상에 기여하고, 이를 통해 사업 기회를 확대할 수도 있다. 정 회장이 그동안 헌팅턴 잉걸스 등 현지 유력 기업들과 선박 생산성 향상 및 첨단 조선 기술 협력 등을 위한 파트너십 체결에 앞장서 온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 투자 확대는 첫걸음부터 만만치 않다. 이재명 대통령이 “여전히 교착 상태”라고 표현했을 정도로 마스가 프로젝트가 진척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오는 29일 한미 정상회담이 열림에도 큰 틀에서 마스가를 포함한 한미 관세 협상은 구체적 투자 방식과 이익 배분 등을 놓고 이견 차가 크다.
정 회장으로서는 추후 대규모 투자 실행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의미다. 큰 투자 방향이 결정되면 천문학적 비용이 드는 현지 조선소 지분 매입과 인수, 또는 직접 건립 등 생산 거점 확보 방식에 대한 결단을 내려야 하는데 미국 규제 환경 변화를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
100년 이상을 이어오고 있는 미국 내 존스법이 그 예다. 해당법은 미국 내 항구를 오가는 화물 운송은 ▲미국에서 건조 ▲미국 선적에 ▲미국 시민 소유 ▲미국 승무원 탑승 선박으로만 제한한다. 이는 HD현대의 현지 상선 시장 진출을 막는 가장 큰 장벽이나, 트럼프 행정부는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해당 규제를 철폐할 가능성이 희박하다.
인력 및 기술 전수도 문제다. 미국 조선소는 숙련된 인력 부족과 높은 이직률을 겪고 있어 HD현대가 생산성을 높이려면 현지 인력을 교육하고 안정화하는 데 3~5년 이상의 상당한 시간과 꾸준한 투자가 필요하다. 한국인 기술 인력 파견을 위해 필요한 미국 비자 정책도 HD현대에 유리하지 않다.
정 회장의 절친이자, 조선·방산 라이벌 김동관 한화 부회장이 이끄는 한화오션과도 경쟁에서 우위를 보여야 한다. 한화오션은 존스법을 우회하기 위해 이미 미국 필라델피아 소재 조선소(필리조선소)를 인수, 미국과 조선업 협력 기반에서는 HD현대보다 한 발 앞서 있는 상태다. 주력인 조선 뿐 아니라 북미 매출 비중이 큰 건설기계 사업(HD현대인프라코어 영위)에서도 미국 건설경기 침체 영향을 감내하면서 초대형 경쟁업체들과의 경쟁에서 승리해야 한다.
사업이 불투명해지면 정 회장으로의 경영권 승계 재원 마련에도 비상이 걸릴 수 있다. 정 회장의 지배력을 높이기 위해 주력인 조선업을 중심으로 HD현대중공업과 HD현대미포 간 통합도 추진했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공식적으로 정 회장이 그룹 총수가 되기는 했지만, 실질적인 소유권은 여전히 부친인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에게 있다.
현재 정기선 회장의 HD현대 지분율은 6.12% 수준으로, 최대주주인 정몽준 이사장의 26.6%에 크게 못 미친다. 지주회사 체제인 HD현대에서는 지분이 곧 그룹 장악의 핵심인데, 정 회장의 지분율이 낮아 실질적인 지배력은 없는 상황이다. 이는 곧 부친의 지분을 물려받아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정몽준 이사장의 지분을 정 회장에게 물려줄 경우, 현행법상 최대 50%에 달하는 상속세 또는 증여세가 발생한다. HD현대의 시가총액 증가로 그 세금 규모는 수조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현재로서는 지주사 및 계열사로부터의 배당금이 주요한 재원 확보 통로로 거론된다.
뿐만 아니라 정몽준 이사장이 보유한 HD현대 지분 중 상당수가 담보로 설정돼 있어 추후 정 회장에게 이를 이전할 경우, 해당 담보대출 구조가 복잡해지거나 대출 상환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승계 과정의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재계 한 관계자는 “정기선 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해 막대한 세금과 재원 마련이 필요한 상황인데 우선적으로 미국 시장 진출이 원활해야 하는 것이 당면 과제라 정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